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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글라스 패밀리' 속 커크 더글러스 |
할리우드의 명배우 커크 더글러스가 5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103세. 고인의 아들로 할리우드 스타인 마이클 더글러스는 이날 부친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1916년 미국 뉴욕에서 유대계 러시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세인트로렌스대학을 졸업하고 드라마 예술아카데미에 진학해 배우의 꿈을 키우다 1946년 '마사 아이버스의 위험한 사랑'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그는 1949년 출연한 '챔피언'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 스타덤에 올랐다. 움푹 파인 턱과 냉소적인 미소로 챔피언이 되기까지 물불 가리지 않는 냉혹한 복서를 완성했다. 챔피언 벨트를 차지하지만 가족ㆍ친구들과 멀어지고, 결국 경기 도중 입었던 부상으로 쓸쓸히 죽어간다는 내용은 권투 소재 영화였지만 인생의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담아 관객의 발걸음을 끌어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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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크 더글러스(왼쪽)와 아들 마이클 더글러스 |
'챔피언'이 기대 이상의 흥행수익을 올리자 워너브라더스는 재빨리 고인에게 고액의 전속금을 제시해 장기 계약을 맺었다. 고인은 '챔피언'으로 그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성인잡지 '플레이보이'로부터 '올해를 빛낸 최고 스타'로 선정됐다. 당시 그는 "모든 사람이 갑자기 내게서 섹스어필을 느끼고 있지만, 나는 애초부터 그런 분위기의 남자였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고인은 '형사 이야기(1951)'에서 통제할 수 없는 경찰관 짐 맥러드, '악당과 미녀(1952)'에서 과대망상적인 영화제작자 요나단을 맛깔나게 연기해 극찬받았다. '열정의 랩소디(1956)'에 출연해 광기의 경계를 불안하게 떠도는 빈센트 반 고흐까지 설득력 있게 표현해 할리우드 캐스팅 1순위로 자리잡았다. 강렬한 연기는 서부극에서도 빛을 발했다. 'OK 목장의 결투(1957)'의 폐병 환자 닥 할리데이와 '용감한 자는 외롭다(1962)'의 카우보이 잭 번즈가 대표적인 예다.
그는 스탠리 큐브릭(1928~1999) 감독의 영화에도 두 차례 주연했다. '영광의 길(1957)'에서 제1차 세계대전 중 퇴각한 부하들을 대변하는 프랑스군 대령 덱스, '스파르타쿠스(1960)'에서 로마 제국에 항거해 반란을 주도하는 노예 스파르타쿠스로 분했다. 특히 '스파르타쿠스'에서는 어머니 이름을 따서 프로덕션 '브라이나 컴퍼니'를 세우고 제작과 총지휘까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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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파르타쿠스' 속 커크 더글러스 |
고인은 '스파르타쿠스'를 만들면서 의심을 조장하고 유망한 배우들의 경력을 망치며 할리우드를 괴롭힌 블랙리스트 정책을 뒤엎는 데 일조했다. 당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던 달턴 트럼보에게 각본을 맡기고 가명으로 글을 썼던 그의 이름을 처음으로 크래딧에 올렸다. 이를 계기로 블랙리스트는 흐지부지 소멸됐다. 그는 당시 경험을 '나는 스파르타쿠스다'라는 책에 상세하게 기록했다.
고인은 1970년대 이후에도 영화 약 마흔 편에 출연했다. 감독으로 변신해 '무뢰한(1973)', '파시(1975)' 등을 만들기도 했다. 은퇴한 후에는 미술품을 팔아 학교 운동장을 세우고 수천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공익적 가치를 알리는 데 매진했다. 많은 배우에게 귀감이 돼 1996년 미국 아카데미시상식과 1999년 미국배우조합상에서 각각 공로상을 받았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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