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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된 딸, 보람찬 일 많이 해 엄마 기쁘게 해준다더니…"

조선일보 포항=이승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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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이송 헬기, 독도 인근 추락해 7명 실종… 애타는 가족들]

헬기 기장은 경력 20년의 기러기 아빠… 장모·처남 달려와 눈물
부기장 외삼촌 "동생도 3년 전 간암으로 잃어, 억장이 무너진다"
보호자로 탑승했던 선원의 가족 "이번이 마지막 출항이라 했는데"
"엄마, 걱정 마. 소방관 일 생각보다 안전해. 생명을 구하러 달려가는 거잖아."

소방관이 된 지 만 1년, 박모(29) 소방사는 어머니가 "위험한 일을 왜 하려고 하느냐"며 말릴 때마다 약속했다. "보람찬 일을 많이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줄게." 지난달 31일 오후 9시 30분, 박 소방사는 환자를 안전하게 이송하라는 임무를 맡고 소방 헬기에 탑승했다. 보람찬 일을 많이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던 그는 타고 있던 헬기가 추락하면서 다른 6명과 함께 실종됐다. "내 딸 삼킨 바닷물을 어찌 보라고…." 박 소방사의 아버지 박모(56)씨는 1일 경북 포항남부소방서 실종자 가족 대기실에서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다른 가족 20여명은 해경에서 마련한 헬기를 타고 사고 해역으로 떠난 후였다.


충남 홍성이 고향인 박 소방사는 어릴 때부터 타인의 생명을 살리는 소방관이 꿈이었다고 한다. 가천의대 응급구조학과를 졸업하고 대학병원에서 응급 구조 실무 경험을 쌓아 지난해 소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중앙구조본부 영남특수구조대에 배치되면서 가족과 떨어져 대구에서 혼자 살았다. 박 소방사의 동료인 조태현 소방관은 "임관한 지 얼마 안 돼 적응하기 힘들었을 텐데도 박 소방사는 항상 먼저 밝게 인사하고 주변 분위기를 좋게 만든 동료였다"고 말했다.

사고 헬기를 몬 김모(46) 기장은 공군과 산림청을 거친 20년 경력의 베테랑 조종사였다. 아내와 아이는 교육 문제로 말레이시아에 가 있어 대구에서 혼자 살았다고 한다. 장모께 인사를 드린다며 충남 천안에 있는 처가에 들러 묵고 가기도 했다. 김 기장의 실종 소식을 듣고 달려온 장모와 처남은 넋을 놓은 채 눈물만 흘렸다.

(사진 왼쪽)사고 해역으로 가는 실종자 가족 - 1일 오후 경북 울릉군 사동항에서 전날 추락한 소방 헬기 탑승자의 가족(오른쪽)이 사고 해역으로 가기 위해 119대원의 안내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추락한 소방헬기 잔해 - 1일 경북 독도 인근 해역에서 전날 응급환자를 실어 나르다 추락한 소방헬기의 잔해가 물 위에 떠 있다. 사고 헬기 동체는 이날 수심 72m 지점에서 발견됐다. /연합뉴스·해경

(사진 왼쪽)사고 해역으로 가는 실종자 가족 - 1일 오후 경북 울릉군 사동항에서 전날 추락한 소방 헬기 탑승자의 가족(오른쪽)이 사고 해역으로 가기 위해 119대원의 안내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추락한 소방헬기 잔해 - 1일 경북 독도 인근 해역에서 전날 응급환자를 실어 나르다 추락한 소방헬기의 잔해가 물 위에 떠 있다. 사고 헬기 동체는 이날 수심 72m 지점에서 발견됐다. /연합뉴스·해경


경력 14년인 이모(39) 부기장의 외삼촌 김화선(58)씨는 전날 밤 헬기 추락 소식을 듣자마자 포항으로 달려왔다. 실종자 가족 대기실에서 만난 김씨는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강원도 원주가 고향인 이 부기장은 공군비행학교에 들어가 헬기 조종을 시작해 소령으로 예편했다. 군과 민간 항공사 등에서 14년 경력을 쌓은 뒤 지난 2016년 중앙구조본부 영남119특수구조대에 전문경력관으로 들어왔다. 이 부기장은 지난 4월 강원도 대형 화재 때도 소방 헬기를 타고 진화 작업에 앞장섰다. 위험이 따르는 임무였지만 "사람을 구하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이 부기장은 3년 전 간암으로 남동생을 잃었다. 외삼촌 김씨는 "(이 부기장의) 아들이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환자 윤모(50)씨의 보호자로 헬기에 동승한 박모(46)씨는 윤씨와 함께 홍게잡이 배를 타고 출항한 동료 선원이다. 경남 밀양에서 경북 울진을 오가며 십수 년간 홍게 조업을 해왔다. 박씨의 여동생은 "오빠가 이번에 배 타고 나가기 전에 '자잘한 해상 사고가 많아 이번만 하고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며 "마지막 출항에서 이런 사고를 당하다니 참담하다"고 말했다. 배모(31) 구조원은 결혼한 지 2개월 된 새신랑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소방청장 표창을 받은 모범 대원이었다.


실종자들을 찾기 위해 독도 인근 해상에서 해경과 해군 등이 배 14척, 항공기 4대를 동원해 1일 밤샘 수색을 벌였다. 이들을 태운 헬기가 추락한 원인은 헬기의 블랙박스와 보이스레코드가 회수돼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황상훈 동해해양지방경찰청 수색구조계장은 "사고 원인에 대해선 사고 헬기 동체 인양 등이 마무리돼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이승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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