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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얗고 부드러운 거품 매력적…천년 전 '고려 단차'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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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재서 ‘고궁다담’ 차 행사 열려
일본 말차 아닌, 고려 가루차 재현
청자 다완(찻사발)에 뜨거운 물을 부어 예열한다. 마른 다건(찻잔 닦는 헝겊)으로 물기를 닦아낸 뒤 가루차를 조금 담는다. 뜨거운 물을 더한 뒤 대나무 차선(찻솔)으로 격불한다. 격불은 차선을 빠르게 움직여 거품을 내는 행위다. 약 1~2분간 정성 들여 격불을 하면 자잘한 흰 거품이 올라오면서 부드러운 백차(白茶)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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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9일 창덕궁 낙선재에서 열린 '고궁다담' 행사에서 고려단차를 재현하고 있다. 차를 곱게 갈아 가루를 낸 다음 뜨거운 물을 부어 거품을 내 마시는 게 특징이다. 차선으로 격불하는 모습. 유지연 기자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와룡동에 위치한 창덕궁 낙선재에서 ‘고궁다담’ 행사가 열렸다. 차(茶)를 마시며 차 문화와 역사에 대해 짚어보는 프로그램으로 26일 토요일에도 창덕궁 낙선재 서행랑과 창경궁 통명전에서 개최된다.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 (사)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주최로 ‘제다(製茶)’ 활성화를 위해 마련된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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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잎을 따고 쪄서 고를 짜내 갈아낸 다음, 틀에 넣고 둥근 모양을 만들어 건조해 만든 고려 단차. 총 7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사진 박동춘]



이날 행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1천 년 전 고려 시대 차가 재현돼 눈길을 끌었다. 귀족 문화가 발달한 고려 시대는 차 문화의 융성기다. 왕실 귀족층과 관료 문인들의 애호, 사원의 든든한 경제력을 토대로 10세기 이후에는 풍토와 기호에 따른 독자적인 차 문화를 형성했다. 이날 공개된 고려 단차(團茶)는 말 그대로 둥글게 쪄서 말린 차를 의미한다. 찻잎을 따서 찐 후 고(엽록소)를 짜내면서 찻잎을 갈아낸 다음, 틀에 넣고 둥근 모양을 만들어 건조하는 7단계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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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른쪽 망치 모양의 도구로 딱딱한 차를 깨트린 다음 가운데 맷돌이나 왼쪽 차연에 넣어 가루를 낸다. 유지연 기자



단차는 찻잎을 뜨거운 물에 우려내 마시는 기존 차와 달리, 가루를 내 물에 타 마시는 형태라 색다르다. 딱딱하게 건조된 둥근 단차는 망치 형태의 도구로 깨트린 다음 맷돌이나 다연(가루 내는 도구)에 넣어 갈아낸 뒤, 비단 망사로 만든 고운 체에 걸러 곱게 분말 형태로 만들어야 마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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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연으로 가루를 낸 차를 비단 망사로 만든 체에 걸러 고운 분말을 낸다. 유지연 기자



다완에 가루를 넣고 격불 하는 과정은 일본 말차(가루차)를 연상시킨다. 사실 일본 말차의 원형을 고려 단차로 볼 수 있다. 차를 곱게 갈아 가루를 낸 다음 뜨거운 물을 부어 거품을 내어 마시는 탕법인 ‘점다법’을 특유의 차 문화로 발전시킨 일본과 달리 고려 단차는 명맥이 끊겼다. 이날 재현된 고려 단차가 의미 있는 이유다.

새파란 초록빛을 띠는 일본 말차와 달리 고려 단차는 ‘백차’라고 불릴 정도로 뽀얗다. 연한 어린잎 위주로 만든 차라서 그렇다. 덕분에 비릿하지 않고 구수하며, 은은한 단맛이 올라온다. 조밀하게 형성된 거품 덕에 마치 라떼(우유 탄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크리미한 식감이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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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단차는 가루를 타 마시는 차다. 물로 우려내는 차보다 맛이 진하고, 거품이 있어 맛이 부드럽다. 유지연 기자



‘우리 차’라고 하면 보통 찻잎을 우려내 마시는 맑은 녹차만 떠올린다. 차를 잘 모르는 이들한테는 맑은 차 맛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고려 단차는 부드럽고 진한 맛을 선호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친숙한 맛이라 흥미롭다. 차 가루에 물을 부어 차선으로 거품을 내는 과정도 하나의 퍼포먼스로서 즐길 거리가 된다.

이날 행사를 주관했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박동춘 소장은 “지금은 사라진 12세기경 고려 차의 원형이 어떤 것이었는지, 고려와 비슷하게 송나라의 발달한 차 문화에 영향을 받은 일본이 어떻게 독자적인 차 문화를 만들어나갔는지 가늠해 보는 것도 이번 행사의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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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박동춘 소장.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10월 26일 창경궁 통명전에서 열리는 ‘고궁다담’은 ‘홍엽만당-차의 이로움, 어떻게 마셔야 할까’라는 주제로 조선의 잎차를 마셔보는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사전신청을 통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을 받는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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