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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거실 벽에 있는 황주리 작가의 그림 ‘그대 안의 풍경’. / 황주리 제공 |
'코로나19' 때문에 봄이 왔어도 나들이를 할 수 없고, 꽃이 피었어도 구경 갈 수가 없다. 속절없이 트로트 '봄날은 간다'만 부르고 있다.
그렇다고 자연을 접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잘 그려진 그림 한 점은 자연 그 이상이 된다. 중국 송나라 화가 곽희(郭熙)는 말한다. "산림에서 휘파람 불면서 한가하게 걷는 것은 누구나 동경하는 바이나 늘 그럴 수는 없다. (중략) 만약 훌륭한 화가를 얻어 자연을 그럴듯하게 그려 낸다면 집을 나가지 않고도 자연을 즐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산(자연)을 화폭에 담는 본래 뜻이다."('임천고치')
그림과 풍수는 전통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원나라 황공망(黃公望)은 "그림에도 풍수가 존재하는데, 수구(水口) 그리기가 가장 어렵다"고 하였다. 수구란 좌청룡 우백호가 만나는 지점으로 물이 빠져나가는 곳이다. 청나라 고병(高秉)은 "그림을 그릴 때 풍수를 또한 따져야 한다"고 하였다. 상하이미술관 부관장을 지낸 딩시위안(丁羲元: 1942~)은 "바람[風]은 기(氣)의 움직임이며, 물[水]은 기가 뭉친 것"으로 풍수를 정의한다. "좋은 그림은 풍수의 본질인 기가 생동적으로 형상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풍수가 잘 형상화된 그림은 상서로운 기운이 서려 영물이 되며, 그것을 감상하거나 소장하는 사람의 길흉화복을 좌우한다. 그림을 걸어 두거나 배치할 때도 공간적·시간적 원칙이 있다. 함부로 아무 데나 걸어서는 안 된다."('예술풍수')
황공망은 그림에서 수구를 중시하였다. 한양의 경우 남산과 낙산 끝자락이 만나는 광희문(수구문) 부근이 수구이다.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통로이자 기가 드나드는 통로[氣口]가 된다. 기운생동(氣韻生動)한 그림은 수구가 잘 형상화되어야 한다. 딩시위안은 황공망이 강조한 수구 개념을 '기구'로 계승 발전시킨다.
일반인들도 그러한 그림을 찾을 수 있을까? 어렵지 않다. 필자의 집 거실 벽에 손바닥보다 작은 소품 한 점이 기대어 서 있다. 알루미늄 초콜릿 박스에 그려진 그림이다. 그림이 좋아 몇 해 전 그곳에 두었는데, 지금도 그 자리를 꿰차고 있다. 황주리 화가의 '그대 안의 풍경'이다.
'그대 안의 풍경'은 수구와 기구를 어떻게 처리하였을까? 수구[水]와 기구[風]가 분리되어 2중으로 나타난다. 통통하게 살이 찐 여인(?)이 두 손으로 커피 잔을 들고 있다. 커피가 가득 찬 것으로 보아 마시기 전이다. 커피의 따뜻함이 손을 통해 온몸으로 전달된다. 그 따뜻함은 '자전거를 탄 연인들'을 상상하게 한다. 아마도 커피를 든 여인의 소망이리라. 수구는 바로 커피 잔이다. 여인의 두 팔은 좌청룡 우백호이다.
그림 속의 '자전거를 탄 연인' 장면은 여인의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풍수에서 말하는 기가 뭉친 곳[穴]이자 여인이 갈망하는 바이다. '그림 속의 그림'이다. '그림 속의 그림'에도 수구나 기구가 있어야 한다. 무엇일까? 다름 아닌 비둘기이다. 1970년대 히트송인 이석의 '비둘기 집'에서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비둘기가 자전거를 탄 연인을 마주하여 날아가고 있다. 비둘기는 사랑의 기운을 넣어 주는 기구(氣口)이다. 연인은 도시의 고층 아파트를 떠나 "메아리 소리 해맑은 오솔길을 따라 산새들 노래 즐거운 옹달샘터"를 찾아 달려간다. 그곳에 "포근한 사랑 엮어 갈 그런 집"을 짓기 위해서이다. 위에서는 '비둘기'가 기를 넣어 주고[기구], 아래서는 커피 잔이 기의 누설을 막아 준다[수구].
이 그림이 풍수적으로 좋은 이유는 또 있다(색채와 사물의 모양). 독자들께서 스스로 찾아보시길 권한다. 소품 하나로 집안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복을 부르는 인테리어 풍수의 핵심이다.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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