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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 피땀으로 지은 宮… 권력 유지 위한 통치수단” [차 한잔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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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의 두 얼굴’ 출간한 작가 조윤민 / 역사 속 ‘건축 통치’ 그늘 소개 / “세종 왕비 소헌왕후 국상엔 / 1만5000명 동원… 사고사 속출 / 문화유산의 ‘명암’ 제대로 봐야 / 역사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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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간한 ‘문화유산의 두 얼굴’이라는 책을 낸 조윤민씨는 지난 5일 경기도 파주 출판문화단지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문화유산에 깃들어 있는 그늘에도 주목해야 역사를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정호 선임기자


조윤민씨의 근간 ‘문화유산의 두 얼굴’은 제목도 그렇지만 책 표지가 심상찮다. 궁궐 지붕을 짊어진 남자는 힘에 겨워 허리를 반쯤 접었다. 책에서 조씨는 궁궐을 이렇게 바라본다.

“우리 궁궐은 다른 측면, 어쩌면 다른 의미의 ‘인간의 살내음’과 ‘삶의 체취’ 또한 담고 있다고 본다. 그걸 에두르지 않고 말하면, 궁궐을 짓고 꾸려온 ‘백성의 땀과 눈물 내음’, 궁궐이라는 성역에 뿌려진 ‘인간의 욕망과 삶의 피내음’이 될 것이다.”

이번 추석 때도 그랬겠지만 명절 연휴면 가장 붐비는 곳 중 하나가 궁궐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문화의 관광명소”이며 “조선 왕실의 역사와 생활문화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교육과 여가의 문화공간”인 궁궐은 명절이 아니어도 인기가 꽤 높다. 경복궁만 해도 한 해 500만명 이상의 관람객들이 찾는다. 이런 곳을 두고 욕망, 피내음 운운하는 건 진실의 한 단면을 포착한 것이긴 해도 꽤 불편하다. 조씨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다. 굳이 이런 시각을 들이대는 이유가 뭘까.

“문화유산은 흔히 예술적인 양식과 성취, 그것에 깃든 생활양식을 기준으로 이야기되지만, 그것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희생도 있는 법이죠. 양쪽을 합쳐서 볼 때 좀 더 넓은 지평에서 우리 역사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고, 그래야 그것이 품고 있는 역사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궁궐 외에 왕릉, 성곽과 읍치(邑治: 고을 수령이 일을 보는 관아가 있는 곳), 성균관·향교·서원·사찰 등 교육·종교시설을 이런 방식으로 설명한다. 당대의 권력이 주도해 조성하고 유지한 문화유산을 “정치적 권위를 창출하고 지속시키는 상징물”로 설명하면서 “유적의 그늘진 곳으로 아린 눈길”을 던진다. 20년간 방송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동했고, 전작 ‘조선에 반(反)하다’ ‘모멸의 조선사’ ‘두 얼굴의 조선사’를 통해 권력자들의 지배전략과 그것에 대한 저항을 우직하게 탐구해 온 조씨를 지난 5일 경기도 파주의 출판문화단지에서 만났다.

조씨는 “지배층이 분명하고 구체적인 이론이나 의도에 따라 통치술의 수단만으로 궁궐이나 왕릉을 조성했다고 보지는 않는다”면서도 “백성들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고 권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조선의 지배층에만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동서고금의 어떤 권력이든, 특히 대형 건축물에 정치적인 의지를 반영하기 마련이었다. 조씨는 이런 점을 설명하기 위해 책의 각 장마다 프롤로그 격으로 유럽이나 일본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유럽이나 일본의 사례를 보면 동일한 패턴이 확인된다”며 “인류 문화라는 게 작게 보면 지역별로 다르지만, 큰 틀에서 보면 비슷한 면이 많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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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층의 통치 의지가 관철되고,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었던 만큼 이런 시설을 생산, 유지하는 데는 백성의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 1446년 봄, 여름에 걸쳐 거행된 세종의 왕비 소헌왕후의 국상에는 1만5000명의 백성이 동원되었는데, 사고로 죽거나 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속출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조씨는 “‘조선시대 순장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고 꼬집었다. 성리학의 이념에 따라 예와 의례를 앞세워 신분질서의 틀을 견고하게 하고, 백성의 고된 노동과 착취에 가까운 수취 제도를 당연하게 여겼다는 점에서 조선의 지배층이 말한 인정(仁政)과 왕도(王道)는 요샛말로 ‘그들만의 리그’는 아니었는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한 TV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유럽의 화려한 성당을 보며 ‘아름답다’가 아니라 ‘이걸 만드느라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라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이런 시각을 가진 분들이 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는 책의 맺음말에 “당신들(지배층)이 이룬 영광의 발자취 아래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었던 이들, 그 백성의 그늘을 이 시대의 유적 마당으로 기꺼이 초대하려 한다”고 적었다.

그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질문 하나를 떠올리게 된다. 이런 문화유산을 가꾸고 보살피며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즐겨도 되는 것일까.

“보존하고, 계승해야 할 문화유산의 가치를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의 다양한 속성 중 하나에 주목하고, 논의의 장으로 올려보자는 거죠. (조선의 지배층인) 선비가 동시대 다른 지배층에 비해 (피지배층에 대한) 아량이 컸고, 폭력성이 덜했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면도 있었다는 것을 직시하고 토론해보자는 겁니다. 그럴 때 과거를 통해 현재를 제대로 설명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요?”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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