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미용사 손에서 탄생한 자연주의 화장품 '이솝'

[사진= Aesop]

[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항공사나 호텔 객실 어메니티는 특급 대우를 받는 고객들에게 제공되는 만큼 검증된 브랜드가 대부분이다. 불가리, 아쿠아 디 파르마, 아뜰리에 코롱 등 브랜드가 가진 가치와 철학은 물론 제품의 질까지 모든 걸 충분히 만족할 만한 것들로 말이다. 케세이퍼시픽항공사 일등석, 5성급 호텔 파크 하얏트 객실마다 제공되는 '이솝(Aesop)'도 그 중 하나다.

이솝은 1987년 호주의 한 미용사의 손에서 탄생했다. 멜버른에 '아마데일 헤어살롱'이란 작은 미용실을 운영하던 데니스 파피티스(Dennis Paphitis)는 손님들도 가려서 받을 만큼 까다로운 미용사였다. 시중에 나와있는 헤어제품들은 모두 그의 성에 차지 않았고, 유기농 제품들을 직접 개발했다. 헤어제품을 시작으로 핸드, 바디, 페이셜 등으로 라인을 확장해나갔다.

데니스는 이 제품들의 이름을 '이솝'이라 지었다. '이솝우화'의 이야기들처럼 짧고 간결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지혜와 교훈을 준다는 점이 자신의 철학과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솝이 추구하는 철학과 가치는 단순하면서도 최고의 질을 자랑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사진- Aesop]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솝의 브랜드 철학은 그대로다.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해내는 것보다 꾸준한 연구와 검증을 거듭해 안전하면서도 실용적인 제품을 추구한다. 때문에 이솝에서 선보이는 제품들은 모두 안전이 보장된 식물성 추출물과 과학적으로 입증된 최상의 원료만으로 만들어지며, 동물성 재료나 인위적인 향도 첨가하지 않는다. 제품 하나를 개발하는데 평균 3년 이상이 걸리는 이유다. 자외선 차단 기능이 있는 수분크림의 경우엔 제품 개발에만 10년의 시간이 들었다.

또 제품 패키징에도 이솝의 철학이 담겨있다. 이솝이 처음 탄생한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화려한 포장 없어 재활용이 가능한 용기에 제품을 담아오고 있다. 자연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기업이 가져야 할 윤리의식도 강조하는 것. 대다수 제품들이 갈색 유리병에 담겨 있는데 50% 재활용된 원료로 제작되며 제품 운송에 사용되는 상자는 100% 재활용 판재로 만든다. 갈색병이 자외선으로부터 제품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방부제를 최소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이점 또한 고려했다. 또 패브릭 소재의 가방에 제품을 담아줘 고객들이 이를 재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롯데백화점 수지 이솝 스토어 [사진- Aesop]

매장 운영 방식도 이솝의 제품력과 진정성을 빛나게 해주는 장치다. 이솝은 호주와 국내를 비롯해 뉴질랜드, 캐나다, 일본, 싱가포르, 미국, 스위스, 러시아, 아랍에미리트 등 25개국에 200여곳 매장을 보유 중인데 각각의 매장 콘셉트가 다르다. '모든 매장은 다 달라야 한다'는 방침으로 매장을 세우지만 마치 동네의 오래된 커피숍이나 서점처럼 늘 한 자리에 있던 것 같은 편안함을 주기 위해 매장마다 그 지역의 문화를 반영한다. 일례로 국내 가로수길 매장에는 한국 전통 건축에서 주로 사용하는 소나무, 쑥 등으로 염색한 한지로 디자인했으며 약 5m 길이의 소나무 테이블을 매장 중앙에 배치했다.

직원들에게도 고객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철저히 교육시킨다. 고객들이 스스로 제품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고객이 제품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샘플이나 음료 등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전 세계 시그니처 매장 직원들은 매장 근처의 맛집이나 미술관 등의 정보를 미리 알아두고 추천을 해주기도 한다.

이렇듯 이솝은 자신들의 일관된 철학 덕에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다. 실제로 매해 전 세계에서 3억 달러(약 36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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