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홍두깨 선생님(왼쪽)과 테리우스. |
# 홍두깨 선생님은 에니메이션 ‘달려라 하니(1988)’에 나오는 체육선생님이다. 외모는 지저분한 수염, 덥수룩한 머리가 특징이다. 가난하고, 여자를 좀 밝히기도 하고, 행동도 좀 어수룩하지만 때로는 아주 진지하다. 무엇보다 제자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멋진 캐릭터다. 교사지망생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테리우스는 순정만화 캔디캔디(1975, ‘들장미 소녀 캔디’는 한국 TV판 제목)의 캐릭터로 조각 같은 미남의 상징이다. 워낙에 그 이미지가 강해 가수 신성우, 축구선수 안정환 등 긴머리를 한 잘생긴 남자들에게 별명으로 붙기도 했다.
# 한국 초등학교 탁구에 테리우스로 등장해 지금은 홍두깨 선생님이 된 탁구 지도자가 있다. 천안 성환초등학교 탁구부의 김인수(42) 감독(체육교과전담)이다. 지금 그를 보면 딱 홍두깨 선생님 같다. 큰 키에 또렷한 마스크로 ‘어, 잘생겼네’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내 덥수룩한 머리, 까칠한 수염, 트레이닝복으로 대충 입은 복장 등이 ‘체육교사’라는 직업과 함께 홍두깨 선생님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그와 동기인 금빛나래 유아탁구단의 고경아 코치는 “이미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홍두깨로 통해요.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술을 좋아하고, 엉뚱한 것까지요”라고 설명했다.
![]() |
선수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김인수 성환초 탁구부 감독. |
# 여기서 잠깐 이 ‘홍두깨 선생님’의 과거로 가보자. 김 감독은 청주한벌초-봉명중-청주고-전남대에서 선수생활을 한 정통 탁구인이다. 체육교육을 전공하고 2006년부터 2년간 속초 청대초에서 탁구코치를 했다. 이때 지금 한국 남자의 에이스인 장우진(미래에셋대우)을 가르쳤다. 그리고 2008년부터 지금까지 만 12년이 되도록 성환초에 몸담고 있다. 안 꾸며서 그렇지 지금도 준수한 외모인데, 180cm가 훌쩍 넘는 호리호리한 체형에 미남인 ‘젊은 김인수’는 정말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패션까지 관심이 많아, 머리를 길게 기르고 서울 유명 미장원까지 머리손질을 다니기도 했다. 동네가게에 뭐 하나 사러 갈 때도 분홍색 와이셔츠에 구두를 신고 나섰다. 잘생긴 사람이 말이 없으면 더 멋있게 보이는데, 그는 성격까지 과묵해 죽자고 따라다니는 아가씨들까지 몇몇 있었다고 한다.
# ‘젊고 잘생긴 지도자’ 김인수는 10여 년 전 초등학교 탁구대회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일단 외모로 파란을 일으켰다. “지금 생각해도 웃겨요. 탁구, 아니 스포츠계는 좀 보수적이잖아요. 그런데 젊은 남자코치가 치렁치렁한 머리에, 머리띠까지 딱 차고 있어요. 옷도 분홍색 와이셔츠에 빨간색 카디건을 입고, 운동화까지 최대한 구두처럼 보이는 걸 신고 와요. 그냥 테리우스이니, 그 자체로 눈에 띄죠. 그리고는 남들 시선은 무시한 채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쳐요. 쇼트를 열심히 대주는데, 그 폼이 좀 특이해서 ‘저 사람 누구냐?’며 다들 수근댔어요. 선수 때부터 조용한 성격으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당시에 대한 한 초등학교 탁구코치의 술회다.
![]() |
김인수 감독의 한 지인에게 부탁해 받은 '살짝 테리우스 시절'의 김인수 감독. 본인은 젊은 시절 사진을 부끄럽다며 주지 않았다. |
# 만화를 찢고 나온 것 같은 이 테리우스 탁구코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털털함으로 충격을 주기도 했다. 한 번은 안면이 있는 여자코치들이 체육관에서 점심으로 짬뽕을 거의 다 먹어가는데 쑥 얼굴을 내밀며 “어제 내가 술을 많이 먹어서 해장을 해야되는데, 이거(남은 짬뽕국물) 먹어도 되요?”며 게걸스럽게 먹었다고 한다. 김 감독은 천성적으로 낯을 많이 가리지만 일단 친해지면 그 사람좋음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한다. 함께 술자리를 해 본 사람은 밤새도록 탁구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그의 열성, 그러다가 제풀에 지켜 엉엉 울어버리는 엉뚱함에 반해버린다고 한다.
