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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딸이 지원했던… 그 전형의 별명은 '아버지 뭐 하시노' 였다

조선일보 권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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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상위 10% 스펙전쟁 학종 전형의 백태
일러스트=안병현

일러스트=안병현


'아버지 뭐 하시노' 전형. 대학 입시업계와 수험생들이 2009년 고려대가 운영했던 '세계선도인재전형'에 붙인 별명이다. 이제는 모르는 사람 찾기가 더 어렵지만, 그해 이 전형에 합격했던 학생의 아버지 중 한 명이 바로 조국(54) 법무부 장관 후보자였다. 조 후보의 딸은 한영외고 재학 중 병리학 논문의 제1저자, 조류학 논문의 제3저자로 등재됐으며,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가 주최한 콘퍼런스에 인턴으로 참가했다. 또 고3 여름방학 때 한국물리학회가 주최한 경시대회에 참가해 장려상도 받았다. 평소 같으면 세계를 선도할 '천재'라 불리기 충분한 스펙이지만, 당시 서울 시내엔 조씨 같은 천재들이 적지 않았다. 서울 대치동에서 입시 컨설턴트로 일하는 임모(37)씨는 "고려대 세계선도인재전형은 소논문 작성이나 각종 대회 수상 실적 등 교외 활동을 많이 반영했다"며 "고등학생이 그런 스펙을 쌓으려면 든든한 부모 지원이 필수였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은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스펙 쌓기에 몰두하게 된 건 2008년부터 도입된 입학사정관제도 때문이다. 수능·내신 성적이 좋은 학생뿐 아니라 물리학·생물학 등 특정 과목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거나, 리더십이나 봉사정신 등 다양한 재능을 가진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문제의 세계선도인재전형도 입학사정관제의 하나였다. 취지는 좋았다. 하지만 일부 학생, 특히 조씨처럼 좋은 배경을 가진 학생들과 소위 '서울 대치동 학원가'로 불리는 사교육계가 밀약을 맺으면서 부모의 재력과 인맥을 바탕으로 다양한 재능을 '창조'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이 문제를 인식한 박근혜 정부는 입학사정관제를 '학생종합부'(학종) 전형으로 간판부터 바꿨다. 조씨 같은 재능 창조 사례를 막기 위해 학교 밖 외부기관에서 쓴 논문이나 인턴 활동 등을 학생종합부에 기재하는 것도 틀어막았다. 하지만 대치동과 부모들은 바뀐 환경에 적응했다. 임씨는 "입학사정관제나 학종이나 결국 스펙 싸움이라는 점에서 그 본질은 같다"며 "학교 밖에서 만들어오는 걸 금지하면 학교 안에서 더 은밀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으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지금 '학종'의 최전선은 '스토리'

올해 서울 소재 한 고등학교에 진학한 김모(16)군과 그의 어머니 신모(47)씨는 지난 7월 담임교사와 면담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김군의 목표는 서울대. 하지만 담임교사는 "내신으로 서울대를 가려면 1학기부터 관리해야 하는데 늦은 것 같다"며 "수능이나 학종을 준비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만난 입시 학원 컨설턴트는 신씨에게 "학종에서 제일 중요한 건 '스토리'"라고 강조했다. 학종은 학교생활을 기록한 학생종합부와 자기소개서를 중심으로 학생을 평가한다. 여기서 남들과 차별점을 두려면 1학년 때부터 목표로 한 학교와 학과에 맞는 스펙을 일관되게 추구해야 한다. 그게 바로 '스토리'다. 입시업계에선 고1 때부터 컨설턴트가 붙어 '스토리'를 만들어주는 걸 '올인(all-in) 프로그램'이라고 부른다. 올인 프로그램에 '입학'하면 통상 매년 400만~500만원부터 많게는 수천만원까지 컨설턴트에게 지불해야 한다.

