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정상 중 처음으로 코로나19에 감염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확진 후 16일 만에 퇴원했지만 업무복귀를 못하고 있다. 도미닉 라브 외무장관이 총리 대행을 하는 형국이다. 컨트롤타워가 바이러스에 뚫리면서 영국의 방역체계에 큰 구멍이 생겼다. 다른 국가 지도자들은 존슨 총리와 같은 처지가 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권력자의 질병이 역사의 물길을 바꾼 사례는 적지 않다. 육체와 정신이 피폐해져 중요한 결정 등에서 오판을 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도널드 D 게르슈테는 저서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에서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건이 역사의 흐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때가 많다”며 “권력자의 질병도 그런 요인들 중 하나”라고 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1714~ 1740년 재위)는 폭군이었다. 신하와 백성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도 심각했다. 그는 유아 세례를 받는 첫째 아들의 머리에 뜬금없이 왕관을 눌러 씌우다가 상처를 내 감염으로 죽게 했다. 매질이 얼마나 심했던지 황태자인 셋째 아들이 국외 탈출을 감행하기도 했다.
![]() |
12일 퇴원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얼굴이 많이 수척해져 있다. 영국 총리실 제공,AP·연합뉴스 |
권력자의 질병이 역사의 물길을 바꾼 사례는 적지 않다. 육체와 정신이 피폐해져 중요한 결정 등에서 오판을 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도널드 D 게르슈테는 저서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에서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건이 역사의 흐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때가 많다”며 “권력자의 질병도 그런 요인들 중 하나”라고 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1714~ 1740년 재위)는 폭군이었다. 신하와 백성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도 심각했다. 그는 유아 세례를 받는 첫째 아들의 머리에 뜬금없이 왕관을 눌러 씌우다가 상처를 내 감염으로 죽게 했다. 매질이 얼마나 심했던지 황태자인 셋째 아들이 국외 탈출을 감행하기도 했다.
기행과 폭력의 원인은 통풍이었다. 참을 수 없는 통풍의 고통은 짜증을 키웠고 무차별 폭력으로 이어졌다.
취미로 그린 그림들마다 써 놓은 ‘고통 속에 그린 그림’이라는 글귀는 통풍이 그의 심신을 얼마나 파괴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빌헬름 1세는 강한 군대 양성, 행정 조직 정비, 비리 척결 등 치적이 적지 않았지만 폭군의 그림자가 짙어 덜 부각되고 있다.
![]() |
스페인 독감은 1918~1920년 전 세계 2500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주목할 점은 1차 세계대전을 총결산하기 위한 베르사유조약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1919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패전국 독일의 처리 문제를 논의하는 강화회의가 열렸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당초 각 민족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민족자결주의와 평화주의에 입각해 독일에 대한 거액의 배상금 요구와 영토분할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가혹한 응징을 주장하는 영국과 프랑스를 설득하는 데 실패하고 베르사유조약에 서명하고 말았다. 스페인 독감을 다룬 ‘대 독감’의 저자 존 배리는 인터뷰에서 “윌슨 대통령이 스페인 독감에 걸려서 육체적으로 지치고 정신이 혼미해져 자신의 원칙을 포기했다”며 “독일에 지나치게 가혹한 베르사유조약이 체결되도록 해 히틀러가 권력을 잡는 데 어느 정도 일조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편집증을 앓았던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집권기간(1922~ 1953년)에 2500만여 명을 숙청하거나 처형했다. 정적이 될 수 있다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탓이다. 스탈린은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경찰국가, 공포정치, 국민 8분의 1 제거로 나타났다.
소련의 초대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은 스탈린을 공산당 서기장으로 추천한 멘토였지만 죽음을 몇 달 앞둔 시점에는 오히려 측근들에게 스탈린을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가끔 찾아온 스탈린과 대화하면서 그의 냉혹함과 비인도성에 회의가 들었다고 한다. 유서에서도 스탈린의 해임을 주장했지만 스탈린은 이를 은폐하고 1인 독재체제를 강화했다.
레닌이 좀 더 살고 스탈린이 실각했다면 소련체제의 얼굴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은 질병에 의해 인생항로가 바뀐 케이스다. 수채화, 그림엽서를 그리며 생계를 이어가던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영국군의 독가스 공격으로 실명위기까지 갔다.