# 핵심은 ‘잘생기고 털털하다'가 아니다. 김인수 감독은 탁구를 잘 가르친다. 성환초등학교는 그가 부임한 후 매년 성적을 내고 있다. 올해도 지난 5월 대통령기 우승 등 ‘못해도 4강’이다. 이유는 ‘누가 좀 말려주세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김 감독이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기 때문이다. 성환초는 전국에서 가장 훈련량이 많기 유명하고, 김인수 하면 가장 열심히 가르치는 지도자로 통한다. 그는 한 번 '필'이 꽂히면 세네 시간 쉬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친다. 중간에 배가 고프면 안 되기에 아예 밥을 해먹을 취사도구와 간식까지 옆에 두고 아이들을 지도한다. 밥이 되는 시간이 아까워 그 틈에 아이들을 가르쳤다는 것은 성환초의 전설이라고. 혹 강압적이지 않을까? 되레 아이들에게 너무 잘해준다. 스스로 “요즘 아이들은 강압적으로 하면 안 돼요. 아이들이 하고 싶도록 만들어야죠. 그러려면 제가 먼저 탁구에 미쳐야 하죠. 제가 재미있으면 아이들도 재미있어 합니다. 제가 말이 없는 편인데, 아이들과 훈련할 때는 아주 말이 많아요. 반복 또 반복...”라고 설명한다.
# 성환초등학교 탁구는 특징이 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학부모가 많은데, 김 감독은 마다하지 않는다. 운동신경이 뛰어나면 거기에 맞게, 좀 부족하면 또 거기에 맞게 선수들을 길러낸다. 그러니 늘 성적도 난다. “초등학교 탁구는 나름 재미있어요. 아이들의 탁구스타일이 처음 만들어지거든요.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새로 그리는 것 같아요. 아이들의 특성에 맞는 탁구를 입히고, 그러면서 아이들의 기량이 느는 것을 보면 정말 뿌듯하죠. 이거 안 해본 사람은 모릅니다.” 김 감독은 실력 좋든, 떨어지든 전지훈련을 오는 팀은 거절하지 않는다. 중국탁구 등 탁구에 대한 연구도 혼자 많이 해서 마음에 맞는 사람이 나타나면 새벽까지 탁구얘기를 하기도 한다.
![]() |
단독사진을 잘 안 찍다는 김인수 감독을 설득해 한 장 찍었다. |
# 이런 일도 있었다. 총각시절 학교 근처 관사에 살던 김인수 감독은 가정형편상 고모네 집에 살던 한 아이에게 탁구에 입문시켰다. 관사에는 교직원 외에는 살 수 없었기에 학교 근처에 집을 얻어 이 학생과 3년반을 함께 살았다. 탁구를 가르치고, 밥을 해먹이고, 공부까지 도운 것이다. 이 초등학생은 탁구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했고, 지금도 대학부 4강 정도의 실력으로 탁구로 살아가고 있다. 김인수 감독은 총각시절 월급의 절반 이상을 아이들을 위해서 썼다. 보다 못한 부모님이 “뭐하러 그렇게 고생하냐? 우리 건물에 카페라도 하나 내줄 테니 장가도 가고, 편하게 살라”고 제안했지만 거절했다.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탁구를 아이들에게 열심히 가르치고, 실컷 자기 멋을 즐기면서 총각시절을 보낸 것이다.
# 김인수 감독은 2015년 열애 끝에 한 교육공무원과 결혼했다. 탁구에 대한 열정은 변한 게 없지만 외양은 결혼 후 많이 달라졌다. 좋아하는 술자리는 최소화했고, '테리우스 머리'도 포기했다. 눈에 띄는 패션도 한결 같은 아저씨 타입의 트레이닝복으로 고정됐다. “젊은 시절에 많이 놀았으니까 이제 아내한테 잘해야죠.” 이렇게 ‘테리우스’는 ‘홍두깨 선생님’이 됐다. 여기에는 아내의 두 차례 유산이라는 아픔도 이유가 됐다. 더 이상 2세 욕심도 갖지 않기로 했다. 대신 부부가 하고 싶은 일을 다하면서 즐겁게 살기로. 이러니 좋아하는 탁구를 가르치는 일에 더 열중하게 됐다. “이제는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딱 제 또래가 됐어요. 아이들이 다 제 아들들 같죠. 진짜 아들은 없지만 제가 탁구를 가르친 아들들이 지금까지 70명은 넘을 겁니다. 앞으로도 아이들한테 제가 좋아하는 탁구를 마음껏 가르치며 살 겁니다.” 살짝 뭉클하다. 만화 속의 사람 좋은 홍두깨 선생님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꾸미지 않아서 그렇지 아주 잘생긴 훈남’이라는 내용이 나왔다. 현실의 '탁구 홍두깨 선생님'도 그렇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편집장]
![]() |
김인수 감독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올라 있는 성환초의 탁구선수들. |
sports@heraldcorp.com
-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