외부 활동이 막혀 있지 않던 입학사정관제 초기엔 논문이나 책을 쓰거나 관련 기관 인턴 및 봉사활동이 대세였다. 11년간 입시 컨설턴트로 일한 김모(43)씨는 "가령 법대가 목표면 1학년 때 인권단체 자원봉사자→2학년 때 로펌 여름 인턴→3학년 때 법률 관련 서적 출판 같은 공식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서울대 공학 박사를 돈 주고 고용해 특허를 출원하면서 자식 이름을 올리거나, 고스트라이터를 고용해 정치를 주제로 한 소설을 쓰게 한 뒤 아들 이름을 공저자로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오직 교내 활동만 인정하는 지금의 학종 시대 주류는 독서 토론 동아리나 통·번역 자원봉사자처럼 어학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봉사활동 같은 것이다. 김씨는 "동아리든 봉사활동이든 중요한 건 '스토리'가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가장 잘 먹히는 건 '성장' 스토리"라고 말했다. 독서 토론 동아리라면 3년간 읽을 도서 목록을 미리 선정해둔다. 1학년 때는 '데미안' 같은 유명한 고전에서 시작해 3학년 때는 에인 랜드나 찰스 부코스키같이 '선수들끼리 알아보는' 책으로 흐름을 잡는 식이다. 봉사활동을 선택했다면 핵심은 리더십이다. 언론 보도나 다큐멘터리를 보고 문제의식이 생긴 뒤 친구들을 모아 그 문제를 해결하는 동아리를 만드는 과정을 상세히 기록으로 남긴다. 이공계가 목표인 학생들의 요즘 대세는 창업이다. 미세 먼지나 재활용 플라스틱 수거 문제같이 공익성이 강한 '핫'한 아이템과 관련된 창업일수록 입시에 유리하다.

김씨는 "그나마 학생이 의지가 있으면 스펙 쌓기가 진행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부모가 무리수를 두게 된다"며 A군의 사례를 들려줬다. 2년 전 명문대 진학을 준비했던 A군은 학생종합부 서류가 100페이지를 넘을 정도로 화려했다. 고아원 봉사부터 교내 독서동아리를 본인이 주도해 만든 뒤 회원을 50명까지 불린 과정, 읽은 도서 목록과 토론 기록까지 소상히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서류는 현직 중학교 교사인 어머니가 쓴 것이었다.


네트워크가 핵심이다

입시 컨설턴트들은 "스펙 쌓기에서 제일 중요한 건 '네트워킹'"이라며 "아무래도 교수나 변호사·의사 등 인맥이 좋은 전문직 부모들이 스펙 쌓기 좋은 프로그램을 잘 '세팅'하는 경향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법대 교수나 변호사 부모는 아는 로펌에 부탁해 인턴십 프로그램을 만들고, 의사 부모는 아는 병원에 부탁해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만든다. 이공계 전문 컨설턴트들은 벤처기업가 부모를 선호한다고 한다. 업계에서 버려진 사업 아이템을 발굴해 아이들에게 창업시킬 수 있는 과정을 진행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

컨설턴트가 가진 인맥으로 스펙을 쌓는 경우도 많다. 작년까지 입시 컨설턴트로 활동한 B씨는 "대치동에서 톱클래스로 꼽히는 한 입시학원 원장은 아버지 사업 때문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그 나라 국적을 가진 한국 사람"이라며 "이 원장이 워낙 현지 인맥이 좋아 남아공 인권 보호활동처럼 기상천외한 스펙을 '세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일부 명문고로 꼽히는 학교들은 학교 차원에서 이런 '스펙 쌓기'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영하기도 한다. 경기도 소재의 한 특목고는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 통·번역 봉사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적도 있었다. 외국인이 많이 오는 지역 축제에 해당 학교 학생들이 통·번역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도록 지원하는 것이었다.


상위 10%가 핵심이다

4년 전까지 서울뿐 아니라 지방 학생들도 상대하는 입시 컨설턴트로 활동했다는 오수연씨는 "부모나 학교 또는 컨설턴트를 잘 만나면 좋은 '스토리'를 만들 수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그런 스토리를 만들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다"며 "이런 스펙 쌓기는 그야말로 상위 10%끼리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소위 '인서울'이라 불리는 서울 소재 대학의 정원이 전체의 7%가량이고 여기에 지방 의대와 국립대 등을 합하면 10%가량이다. 여기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은 자신의 재능과 부모의 자산을 쏟아붓는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지만, 나머지 90% 중에는 수능 모의고사조차 제대로 안 보는 경우도 많다. 경기도 소재 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교사 신모(38)씨는 "학교에 수능 모의고사 응시율이 50%가 안 된다"며 "자기 내신 등급은 물론 수능을 본 뒤에도 수능 등급을 모르는 학생이 더러 있다"고 말했다.

