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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박물관]①韓근현대 100년 역사 함께…국민 소주 ‘진로’

이데일리 이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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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10월 진천양조상회서 처음 출시한 진로
1965년 희석식 소주 대중화 이후 선두주자로
제품력과 기발한 마케팅으로 ‘진로 시대’ 열어
지난 4월 ‘뉴트로 진로’ 출시해 제2의 전성기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이데일리 이윤화 기자] 대한민국 근현대 격동의 100여년 역사를 함께 해온 술이 있다. 1924년 10월 순수한 민족자본으로 세운 진천양조상회(眞泉釀造商會)에서 출시한 ‘진로(眞露)’ 소주다.

우리나라에서 소주는 고려시대부터 시작되어 조선 초까지는 사치스런 고급주로 분류됐다. 이후 근대에 이르러 대중화되었는데, 진로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소주 브랜드다.

1970년 서울공장과 공병 야적장을 연결하는 컨베이어 벨트 모습. (사진=하이트진로)

1970년 서울공장과 공병 야적장을 연결하는 컨베이어 벨트 모습. (사진=하이트진로)


진로의 창업자는 황해도 곡산 공립 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장학엽(1903~1985) 씨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가르침을 인용해 학생들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사직을 강요받고 교단을 떠난 이후 양조업에 뛰어 들었다. 그는 생산지와 생산방식의 글자를 각각 따서 ‘진로’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진(眞)’은 생산지인 진지에서 따온 글자로 ‘진지’는 원래 ‘참못’이라 불리던 물 좋기로 이름난 평남 용강 땅의 상징이었다. ‘로(露)’는 순곡(純穀)으로 소주를 증류할 때 술 방울이 이슬처럼 맺히는 것에서 착안했다.

장 씨는 경쟁이 치열한 양조업계에서 품질로 경쟁력을 만들었다. 진로 특유의 쓴 맛을 지닌 ‘흑국 소주’를 개발한 것이다. 재래식보다 많은 양의 소주를 만들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독특한 쓴맛이 있어 일본식 소주와 차별되기도 했다.
1975년 진로소주 월 생산 1백만상자 돌파 기념식. (사진=하이트진로)

1975년 진로소주 월 생산 1백만상자 돌파 기념식. (사진=하이트진로)


진로는 1965년 주류업계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품질의 우수성과 함께 독창적인 마케팅 활동이 주효했다. 당시 진로는 ‘밀림의 바 작전’, ‘왕관(병마개) 회수 작전’ 등 기발한 판촉활동을 펼치면서 국내시장 1위를 차지하게 된다.

밀림의 바 작전은 서울 남산·장충공원 등 수목지대에서 활동하는 소주행상 ‘들병장수’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1일 1진로’ 캠페인이다. 왕관회수 작전은 진로 소주를 팔고 그 왕관(뚜껑)을 모아오면 보상을 해준다는 마케팅이었다.

특히 왕관 회수작전은 삼학과의 소주 전쟁을 마무리하는 결정타로 작용했다. 삼학과의 경쟁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던 1966년 진로(당시 서광주조)의 임원들이 여러 의견을 논의하던 끝에 한 감사가 ‘왕관을 사들이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고 이후 1993년 ‘진로골드’로 리뉴얼을 거치기 전까지 줄곧 1위 자리를 지키며 소주시장을 이끌었다.


진로는 제품의 다양화와 생산 증대를 통해 1975년 월 평균 생산량 100만 상자를 돌파했다. 이는 전년대비 1.4배 증가한 수치로, 당시 전국의 소주 총 생산량 가운데 42%에 달했다. 이후 시장경쟁이 치열해졌지만 진로 소주의 생산량은 계속 늘었고 진로는 1980년 점유율 39.2%, 1981년 40.0%로 압도적으로 높은 점유율을 유지했다.

1982년에 들어서는 1973년 이래 소주업계의 생산을 규제해 왔던 주정 배정제(술의 원료인 주정의 공급량을 제한하는 제도)가 공정거래법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부분적으로 해제되었다. 이로 인해 진로의 생산량은 더욱 늘었고, 시장 점유율은 43.2%로 크게 신장됐다. 1983년과 1984년에도 진로 소주는 각각 41.5%, 41.3%로 높은 점유율을 이어갔다.

진로는 약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만큼 상표와 도수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트레이드마크(상징물) 역시 생산 초기부터 약 30년 간 ‘원숭이’를 사용했지만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 1954년 강한 번식력과 장수를 상징하는 ‘두꺼비’로 변경했다.


진로 소주의 도수는 1924년 첫 출시 당시 35도였다. 이후 1965년 30도, 1973년에 25도로 점차 낮아졌다. 식량부족 문제로 정부가 양곡을 원료로 한 증류식 소주 생산을 금지해 알코올을 물에 희석시키는 지금의 희석식 소주가 대량생산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이후 25도 소주가 30년간 사랑받았다. 25도의 벽은 1998년 23도짜리 순한 소주 ‘참이슬’이 출시되며 깨졌다. 당시 파격적인 도전으로 의견이 분분했지만 출시 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25도짜리 ‘진로골드’는 현재도 일부 마니아층을 위해 소량 생산되고 있다.

그리고 지난 4월 1970년대 과거 디자인을 복원·재해석해 출시한 ‘진로이즈백’의 도수는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저도수의 편한 음용감을 위해 16.9도로 개발했다.
‘진로이즈백’ 출시 홍보 포스터. (사진=하이트진로)

‘진로이즈백’ 출시 홍보 포스터. (사진=하이트진로)


오성택 하이트진로 마케팅실 상무는 “뉴트로(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 제품은 95년 전통의 하이트진로 만이 선보일 수 있는 제품으로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제품력과 완성도를 높였다”며 “참이슬과 돌아온 진로로 소주 시장의 성장을 이끌며 끊임없는 연구 개발을 통해 소비자와 시장의 요구에 맞는 제품을 선보이는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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