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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체벌… 한 대는 ‘사랑의 매’고, 세 대는 학대입니까?

조선일보 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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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부터 훈육이고 어디까지 학대인가 5044명 설문
“정도가 심한 부분은 있었으나, 딸을 훈육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면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A양을 학대한 혐의로 조사받은 의붓아버지 B씨(35)가 지난 15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한 말이다. B씨는 A양 목을 쇠사슬로 묶어 테라스에 가두거나 불에 달군 프라이팬으로 손가락에 화상을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집에서 탈출한 A양을 주민이 발견해 경찰에 넘기면서 이 아동 학대는 세상에 알려졌다. 자신의 학대 행위를 두고 "정도가 심한 훈육"이라고 표현한 B씨의 한마디가 들끓던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지난 3일 의붓엄마에게 약 7시간 동안 여행 가방에 갇혔다가 의식 불명 상태에 빠졌던 아홉 살 남자아이가 숨졌다. 연이어 일어난 아동 학대 사건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법무부는 민법에 명시된 부모의 '자녀 징계권'을 아예 삭제키로 했다. 민법 제915조에는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이 조항을 없애겠단 것이다. 더불어 체벌을 금지하는 조항을 넣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아동 학대에 분노했던 부모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아이를 가르치려고 한 대 쥐어박는 '사랑의 매'도 죄란 말인가?" 체벌, 어디까지가 훈육이고 어디부터가 학대일까? '아무튼, 주말'이 SM C&C 플랫폼 '틸리언 프로'에 설문을 의뢰해 부모 생각을 들어봤다. 20~60대 설문 참여자 5044명 중 2648명이 부모였다.


성인 63% "사랑의 매는 있다"

자녀가 있는 응답자 중 '체벌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비율은 28.2%였고, '큰 잘못을 할 때만 체벌한다'는 비율이 절반(47.3%)에 가까웠다. 체벌을 한 번이라도 한 응답자는 71.7%. 세 명 중 두 명은 체벌한다는 얘기다. 전체 응답자 중 63%는 '사랑의 매'가 있다고 응답했다. 체벌을 한다고 응답한 비율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수준이다. 체벌 방식에 대해선 "회초리로 손바닥이나 종아리를 때렸다"는 응답자가 절반(48.8%)에 가까웠다. 벌 세우거나 집 밖으로 쫓아내는 '비신체적 체벌' 비율이 23.5%로 둘째로 높았고 "손이나 발로 때렸다"는 비율도 15.8%에 달했다.

"징계권 삭제를 찬성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45.8%가 "찬성한다"고 했고 "찬성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인 응답자는 28.3%였다. '징계권 삭제'에 대해선 대체로 찬성하는 분위기지만, 체벌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자녀를 훈육하는 데 체벌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은 37.7% "그렇지 않다"는 비율은 39%로 팽팽하게 맞섰다. 체벌을 한 이유 중 가장 많은 비율(64.2%)을 차지한 것은 "여러 번 말로 했지만, 효과가 없는 점"이었다.

이런 가운데 나온 '체벌 금지' 소식은 부모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체벌이 법적으로 금지될지도 모른다는 뉴스가 보도된 지난 10일부터 온라인의 '맘카페'에서 일제히 성토가 벌어졌다.


"벽 보고 서 있게 하는 것도 학대라면 저도 아동 학대범이 되는 건가요? 소리 안 지르고 손 한번 안 올리고 아이 제대로 키운 맘 진짜 계신가요?"

"아이가 자지러질 정도로 고집을 부리는데 어떻게 말로만 타이를 수가 있나요.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마다 속으로 부처님, 하느님, 신이란 신은 다 불러가면서 참는데도 결국 매를 들어요. 현실과 이상의 차이가 너무 크네요."

