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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없는 경비실 10곳 중 3곳 “미움 살까 말도 못 꺼내”

중앙일보 윤상언.박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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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전수조사 결과 73%만 설치
태양광 발전기, 설치비 지원에도
“관리비 오른다” 반대에 지지부진
“고령자 경비원 많아 에어컨 필요”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 경비실 내부 모습. 이 아파트 경비실 중 일부는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아 경비원들은 중고 선풍기나 젖은 수건 등으로 무더위를 달랬다. 윤상언 기자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 경비실 내부 모습. 이 아파트 경비실 중 일부는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아 경비원들은 중고 선풍기나 젖은 수건 등으로 무더위를 달랬다. 윤상언 기자


섭씨 34도가 넘는 폭염이 내리쬔 13일 오전 11시 서울 송파구의 A아파트 단지. 10년째 경비원으로 일하는 한대진(77·가명)씨는 휴지를 적셔 땀을 닦고 있었다. 한 평이 안 되는 좁은 공간에서 한씨가 몸을 식히는 수단은 낡은 선풍기뿐이었다. 한씨는 “화장실에 들어가 찬물로 샤워하는 것 빼고는 무더위를 버틸 방법이 없다”고 했다. 한씨에게 에어컨 설치는 꿈 같은 이야기다. 관리비가 오른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주민이 많아서다. 한씨는 “혹시나 주민들의 미움을 살까봐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조용히 대답했다.

같은 송파구의 B아파트 경비초소에서 근무하는 송광훈(68·가명)씨도 마찬가지였다.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주워온 고물 선풍기 4대로 무더위를 버티는 게 전부다. 송씨는 “해가 진 후에도 실내가 후끈후끈하다”고 말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은 “이번 달 동대표 회의에서 경비초소 에어컨 문제가 상정돼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송씨는 “폭염이 한풀 꺾여야 설치해준다는 뜻”이라며 실망스러워했다.

강남구에 있는 C아파트 역시 대표자회의에서 수년째 에어컨 설치를 논의 중이지만 올해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강모(70) 경비원은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어 불필요한 투자를 억제하는 것으로 안다”며 “경비원을 시켜 입주민에게 반상회비 받을 때는 ‘빨리 마감하라’며 닥달하더니 최소한의 복지엔 관심이 없다”며 서운해했다.

에어컨 없는 아파트 경비실이 ‘폭염 이슈’로 등장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으로 서울 시내 2187개 아파트 단지의 경비실 8763곳 중 에어컨이 설치된 곳은 6300여 곳(73%)에 그쳤다. 연일 계속되는 가마솥더위 속에서도 서울 아파트 경비실 10곳 중 3곳 가까이는 ‘무대책’이라는 뜻이다. 지난 4월 전수조사 때는 설치율이 63.5%(5569곳)였다. 최근 4개월 새 800여 대 증가에 불과했다. 전종원 서울시 공동주택관리지원센터 실태조사1팀장은 “서울시가 냉·난방기 설치를 유도하는 광고물을 제작, 배포한 후 설치율이 10%가량 늘어난 것”이라며 “여전히 요지부동인 아파트도 있어 설치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송파구 아파트 경비실의 에어컨 설치율은 34%에 불과했다. 관악구(39%)나 양천구(46%), 노원구(47%) 등도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에어컨 설치가 지지부진한 이유로는 ‘주민과 동대표 반대’(54%)가 가장 컸다. 그 다음으로 ‘예산 부족 및 장소 협소’(31%), ‘에너지 절약·재건축 준비 등’(16%) 순이었다.

경비실 에어컨 설치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관심은 엇갈린다. 서울시와 일부 구에서는 인센티브를 내놓았다. 서울시는 전기요금을 줄일 수 있도록 소형 태양광 발전기를 무료로 설치해준다. 성동·성북·은평·양천·강서·금천·서초구 등에선 에어컨 설치비용을 지원한다.


다른 지자체에서는 지원이 전혀 없다. 조례가 없다거나 지원 사업으로 부적합하다는 판단에서다. 광진·동대문·중랑·영등포·관악·강동구 등에선 “신청하는 아파트 단지가 없다”고 답했다. 송파구는 형평성 문제를 들었다. 권오남 송파구청 주택과장은 “송파엔 낡은 대단지 아파트가 많아 지원하려면 예산이 많이 든다. 내년에 조례를 개정해 지원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경비원은 고령자가 많아 에어컨 설치가 더욱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동일 성균관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여름철 밀폐된 공간에서 근무하면 체온이 급격히 상승할 염려가 있다. 특히 야간에는 어지럼증, 저혈압 등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윤상언·박해리 기자 youn.san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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