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문득 궁금]초속 50m 태풍에 ‘뚝’…쓰러지는 ‘교회첨탑’ 안전관리는 누구 몫?

조선일보 최상현 기자
원문보기
태풍 ‘링링’ 강풍에 수도권 첨탑 10여개 무너져
"눈길 끌고 권위의 상징"…교회, 첨탑 높이기 경쟁
건축설계에 반영안돼…인가·유지보수 無 ‘안전 사각지대’
지자체 "단속 규정 없다"...전문가 "전수조사 필요"

초속 약 15m의 강풍을 동반한 13호 태풍 ‘링링’이 수도권을 강타한 지난 7일 낮 12시. 서울 도봉구 창동 한 교회에서 높이 10m 짜리 첨탑이 ‘뚝’하고 무너져 내렸다. 부러진 첨탑은 인근에 주차돼있던 차량을 덮쳤고, 자동차 경보음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도봉구 주민 김모(30)씨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교회 첨탑이 그렇게 쉽게 무너져 내릴 줄은 몰랐다"며 "인명 피해가 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이날 첨탑 붕괴 사고가 발생한 곳은 서울 도봉구 뿐만이 아니었다. 고양시, 수원시, 부천시 등 수도권에서만 10여개의 교회 첨탑이 무너지며 차량을 파손하고 인도를 가로막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외출을 삼간 덕분에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태풍 링링의 강한 바람으로 지난 7일 서울 도봉구 창동의 한 교회 첨탑이 주차된 차량 위에 떨어져 있다. /조인원 기자

태풍 링링의 강한 바람으로 지난 7일 서울 도봉구 창동의 한 교회 첨탑이 주차된 차량 위에 떨어져 있다. /조인원 기자


첨탑 붕괴는 강한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할 때마다 발생하는 일종의 ‘연례 행사’가 됐다. 지난 2010년 태풍 곤파스 때는 경기도 안양시에서 첨탑 20여개가 일제히 무너져 내렸고, 2012년 태풍 볼라벤 때도 제주도에서 교회 첨탑이 붕괴해, 인근 500여가구가 정전피해를 입었다. 인구 밀집지역에 주로 위치한 교회 특성상 사고가 인명피해로 이어질 위험도 높다. 지난해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서는 첨탑이 강풍에 무너져 50대 남성 A씨가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됐다.

◇허술한 ‘조립식 공작물’ 첨탑…"한번 세우면 10년 이상 방치"

첨탑 붕괴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원인은 첨탑이 ‘조립식 공작물’이라는 데 있다.

첨탑이 교회 건물과 함께 설계에 반영돼 안전성 인가를 받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완공된 교회 건물 위에 임의로 첨탑을 조립하는 방식으로 세워진다. 첨탑이 당장 무너지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고정 장치로 그냥 얹어두는 식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첨탑이 비바람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그나마 있던 고정 부위가 헐거워지고, 붕괴 위험성이 높아질 수 있다"며 "첨탑처럼 무게가 엄청난 철제 구조물을 설치할 때는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기초 공사를 철저히 해야는 것이 원칙이지만, 대부분의 업자들은 옥상콘크리트에 얕은 구멍을 뚫어 간신히 볼트로 고정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첨탑이 무분별하게 세워진 것도 사고가 빈발하는 원인 중 하나다. 높은 첨탑은 멀리서도 교회가 잘 보여 신도를 끌어모으기 용이하고, 교회의 권위를 높인다는 점에서 선호된다. 첨탑 전문 제작사 대표 B씨는 "교회 측에서 건물이 버틸 수 있는 한 최대한 높은 첨탑을 세워달라고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며 "보통 9~11m로 짓고, 심한 경우 21m 짜리 첨탑을 짓기도 한다"고 했다.


지난 7일 오전 태풍 '링링'의 북상으로 충남 홍성군 광천읍의 한 교회 종탑이 기울어졌다. /연합뉴스

지난 7일 오전 태풍 '링링'의 북상으로 충남 홍성군 광천읍의 한 교회 종탑이 기울어졌다. /연합뉴스


현행법 상 교회 첨탑은 정식 건축물이나 그에 부수되는 시설물도 아닌 옥외 광고판이나 기념탑과 같은 ‘공작물’로 취급된다. 제작·설치 과정에서 안전성에 대한 인·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고 감리자를 둘 의무도 없다. 높이 10m 첨탑의 경우 무게가 800kg에 달한다. 이런 첨탑을 안전 기준에 어두운 철공소가 마음대로 제작하고 설치하는 데도 아무도 제지할 방도가 없는 상황이다.

건물에 비해 유지관리가 허술하다는 점도 문제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구청에서 따로 단속을 잘 나오지 않다보니 첨탑을 점검하는 교회는 거의 없다"며 "한번 설치하면 10~20년은 그냥 방치하다보니 고정 볼트가 녹슬거나 앵커가 파손돼 첨탑 무게로 겨우 서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지자체 "첨탑은 건축물 아닌 ‘공작물’...단속·철거 규정 없다"

매년 반복되는 첨탑 붕괴 사고에도 일선 지자체는 "관계 법령이 없어 첨탑의 설치와 관리를 단속할 수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건축물이나 그에 딸린 시설물은 건축법 규정에 따라 지자체가 안전 상태를 점검하여 보수나 철거 등의 시정 명령을 내릴 수 있지만, 첨탑은 건축물로 분류되지 않아 이같은 조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관할 구역 내에 위치한 첨탑의 현황도 파악하지 못한 지자체가 대다수다. 건축법 시행령에 ‘높이 6미터를 넘는 장식탑, 기념탑 등은 관할 지자체에 신고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유명무실한 상태다. 복수의 지자체 건축과 관계자는 "교회 첨탑 관련 신고가 들어온 경우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며 "일일히 교회 옥상에 올라가 실사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손 놓고 있다"고 했다.

지난 7일 태풍 ‘링링’으로 첨탑 붕괴 사고가 발생한 지자체 중 일부는 아직 안전점검 계획도 수립하지 않은 상태다. 모 구청 관계자는 "매년 첨탑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인지하고 있지만 인력 부족 탓에 지난 2012년 이후로 단속에 나선 적은 없다"며 "단속에 나가 미신고 첨탑을 적발해도 벌금만 부과할 수 있고, 보수나 철거 명령은 할 수가 없는데 실효성이 있겠나"고 했다.

전문가들은 "교회나 지자체나 첨탑에 대한 안전불감증이 심각하다"며 "단속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관련 법령 개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강병근 건국대 건축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첨탑은 ‘사람이 살지 않으면 건축물이 아니다’는 법의 허점을 이용한 편법 공작물"이라며 "더 많은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하루 빨리 첨탑과 같은 ‘고위험 공작물’에 대한 안전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충기 서울시립대 교수는 "무게가 30kg도 나가지 않는 외벽 간판은 꼬박꼬박 단속하면서 1톤(t)짜리 첨탑 관리는 손 놓게 있는게 말이 되느냐"며 "중앙정부 차원에서 교회 첨탑에 대한 전수 조사를 실시하고, 안전 기준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상현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통일교 로비 의혹
    통일교 로비 의혹
  2. 2런닝맨 김종국 결혼
    런닝맨 김종국 결혼
  3. 3강민호 FA 계약
    강민호 FA 계약
  4. 4브리지트 바르도 별세
    브리지트 바르도 별세
  5. 5손흥민 토트넘 계약
    손흥민 토트넘 계약

조선일보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