체벌을 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 생각은 다르다. 이들은 "체벌은 부모를 위한 안이한 훈육법"이라고 주장한다. 열두 살짜리 딸을 키우는 김현미(44)씨는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자로 아이 손바닥을 때리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빈도와 강도가 높아졌다.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3년 전부터 아이를 때리지 않고 키우고 있다. 부모가 감정을 자제하는 훈육 방법을 공부해서 실천하면 안 때리고 키우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징계권 삭제는 상징적 효과

민법에서 징계권을 없애자는 주장은 2015년 아동보호법이 개정됐을 무렵에 나왔다. 아동 보호 기관과 시민 단체에서 이런 의견을 법무부에 전달했지만, 진전은 없었다. 징계권 삭제를 추진해온 공익 사단법인 두루(법률 전문가 공동체)의 김진 변호사는 "당시 법무부에서 민법을 개정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이세원 강릉원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958년 법이 제정될 때 만들어진 이 조항의 근거를 찾아보기 어렵다. 당시 일본 법을 따라 만드는 과정에서 아무 고려 없이 받아들여졌다"고 했다. 최근 연이어 일어난 아동 학대 사건으로 법무부가 드디어 징계권 삭제를 전면적으로 추진하게 됐다.

시민 단체와 법조계에선 "징계권 삭제는 실효성보다는 상징성 때문에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진 변호사는 "통념상 징계 수단으로 체벌을 떠올리기 때문에, 징계권은 마치 부모가 자녀를 체벌할 권리가 있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징계권을 삭제하는 것만으로도 아동 체벌에 대한 인식 전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강동욱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징계권을 없앤다고 해서 아이를 징계한 부모를 처벌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징계라는 단어 자체가 과거 호주(戶主)가 가정을 다스린다는 가부장적 개념에서 나온 것이다. 가족은 공동체라는 인식이 있는 지금 현실에선 징계라는 단어는 삭제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체벌 삭제에 대해서는 각자 목소리가 다르다. 자녀를 올바르게 양육하는 게 부모의 권리이자 의무인데 체벌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국가에서 자녀 교육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주장이 있다. 강동원 교수는 "이미 아동복지법에 아동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줘서는 안 된다고 나와 있고, 체벌 정도가 심할 경우 법원에서도 학대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체벌을 금지한다는 조항은 불필요하다. 만약 체벌을 금지한다면, 대체 체벌 기준을 어떻게 볼 것인가? "라고 했다. 중학교 교사인 이모(38)씨는 "학교에서 학생을 체벌하지 않는 나도 집에선 아이들 손바닥 때려가며 키우고 있다. 국가에서 양육에 도움을 주지는 않으면서 체벌만 금지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했다.


"맞아도 되는 나이는 없다"

체벌 개념이 자의적이고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체벌을 아예 금지해야 한다는 반박도 있다. 오은영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는 "'매 한 대까지는 사랑의 매고, 세 대부터는 학대'라는 식으로 체벌 기준을 정할 수 있는가. 사람이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는 건 당연한 가치인데, 잘못된 행동을 고치기 위해서 아이를 때려도 된다고 하는 건 모순"이라고 했다.

설문조사에서도 어떤 체벌이 학대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했다. 전체 응답자 중 어린 시절 체벌을 경험했다는 비율이 71.3%. 이들이 경험한 체벌 중 학대라고 받아들인 것을 꼽으라고 하자(복수 응답 가능) '손이나 발로 때리기'(55.8%)가 가장 많았고 '회초리로 손바닥·종아리 때리기'(33.1%) '회초리가 아닌 도구로 손바닥, 종아리 때리기'(37.9%) '벌 세우기'(35.4%)가 골고루 나왔다. 체벌과 학대를 나누는 기준에 대해서도 절반이 넘는 선택을 받은 게 없다. '아이와 합의로 원칙을 정해놓고 체벌하면 학대가 아니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35.2%, '아이가 자존감이나 정서에 상처를 받지 않는다면 학대가 아니다'라는 비율이 25.6%였다.

