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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 제국]⑧밥값도 아껴 옷 만드는데, 소송비 1000만원이 어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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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 기업 절반, 1인 영세기업…77%가 3인 이하

대기업 상대하려면 변호사 선임비만 수천만원 "엄두도 못내"



[편집자주]"이른바 '짝퉁'(위조 상품)보다 심각한 게 '카피 상품'입니다." 주요 패션업체 관계자의 말입니다. '카피 상품'이란 말 그대로 특정 브랜드 제품 디자인을 고스란히 베낀 제품을 의미합니다. 상표까지 도용해 누구나 불법임을 아는 '짝퉁'과 비슷한 듯하지만 다릅니다. 업계 일각에서는 디자인 도용을 일종의 '관행'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디자인 카피도 명백한 법적 처벌 대상입니다. <뉴스1>은 국내 패션업계의 '경각심'을 일깨우도록 디자인 카피의 문제점을 짚어봤습니다.

민주주의 서울 시민 제안문 © 뉴스1

민주주의 서울 시민 제안문 © 뉴스1


(서울=뉴스1) 정혜민 기자,이승환 기자 = #"표절과 관련된 법적 분쟁에서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상대하는 것은 버겁습니다. 3심까지 이르는 시간과 소송 비용만으로도 작은 기업들은 비즈니스를 이어나가기 힘든 상황에 직면합니다. 현재 패션계의 모든 분쟁은 법정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습니다. 작은 기업이 큰 기업과 최소한 평평한 운동장에서 다퉈 볼 수 있도록 패션 분야의 전문적이고 공적인 지원·자문기관과 제도를 만들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30일 <뉴스1>이 입수한 '민주주의 서울 시민제안'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3년 차 패션 스타트업을 운영하던 한 청년 A씨는 지난해 12월 그림을 그리던 펜을 들어 편지를 썼다. 서울시에 '패션 표절 분쟁 중재 위원회'를 만들어 달라고 호소하기 위해서다. A씨가 서울시 '민주주의 서울' 웹페이지에 올린 글에는 시민 540명이 공감을 눌렀다.

해외 사이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프랑스 브랜드 '베트멍' 원피스(왼쪽), 오른쪽은 임블리에서 판매된 원피스. © 뉴스1

해외 사이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프랑스 브랜드 '베트멍' 원피스(왼쪽), 오른쪽은 임블리에서 판매된 원피스. © 뉴스1


◇"밥값 아껴서 옷 만드는데 소송은 어떻게 하나"

제안문에서 A씨는 자신의 상품이 인기를 끌자 중견 패션기업 B사에서 자사 상품의 특징을 베낀 카피 상품을 출시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모든 구성원들이 노력한 긴 시간 끝에 겨우 인기 아이템이 나왔지만 큰 기업 앞에서 속절없이 스러지는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표절 문제를 제기했지만 B사는 대형 로펌을 통해 보내온 내용 증명이었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B기업은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자신들이 법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민·형사상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다만 B사는 A씨에게 위와 같은 내용증명을 보낸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최근 자신의 디자인을 담은 새 브랜드를 창업하는 신진 디자이너가 크게 늘었다. 창업을 독려하는 정부 정책 영향이다. 하지만 대부분 규모가 영세해 디자인과 생산 이외 노무·세무·법무 등은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이런 신진 디자이너들은 ㅌ대기업과의 표절 문제로 소송전을 치를 경우 본업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 하지만 패션 카피 문제는 당사자 간 대화 이외에는 소송 밖에 그 해결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임동한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팀장은 "디자이너가 디자이너의 디자인을 카피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중·대형 패션기업이나 대형 유통사가 카피한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임 팀장은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밥값을 아껴 생산비에 투입할 정도로 여유 재정이 없다"며 "소송전에서 영세 디자이너가 대기업을 이길 방법이 없으니 제소를 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후남 강동대학교 교수(패션디자인과)는 "최근 정부 지원이 늘어나면서 취업 대신 자신의 브랜드를 창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영세 1인 신진 디자이너가 늘어남에 따라 디자인 보호 등 사업 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패션 스타트업 75%가 1인 영세 기업…소송 비용은 최소 1000만원

패션 스타트업 75%가 1인 기업 영세 기업이다. 하지만 소송 비용은 최소 1000만원에서 수 천만원에 이르기 때문에 이들은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은 엄두도 못 내는 실정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17 디자이너패션 사업 실태조사'(722개 디자이너 패션 기업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7.3%가 1인 기업이었다. 76.9%는 3인 이하의 인원을 고용하고 있었다. 스타트업(형성기)들은 75.2%가 1인 기업이었다.

스타트업의 평균 매출은 5982만원으로 "본인 인건비를 제하고 나면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평균 매출보다 못버는 기업도 61%에 달했다. 이렇다 보니 "외부 투자는 거의 없으며 소액 대출로 해결하는 상태"라고 평가했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법학)는 "소송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적다 보니 영세한 디자이너들은 거의 소송할 엄두를 못 낸다"며 "용기 있게 소송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생업에 지장을 받으며 경제적으로 힘든 처지에 놓이게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패션 디자인 카피 문제로 대기업을 제소하려면 착수금만 1000만원에 이르고 승소한다면 성공 보수금도 내야 한다"며 "세계적인 패션 기업을 상대하려면 비용이 수천만원에 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서울디자인재단에 패션 디자인 카피 관련 소송 건으로 상담을 요청한 패션 스타트업은 2~3곳 정도다. 서울디자인재단에 따르면 매년 비슷한 건수의 상담 요청이 들어오지만 지자체는 개별 소송에 개입할 수 없게끔 돼 있다.

유제우 서울시 패션정책팀장은 "그동안 디자인 권리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인식이 부족했지만 최근 카피 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권리를 등록하는 디자이너가 늘고 있다"며 "소송까지 가기 전에 권리를 등록해 침해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hemingwa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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