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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앱을 실행하니 카메라 촬영 모드 같은 화면이 떴다. 폰으로 바닥을 비춘 채 화면을 터치하자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필구 역으로 인기를 모은 아역배우 이강훈 군이 나타나 두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그림 같은 아바타나 홀로그램이 아니라 TV 화면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 생생한 '입체 영상'이다. 손가락 동작으로 화면 속 인물 크기를 키웠다가 줄였다 할 수 있고, 스마트폰 화면에 비치는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360도로 돌려가며 뒷모습과 정수리 등을 볼 수도 있었다. 별도 기기를 착용하지 않고도 스마트폰 앱만으로 즐길 수 있었고, 지금까지 봤던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콘텐츠 중 가장 선명했다.
인간문화재 봉산탈춤 공연과 아트사커 시연은 더 놀라웠다. 장인의 춤사위와 소맷자락의 작은 펄럭임이 화면 속에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공연장 객석이 360도로 돌아가면서 인간문화재 공연을 보여주는 듯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봉산탈춤을 교과서에서 글로 배울 때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인식시켜 이런 동영상을 함께 볼 수 있다면 훨씬 효과적일 것 같았다.
축구공과 한몸처럼 노는 아트사커 시연은 업계 관계자조차 깜짝 놀랄 만큼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줬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의 움직임은 물론 회전하는 모습까지 촬영 내내 완벽하게 잡아낸 덕에 뭉개지거나 깨지는 부분 없이 온전히 스마트폰 화면 위에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지난 13일 상암 VR·AR 콤플렉스에 문을 연 아시아 최대 규모 'K-실감 스튜디오'를 찾았다. 앞서 예로 든 세 가지 콘텐츠가 제작된 곳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VR·AR 실감 콘텐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예산 약 100억원을 들여 만들었다.
이런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스튜디오는 세계적으로도 드문데, 국내에서만 3개가 운영 중이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만든 VR·AR 스튜디오는 각각 자체 콘텐츠 제작 위주로 돌아간다. K-실감 스튜디오는 개별적으로 제작 인프라를 구축하기 어려운 국내 중소벤처 기업이 저비용으로 고품질의 실감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정부는 2018년부터 운영 중인 세계 최대 규모 입체 콘텐츠 제작소 '인텔스튜디오(약 280평·약 920㎡), 카메라 200대, 스토리지 약 10PB)'를 롤모델로 삼았는데, K-실감 스튜디오의 인프라와 결과물은 인텔스튜디오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평가다.
스튜디오 촬영 공간 속으로 들어가봤다. '어벤져스' 같은 할리우드 영화 촬영장에서 자주 보았던 '그린 스크린' 공간이었다. 바닥부터 사방이 초록색으로 칠해진 내부에는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한 조명이 비추고 있었고, 360도로 카메라 수십 대가 설치돼 있었다. 총 100평(약 330㎡) 규모(촬영실·편집실 등 포함) 스튜디오는 4K 고화질 카메라 60대로 객체(인물 등)를 모든 방향에서 촬영하고, 각각의 카메라에서 촬영된 영상을 모아 실감나는 입체 콘텐츠를 완성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기획 아이디어만 가져오면 누구나 경쟁력 있는 실감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제공되는 대부분의 실감 콘텐츠 분량은 1분 정도다. 2~3분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지만 쉽지 않다. 작은 움직임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되는데 카메라 60대 중 한 대만 이상이 있어도 실패다. 1분간 촬영할 때마다 카메라당 8.6GB, 전체 60대 카메라에는 모두 약 515GB의 데이터가 쌓인다.
이렇게 촬영한 데이터를 모아 최신 GPU 렌더팜 300대로 빠르게 렌더링(각각 촬영한 영상을 하나로 합치는 병합 처리 작업)해 하나의 완벽한 콘텐츠를 만든다. 1분(1800프레임)짜리 최종 결과물은 최고화질이 약 1.2GB, 중화질 약 565MB, 저화질 약 240MB 수준으로 생성된다.
기술력 못지않게 컴퓨팅 파워도 중요하다. K-실감 콘텐츠가 도입한 GPU 렌더팜은 한 대에 1000만원이 넘는 고급 장비다. 1분짜리 결과물을 만들려면 한 대로는 2~3일, 30대를 돌려도 10시간이 걸리는데 K-실감 스튜디오에서는 70~75분이면 끝난다. 전문인력이 귀한 분야인 만큼 정부가 위탁계약한 업체의 전문가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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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배우 이강훈 군이 K-실감 스튜디오에서 입체 동영상을 촬영하는 모습. [사진 제공 = 과기정통부] |
기업 만족도는 단연 높다. 강훈 군을 모델로 K-실감 스튜디오 시범 영상을 제작한 벤타VR의 전우열 대표는 "작년에만 콘텐츠 약 500편을 제작했고 일본 스튜디오도 가봤는데 세계적으로 이 정도 인프라를 갖춘 곳이 없다. 일본 스튜디오의 결과물은 약간 만화적인 느낌이 강했는데, 우리가 만든 콘텐츠는 훨씬 더 입체적이고 실물에 가깝다. 글로벌 시장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재 이 스튜디오에서는 상반기 사업에 선정된 기업들이 콘텐츠를 제작 중이고, 하반기에도 주관기관인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홈페이지에서 공모를 받아 지원할 예정이다. LG유플러스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공동 제작 중인 벤타VR는 K-실감 스튜디오를 활용해 안중근 의사 등 역사적 위인을 재현해 교육적으로 풀어내는 자체 콘텐츠를 만들 예정이다.
VR·AR 등 실감 콘텐츠 영상은 '5G(5세대) 시대' 킬러콘텐츠로 꼽힌다. 작년 4월 세계 최초로 5G를 상용화했고, 지금도 전국에 촘촘하게 네트워크를 구축 중인 한국이 선점할 수 있는 시장이다. 실제로 LG유플러스는 중국·홍콩 통신사와 수출계약을 체결했고, 유럽 등 다른 나라에서도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실감 콘텐츠는 온라인 교육과 엔터테인먼트 등 확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고 5G 시대에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도 좋은 분야"라며 "한류와 K콘텐츠가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것처럼 우리 중소·벤처기업이 만든 K-실감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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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배우 이강훈 군이 K-실감 스튜디오에서 입체 동영상을 촬영하는 모습. [사진 제공 = 과기정통부]](http://static.news.zumst.com/images/18/2020/05/26/278b923182314fd99f12ad160730b163.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