아동 학대의 싹을 자르기 위해 전면적 체벌 금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굿네이버스의 고완석 아동권리옹호팀장은 "현장에서 만난 아동 학대 부모는 대부분 '내가 아이를 훈육하려고 때린 것이고, 이것은 부모로서 내 권리'라고 주장한다. 아이 버릇 잡겠다고 한두 대 때리다가 학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체벌을 아예 금지하는 게 아동 학대도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아이들 생각은 어떨까. 지난 1월 13일 굿네이버스·세이브더칠드런·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등이 징계권 삭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아동 대표로 나선 임한울(9)군 말을 그대로 옮긴다.

"휴대폰을 자주 봐서, 잘 씻지 않아서, 늦잠을 자서, 시험 성적이 안 좋아서, 거짓말을 해서….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들이 제 주변의 형, 누나, 친구, 동생들이 체벌을 받은 이유입니다. 그런데 어른 중에서도 휴대폰을 놓지 못하는 분, 잘 안 씻는 분들 계세요. 청소 잘 안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리고 노력해도 일이 안 되는 분도 계세요. 하지만 그분들의 버릇을 고친다고 때리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같은 이유로 맞아도 '맞을 만했네'라고 합니다. 어른은 맞으면 안 되고 우리는 맞아도 되는 존재일까요? 이 세상에 맞아도 되는 나이는 없습니다. 맞아도 되는 사람은 더욱 없습니다."

일러스트= 안병현

일러스트= 안병현


체벌 없이도 가르칠 수 있다… 'firm & warm'을 아시나요

아이, 안 때리고는 못 키울까

설문조사에서 ‘체벌을 한 뒤 효과가 있었다’고 한 응답자 비율은 66.3%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응답자 중 ‘어린 시절 받은 체벌이 효과가 있었다’고 한 비율은 34.6%에 불과했다. 자신이 받은 체벌은 효과가 없었다면서도 아이에게 하는 체벌은 효과가 있다고 여기는 셈이다. 오은영 아동청소년정신과 전문의는 “체벌을 하면 아이 행동이 바로 바뀌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이는 공포에 복종하는 것이지, 자기 잘못을 이해하고 고친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아이를 때리고 싶어 하는 부모는 거의 없다. 설문조사 결과, 자녀를 체벌한 적이 있는 부모 넷 중 셋(74.5%)이 “체벌한 뒤 후회한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학대 수준의 폭력이 아니더라도 체벌은 아이에게 정신적으로 고통을 준다고 본다. 폭력 수위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은영 박사는 “어린 시절 기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상담자 이야기에는 어김없이 때리는 부모가 등장한다”며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보호한다고 믿는데 부모가 체벌을 하는 순간, 보호자와 공격자가 같은 사람이 되면서 아이는 혼란을 느낀다”고 했다. 굿네이버스의 고완석 아동권리옹호 팀장은 “가정에서 폭력을 경험한 학생이 학교나 사회에서도 폭력을 행사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는 것은 여러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민법에서 징계권을 없애고 체벌을 금지하려면 체벌을 대신하는 양육·훈육 방법을 국가가 부모에게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강동욱 교수는 “체벌을 법적으로 금지한다고 한들, 국가에서 집마다 체벌을 하는지 어떻게 관리를 하겠나. 오히려 체벌을 하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때리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법을 교육하는 게 낫다”고 했다. 고완석 팀장은 “부모가 아이 잘못을 바로잡다가 힘들어질 때 고민을 상담하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했다.

“체벌 없이 어떻게 아이 잘못을 바로잡느냐”는 부모들의 볼멘소리에 오은영 박사는 ‘firm and warm’이란 요령을 제시한다. 단호하지만 다정한 태도로 지침을 줘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옳고 그름이나 사회에서 지켜야 할 규범은 선택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에게 이런 걸 가르칠 땐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 ‘친구 물건 안 뺏으면 사탕 줄게’ ‘친구를 때리면 될까요, 안 될까요’라는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 ‘남의 물건을 뺏으면 안 돼’ ‘남을 때리면 안 돼’라고 부드럽지만 여러 번 얘기해야 한다”고 했다.

[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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