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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정부 말 중립내각 총리 현승종 前성균관대 총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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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정부 말기 국무총리를 지낸 현승종 전 총리가 25일 향년 101세로 별세했다.

1919년 1월 26일 평안남도 개천에서 태어난 현 전 총리는 평양 소재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전신인 경성제국대학에서 법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큰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작고한 현기정 옹(1922년 사망)이다.

고인은 졸업 직후인 1944년 1월 일본군 학도병으로 소집돼 이듬해 소위로 임관했고, 광복 때까지 두 달여간을 일본군 장교로 근무하기도 했다.

광복 직후 미군정청 산하 물가행정처에서 잠시 근무한 그는 1946년부터 고려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30년 가까이 고려대에서 학자의 길을 걸었다. 고려대에서 학생처장, 교양학부장, 법률행정 연구소장, 중앙 도서관장직 등을 맡았다. 교수 재직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공군 대위로 입대했다. 평양고보 후배이자 고인의 총리 시절 국회의원을 지낸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는 그에 대해 "나라를 사랑하는 충정이 지극해서 만난을 무릅쓰고 뛰어들어 최선을 다하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라고 표현한 바 있다. 1960년 4·19혁명 당시 고려대 학생처장으로서 교수 데모에도 참여한 바 있다.

1974년 고려대를 떠난 그는 1980년까지 6년간 성균관대 총장을 지냈다. 1989~1992년에는 한림대 총장을 역임했다. 이후에도 건국대 이사장, 고려중앙학원 이사장 등을 맡으며 교육자의 삶을 이어갔다.

건국대 이사장 시절에는 일본군 장교로 복무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친일파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시 학내외 단체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로부터 이사장 사퇴 압력을 받고는 결국 스스로 물러났다. 훗날 민족문제연구소는 자발적인 입대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되지 않았다.

노태우정부 말기인 1992년 10월 8일 제24대 국무총리에 취임했는데, 우리나라 정치사에서는 드문 중립내각 총리직이었다. 당시 현 전 총리의 인준안은 국회에서 역대 총리 인준안 중 재적의원 대비 최고 찬성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1993년 2월까지 약 5개월간의 짧은 재임기간이었지만, 당시 관권선거 의혹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정국을 안정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역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중 최고령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현 전 총리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 광복 이후 혼란스러웠던 시국에 평양을 방문해 공산당 세계의 현실을 보고 온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년 전인 6·25 60주년 당시 그가 남긴 수기에는 "남한 최고 대학인 경성제국대학을 다닌 우수한 친구들이 북으로 넘어갔다가 모두 다 숙청됐다"며 "6·25 60주년을 통해 우리 국민이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기록돼 있다.

총리 퇴임 후 1994년 1월 1일 유니세프한국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초대 회장으로 취임해 2010년 6월까지 재임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 청조근정 훈장, 충무무공 훈장, 성곡학술 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는 로마법개론, 로마법원론, 법사상사, 게르만법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큰딸 현군숙 씨 등 3남 1녀를 뒀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9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27일 오전 7시 15분이며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이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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