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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비건의 맛집

한겨레 이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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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비건 맛집에서 만납시다.”

회장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10년이 훨씬 넘도록 채식 위주로 먹어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랫동안 유제품과 우유까지 먹지 않고 동물의 가죽과 털 제품도 쓰지 않는 엄격한 비건주의를 실천하다가, 해산물 먹는 페스코였다가, 덩어리 고기를 먹지 않는 ‘비덩주의’를 오갔다. 지금은 ‘육류를 되도록 먹지 않는 사람’을 지향한다. 만두나 평양냉면을 포기하는 일이 너무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채식 지향’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인 것 같다. 호텔 결혼식에서 제공하는 단일 스테이크 메뉴 탓에 배를 곯을 때도 있고, 비행기를 탈 적엔 채식 기내식을 신청해 남보다 먼저 밥을 먹고 즐거워하기도 한다.

그런 나에게 새로운 비건 맛집 정보라니. 이건 마치 고기를 일절 쓰지 않고도 언제나 환상적인 짜장면 맛을 보장하는 단골 채식 중식당 발견 이후 최대의 ‘사건’이 될 수도 있는 터였다. 게다가 우리 회장님이 누군가. 가족 산악회의 빈틈없는 리더로서 정확한 정보력과 끈질긴 취재력을 자랑하는 우리 친언니님 아니시던가. 그분이 비건의 맛집을 발견하셨다니, 이건 무조건 쾌재를 부를 수밖에.

우왕좌왕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고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따라 겨우 도착해 유리에 낀 김을 닦아내고 안경을 도로 쓴 순간, 눈을 의심했다. 맛집은 맛집이었으되, 식탁 위 끓고 있는 냄비의 큼직한 대파 사이에 정체를 드러낸 물체는 분명 뽀얀 살갗의 닭이었다. 비건 맛집이라더니 이게 웬 변고인가! 알고 보니, 그 식당은 미국 정부에서 대북 정책 실무를 총괄하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애정’하는 ‘닭한마리’ 맛집이었던 것이다. 과연 회장님의 정보력은 정확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채식에 실패한 또 하루를 남겨야만 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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