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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만화가 상징 ‘고바우 영감’ 김성환 화백 별세

한겨레 유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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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7세에 데뷔해 한국전쟁 후 한국만화계 세우고 이끌어

일간지 잇달아 연재한 ‘고바우 영감’은 한국 시사만화 효시

1955년부터 2000년까지 무려 1만4139회 기네스북 올라



“석간을 펼쳐 들면/손주 놈 <고바우>를 묻는다/혀끝에 진득이는 이 풍자 감칠맛을/전할 길 없는 내 어휘 모국어로 가난타네.”(이영도의 ‘흐름 속에서’중)

한국 시사만화가의 상징으로 불리는 ‘고바우 영감’의 김성환 화백이 8일 별세했다. 향년 87.

한국만화가협회에 따르면, 김 화백은 이날 오후 3시45분께 노환으로 타계했다.

1932년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남다른 그림 솜씨로 만 17세에 <연합신문>에 시사만화 ‘멍텅구리’를 연재하며 신문만화가로 데뷔했으며. 한국 전쟁 이후 한국 만화계를 세우고 이끌었다. 한국시사만화가회 명예회장, (사)한국만화가협회 고문 등을 역임했다.

고인의 작품 중 네 컷 짜리 만화 ‘고바우 영감’은 격동기 세태를 풍자하고 우리 국민의 애환을 대변하며 시사만화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고바우 영감’은 1950년 육군본부가 발행한 <사병만화>에 첫선을 보인 뒤 <만화신문>, <월간희망> 등을 거쳐 <동아일보>, <조선일보>, <문화일보> 등 주요일간지에 잇달아 개재됐다. 지금의 중장년층은 신문을 받아들면 ‘고바우 영감’을 제일 먼저 펼쳐보며 그날 가장 핵심적인 뉴스의 맥을 짚어 볼 정도였다. 이 때문에 김 화백은 여러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다. 지난 1958년 경무대(현 청와대)의 절대권력을 비판했다가 허위보도로 유죄선고를 받은 ‘경무대 똥통 사건’은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


‘고바우’는 한국전쟁 피난 중에 탄생한 캐릭터로, 김 화백은 피난 중 다락방에 숨어 습작하며 ‘높을 고’자를 쓰는 성씨에 ‘바우’라는 이름을 붙여, 친근하면서도 어려움에 굴하지 않는 단단한 성품을 지난 인물로 표현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1955년부터 2000년까지 무려 1만4139회나 연재돼 단일 만화로는 우리나라 최장수 시사만화로 2001년 한국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원화는 2013년 2월 근대 만화로는 최초로 등록문화재로 등록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허금자씨와 아들 규정, 딸 규희·규연씨가 있다. 빈소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재생병원 장례식장 8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1일 오전 9시. 031)781-7628, 031)708-4444.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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