당시의 절망감을 히틀러는 자서전 ‘나의 투쟁’에서 “평소처럼 글을 읽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었다. 최상의 시력을 요구하는 내 직업을 감안하면 생계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썼다.
그가 시력 약화 피해를 보지 않았다면 정치가가 아닌 화가가 되었을 테고 2차 세계대전과 600만명의 유대인 학살도 없었을 것이다. ‘성모 마리아와 유년 시절의 예수’ 등 다수의 그림을 남겼는데 그림 실력은 평범한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학자들은 진료기록 등을 연구했지만 히틀러의 끔찍한 만행을 설명할 수 있는 똑떨어지는 질병은 찾지 못했다.
앤서니 이든 영국 총리는 1956년 담낭 질환에서 기인한 오판으로 수에즈운하 위기를 낳았다. 가말 압델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이 그해 7월 수에즈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하자 이든 총리는 프랑스, 이스라엘과 밀약을 맺고 10월 파병을 해 운하의 통제권을 확보했다.
그는 소련이 헝가리의 반소운동 진압에 정신이 없고 미국도 대통령 선거 때문에 중동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양국은 강하게 비판했고 UN도 즉각적인 정전을 요구했다.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은 철군할 수밖에 없었다. 담석수술 실패 후유증과 그에 따른 약물중독은 이든 총리의 오판을 낳았고 국가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켰다. 미국과 미리 상의만 했어도 피할 수 있었던 수모였다. 영국은 미국과 소련의 압박에 굴복하면서 패권국 지위를 완전히 상실했다.
질병에 무릎을 꿇지 않은 권력자도 있다. 미국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39세에 소아마비에 걸려 반신불수가 됐지만 역경을 극복하고 미 역사상 유일의 4선 대통령이 되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대표적인 지도자다. 그의 주요 업적으로 대공황 극복과 2차 세계대전 승리가 꼽히지만 소아마비 정복에 기여한 공로도 무시할 수 없다.
국립소아마비재단을 설립한 그는 의학자 조너스 소크의 백신 개발 연구에 자금을 지원해 결실을 맺게 했다. 루스벨트야말로 자신의 질병과 싸워 이긴 진정한 승자일 것이다.
◆최고지도자의 건강 상태는 ‘ 국가기밀’
국가 최고 지도자의 질병은 국가기밀에 속한다. 상대국 리더십의 변화나 중요 정책 결정의 방향을 예측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특급 정보로 분류된다. 적국 지도자의 건강 이상을 알아내기 위한 첩보전이 불을 뿜는 이유다.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1982년 3월 뇌졸중으로 몇 주 동안 언어 기능을 잃었다. 그해 9월 아제르바이잔을 방문해선 엉뚱한 원고를 읽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11월 숨질 때까지 그의 건강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그러나 미 정보기관은 해외 방문길에 나선 브레즈네프의 침실 화장실에서 소변 성분을 채취해 건강 이상을 알아냈고 군사적·외교적 대응방안을 시나리오별로 준비해 놓았다고 한다.
내부고발 인터넷 언론매체인 위키리크스는 2010년 미 국무부가 전 세계 270개 해외 공관과 주고받은 외교 전문 25만여 건을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다. 미 당국이 각국 지도자의 DNA, 머리카락, 타액, 지문, 홍채 정보는 물론 배설물 수집까지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 세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2011년 미 방송사는 중앙정보국(CIA)에 각국 지도자들의 건강과 정신 상태를 분석하는 의료심리분석실이 설치돼 있다고 보도했다. 소련의 비밀경찰도 1940년대부터 외국 정상들의 배설물을 수집해 분석하는 특별 부서를 두고 있었다. 이 부서는 1949년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숙소에 특수 화장실을 설치해 배설물을 모은 뒤 정밀 분석해 건강 상태를 파악했다. 배설물에 칼슘이 부족하면 불안해서 불면증을 겪는 것으로 판단하는 식이다. 이오시프 스탈린 공산당 서기장은 그 결과를 마오쩌둥과의 협상에 활용했다.
국가 최고 지도자의 질병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경호팀은 사활을 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경호팀은 지난해 3월 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 참석차 하노이에 와서 묵었던 호텔에서 흔적을 샅샅이 지웠다. 김 위원장이 혹시 남겼을지 모르는 머리카락이나 지문, 타액 등 생체정보를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됐다.
김환기 논설위원 kgkim@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