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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日 불상 이름이 '백제관음'인 까닭은?

조선일보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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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국립박물관 특별전 위해 생애 두번째 외출한 호류지 불상, 코로나 사태로 전시 취소돼

백제 불상이냐 日 불상이냐 논란
"백제의 것이 좋고 아름답다는 日 인식에 '백제관음' 이름 붙어"
그는 지금 불 꺼진 전시실에 서 있다. 벌써 두 달째다. 2m 넘는 팔등신 몸매, 천 자락을 발아래까지 내려뜨린 우아한 자태를 잃지 않았다. 왼손엔 정병을 살포시 잡고 오른손은 앞으로 내민 채 입가에 머금은 미소. 프랑스 지성 앙드레 말로가 "일본 열도가 침몰할 때 단 하나만 가지고 간다면 이것을 택하겠다"고 찬탄한 불상, 일본 국보 '백제관음'이다.

일본 나라 호류지의 ‘백제관음’. 높이 210㎝. 팔등신 늘씬한 몸매, 정병을 살포시 쥔 왼손, 앞으로 내민 오른손의 굴곡까지 유려한 7세기 아스카 시대 걸작이다. /도쿄국립박물관

일본 나라 호류지의 ‘백제관음’. 높이 210㎝. 팔등신 늘씬한 몸매, 정병을 살포시 쥔 왼손, 앞으로 내민 오른손의 굴곡까지 유려한 7세기 아스카 시대 걸작이다. /도쿄국립박물관


나라 호류지(法隆寺) 소장품인 이 불상은 지난 2월 말 23년 만에 도쿄에 왔다. 도쿄국립박물관 특별전 '호류지 금당벽화와 백제관음'을 위해서다. 원래 3월 13일 개막해 5월 10일까지 열릴 전시였다. 일본이 자랑하는 이 불상이 호류지 바깥으로 나온 건 두 번째. 1997년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처음 해외 전시됐고, 직후 도쿄·나고야·후쿠오카 등 일본 국내 박물관 6곳을 순회했다. 그러나 '23년 만의 백제관음 외출'로 기대를 모았던 이번 전시는 코로나 사태로 개막도 못 하고 취소됐다.

호류지에서 이 불상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감흥은 대단했다. 높이 210㎝에 달하는 늘씬한 불상이 어두운 방 안에서 홀로 빛나고 있었다. 높이 솟은 불꽃 모양 광배, 정병을 쥔 손가락의 곡선, 발끝에서 물결치는 옷자락…. '동아시아 미술의 보고(寶庫)'인 이 사찰에서도 압권은 백제관음이었다.

7세기 아스카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이지만 '이름' 때문에 한동안 백제에서 건너간 작품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백제관음'이라 불린 건 100년밖에 안 된다. 원래 이름은 허공장보살(虛空藏菩薩). 호류지 관장 다카다 료신은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기록이 없어 정확한 유래를 알 수 없다"며 "가장 오래된 기록이 1698년 작성된 것인데, 여기엔 인도에서 만들어져 백제를 통해 건너왔다고 적혀 있다"고 했다.

이후 1911년 호류지 창고에서 보관(寶冠)이 발견된다. 보관 중앙에 관음보살의 상징인 아미타 화불이 표현돼 있어 애당초 이 불상이 관음보살상으로 제작됐음이 밝혀진 것이다. 게다가 이 시기 일본 학자들은 이 특이한 불상을 '조선 양식'이라고 봤다. 1917년 발간한 '호류지대경'에 처음 백제관음이란 이름이 등장하고, 1919년 철학자 와쓰지 데쓰로(1889~1960)가 쓴 '고사순례'에 '우리 백제관음상'이란 표현이 쓰이면서 유명해졌다.

하지만 연구가 진척되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1971년 일본의 목재 전문가가 불상의 재료가 녹나무[樟木]임을 밝혔다. 녹나무는 일본 고대 목조 조각에서 흔히 쓰이지만, 한국에선 제주 외엔 자라지 않아 백제 조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네다치 겐스케 교토대 교수도 "백제관음은 상 전체를 녹나무 한 그루를 조각해 만들었고, 왼손에 쥔 정병만 편백나무[檜木]를 사용했다"며 "아스카 시대 불상은 대부분 녹나무로 만들었다"고 했다.


한국 학계에선 견해가 엇갈린다. 강희정 서강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줬다는 오해는 일본에서의 연구 성과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독립 이전 견해가 답습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면 주수완 우석대 교수는 "재료가 녹나무라는 것이 일본에서 만든 불상이라는 결정적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한국에 지금 녹나무가 없다고 해도 삼국시대에 식생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며 "백제관음은 백제 장인의 작품일 수도, 백제에서 간 도래인이 만든 불상일 수도 있으며, 백제의 영향을 받아 만든 일본 불상일 수도 있다"고 했다.

민병찬 국립경주박물관장은 "'백제관음'이란 명칭을 일본에서 부여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일본에선 예부터 좋고 아름다운 건 '구다라(백제)'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며 "국적에 매몰될 게 아니라 당시 한·일 양국이 긴밀하게 문화적 유대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 문화 교류 차원에서 연구가 진척되길 바란다"고 했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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