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 몰카, 9년 전엔 괜찮았다고? 이젠 안됩니다

/유튜브 캡처 애니메이션‘안녕 자두야-좋으면 좋다고 말해’편에서 자두의 친구 윤석이가 자두의 용변 보는 모습을 찍는 장면.

“이제 다 끝났어. 내 인생은 이대로 끝이야.”

초등학교 3학년 최자두(9)는 같은 반 친구 윤석이가 자신의 용변 보는 모습을 카메라로 촬영한 사실을 알게 되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운다. 윤석이는 “그 사진? 제일 선명하게 뽑아주는 데 맡겼지. 재밌게 나온 사진은 아주 크게 확대해서 애들 보여주려고”라며 짓궂게 말한다. 사진이 퍼질까 두려워하는 자두에게 숙제를 대신 하게 하고, 교실·화장실 청소까지 시킨다. 친구들과 사진을 돌려보며 “야, 이 사진 진짜 웃긴다. 엉덩이 장난 아냐”라고 낄낄대자 자두의 얼굴은 사색이 된다. 사실 아이들이 돌려보던 사진은 다른 친구의 엉덩이 사진이었지만, 윤석이는 하굣길에 “자두는 예쁘다”며 주머니에 숨겨두었던 자두의 용변 보는 모습 사진을 혼자 들여다본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7일 열린 방송심의소위원회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애니메이션 ‘안녕 자두야’를 방송한 어린이 채널 ‘브라보키즈’ ‘챔프(Champ)’ ‘대교어린이TV’에 행정지도인 ‘권고’를 결정했다.

/유튜브 캡처 애니메이션‘안녕 자두야-좋으면 좋다고 말해’편에서 자두의 친구 윤석이가 용변 사진을 빌미로 자두를 괴롭히며 치마를 들추는 장면.

‘안녕 자두야’는 1997년 순정 만화 잡지 ‘파티’ 연재를 시작으로 애니메이션 등으로 제작돼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문제가 된 회차는 2011년 만들어져 10년 가까이 반복 편성됐다. 당시엔 방송사와 시청자들이 문제삼지 않았지만 지난 4월 여러 채널에서 재방송되며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날 대교어린이TV 관계자는 “사전에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 부분은 인정한다”면서도 “‘안녕 자두야’는 오랜 기간 방영된 애니메이션이다. 모든 방영분을 재심의하는 건 어렵다. 디지털 성범죄·불법 촬영물 문제는 예전에도 있었는데 ‘갑자기’라는 느낌이 있다”고 주장했다.

/유튜브 캡처 애니메이션‘안녕 자두야-좋으면 좋다고 말해’편에서 윤석이가 주인공 자두의 용변모는 모습을 찍은 사진.

그러나 위원들은 최근 ‘N번방’ 등 이슈가 사회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용변 보는 모습을 촬영하고 이를 빌미로 괴롭히는 내용이 어린이 만화에 포함된 건 문제라고 봤다.

김재영 심의위원은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는 빠르게 변화하는데, 사회적 인식은 가치에 미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현실 세계에서는 디지털 성범죄다” “무의식적으로 몰카 촬영 장면이 인식돼 모방 범죄 조장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들도 나왔다.

이날 유일하게 법정 제재인 ‘주의’ 의견을 낸 이소영 위원은 “아이들끼리 놀리는 에피소드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시대가 흘러 인식이 변했다. 아동들은 성인과 달리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방송소위는 “과거 수차례 방송된 프로그램이라 할지라도, 방송은 성인지감수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면서 “디지털성범죄를 모방·조장할 우려가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보다 철저한 사전 심의를 진행하는 등 전체적인 재점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손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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