일선 학교들 역시 암묵적으로 학생들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다. 스펙 경쟁으로 논문 공저자 등재나 경시대회 수상 실적 부풀리기 등이 심해지자 교육부와 대학교들은 몇 년 전부터 학종에 외부 활동을 아예 못 쓰게 한다. 교내 활동만 스펙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면서 나타난 현상이 학교가 나서 온갖 교내 경시대회를 만든 뒤 소수에게 상을 몰아주는 것이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100개 이상의 교내 대회를 개최하고 상장 3900여개를 남발하거나 1~2명의 학생에게 20~30개 상을 몰아주는 사례가 다수 있었다. 신씨는 "지방 학교들은 소위 '될 놈만 밀어준다'는 게 그나마 명문대 입학 실적을 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박대권 교수는 "과거 명문대 입시 경쟁은 할아버지의 재력, 어머니의 정보력, 아버지의 무관심이라는 삼위일체로 굴러갔다면 요즘은 그중 아버지의 무관심이 인맥으로 바뀌었다"며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제도의 틈을 찾고 악용하는 이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인데, 현 정부가 대입 공론화 논의 과정을 통해 그런 틈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학종 원조 美서도 올초 '가짜 스펙' 비리… 불평등 심해
기회 균등 위해 인종별 쿼터 정책


미국의 수능 시험인 SAT 문제를 한국 강사들이 유출했다가 경찰에 적발된 모습. / 조선일보DB

미국의 수능 시험인 SAT 문제를 한국 강사들이 유출했다가 경찰에 적발된 모습. / 조선일보DB

"원래 학생종합부(학종) 전형이 미국 제도를 가져온 거잖아요. 본토라고 별다를 거 없어요."


서울 강남에서 유학 전문 입시컨설턴트로 활동했던 최모(37)씨는 "지금 대치동에서 하는 스펙 관리 노하우도 전부 미국의 입시 컨설턴트들이 하던 걸 들여온 것"이라며 "미국 대학 입시도 한국 대학 입시만큼이나 치열하다"고 말했다. 미국 대입 전형은 대학별로 자율권이 한국보다 훨씬 큰 편이지만 아이비리그라 불리는 명문대들은 대개 미국식 수능인 SAT 점수와 '에세이'라고 불리는 자기소개서에 적힌 스펙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물론 이런 입시를 거치지 않고 기부금을 내고 입학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려면 수십억원이 든다. 최씨는 "미국도 기회균등 정책의 일환으로 명문대 정원에 인종별 쿼터가 있는데 예전엔 아시아 쿼터를 통해 한국인들 입학이 수월한 편이었다"며 "이제는 중국인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비리그 입시 경쟁은 한국 입시 못지않게 치열하다"고 말했다.

독서토론 동아리나 봉사활동 등 스펙 쌓기 방법은 대체로 한·미가 비슷하지만 큰 차이점은 미국은 스포츠 활동에 매우 높은 가산점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유학생 부모 중엔 전직 프로선수를 기용해 체육 과외를 시키고 전국체전이나, 국제학교들 간의 친선 대회에 출전시키는 경우도 있다.

경쟁이 치열한 만큼 미국서도 입시 비리가 심심찮게 터진다. 지난 3월 미국 매사추세츠주 검찰과 FBI는 예일, 스탠퍼드 등 명문대에 거액을 받고 유명 인사 자녀들을 체육특기생으로 부정 입학시킨 입시 컨설턴트 등을 적발했다. 학부모들은 입시 컨설턴트에게 수억원을 쥐여주고 학교 체육팀에서 활동한 가짜 스펙을 만들어 대학에 보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의 일부 학부모도 이런 부정에 손을 댄다. 최씨는 "유학생 학부모의 막장은 '문제 유출 학원'에 손대는 것"이라며 "스펙은 가짜로 만들 수 있지만 SAT 성적은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아예 SAT 문제를 빼돌리는 강사를 찾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0년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일부 강사가 해외에서 SAT에 응시한 뒤 문제를 외워 오는 수법 등으로 문제를 유출하다가 경찰에 적발된 사례가 있었다.

[권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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