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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시리즈2〉 ‘객관적 비례와 제작적 비례가 일치했던 이집트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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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0월 26일 헤럴드경제 주최 인문학 시험을 앞두고 진중권 교수의 미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본지에서는 앞으로 진중권의 미학시리즈를 연재한다. 문사철 중심으로 출제되는 이번 시험에서 철학과 역사 소양이 있는 응시생은 중급의 인증서가 , 문예소양이 있는 응시생은 고급 인증서가 각각 제공된다. 특히 고급 인증서는 진중권의 미학이 중심이 될 것이라고 대회관계자는 밝혔다.

다음은 헤럴드경제 인문학시험 지정교재 ‘세계시민을 위한 인문학’에 나오는 이집트 예술에 대한 설명이다.

객관적 비례는 대상을 그릴 때 내가 본 대상의 모습을 똑같이 묘사하는 경우이며 제작적 비례는 대상을 보고 그것의 신체비례와 관계없이 변형, 왜곡시켜서 완전히 다르게 경우이다. 객관적 비례와 제작적 비례는 서로 배척하는 관계지이만 이 양자가 딱 맞아 떨어진 시대가 있었다. 바로 고대 이집트이다. 이집트 조각은 고도로 양식화되어있다. 그래서 실물과 같은 느낌을 안 준다. 디자인, 구성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이것은 제작적 비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측정해보면 실제 인체 비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집트의 캐논(작품을 제작할 때 이상적인 신체 비례)은 몇천년 전에 확립이 되어 큰 변화없이 그대로 내려갔다. 아마도 이집트인들은 몇천년 전에 캐논을 만들 때 실물에 대한 측정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이집트인들이 보기 좋아 보이는 남자들, 아름다운 여자들을 보고 계속 측정을 했을 것이다. 이 측정을 통해 평균치를 얻고 이 평균치로 수치를 정했을 것이다. 이 수치를 조각상을 제작할 때 적용을 했고 이것이 전통으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양식화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집트 사회는 상당히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한 번 정해놓은 캐논은 몇 천 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물론 이집트도 사회변동에 따라 양식의 변화가 있었다. 사회가 리버럴(liberal) 해졌을 때 자연주의 양식이 등장하였지만 다시 보수화되면 옛날 양식으로 돌아갔다. 이런 흐름은 있었지만 큰 변화 없이 지속적으로 내려온 것이 이집트인의 양식이다. 이집트인들은 지구상에서 거의 유일하게 객관적 비례와 제작적 비례가 행복하게 결합된 문명을 가졌던 것이다.

[이집트 미술의 예 1]

[이집트 미술의 예 1]


[이집트 미술의 예 2]

[이집트 미술의 예 2]


이집트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상을 만들 때 모듈(module)을 만들고 정해진 캐논을 이용하였다. 따라서 이들에게 개성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었다. 이집트의 예술가는 창의성, 개성을 발휘하는 예술가가 아니라 오히려 기술자에 가까웠다. 정해진 수치를 따라 작업하는 식이기에 한 작품을 만들 때 각 부분을 다른 사람이 만들어 조합하면 딱 맞아 떨어지는 하나의 작품이 될 정도였다.


비례론을 인간 신체에 옮길 때 세 가지의 문제점이 생긴다.

- 비례론의 세 가지 문제점-

1. 동작이나 자세에 따른 비례의 변화


2. 관찰자의 시각에 따른 변화

3. 완성된 작품을 보는 시점(視點, point of view)에 따른 변화

그러나 이집트인들은 무시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점들을 해결했다. 이집트 조각은 동작 자체가 크지 않고 한정되어있다. 늘 서 있거나 앉아 있다. 늘 똑같은 동작과 자세로 변화가 없다. 따라서 동작과 자세에 따른 변화를 묘사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리고 이집트 부조를 보면 정면성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 늘 얼굴은 옆을 보고 가슴은 앞을 보고 다리는 옆을 본다. 관찰된 시각에 따른 변화, 즉 단축법(短縮法, 대상을 정면이 아니라 위나 아래에서 혹은 비스듬하게 바라봄으로써, 인물이나 물체의 길이가 실제보다 짧아 보이도록 그리는 회화 기법) 을 무시해버린 것이다.


완성된 작품을 보는 시점에 따른 변화는 그냥 보는 것, 무시하는 것으로 해결한다. 미감을 고려하지 않는다. 예술작품의 효과 자체가 미적 효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숭고함에 있기 때문이었다. 숭고함의 종교적 효과와 정치적 효과에 있었기 때문에 숭고함의 압도적 효과만 있지 비례와 미감을 고려하는 문화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무시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Kunstwollen(예술 의지)이다.

이집트 사회는 영원불멸성을 지향하는 사회였다. 피라미드와 미라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집트는 영원불멸성을 지향하는 사회였고 기하학이 발달한 사회였다. 이집트에서 왜 기하학이 발달하였는가. 그들의 추상 충동에 있다. 이집트 사람들은 나일강이 범람하여 토지의 모양이 달라지는 일을 겪는다. 지형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불변하는 것이 있다. 바로 면적이다. 삼각형과 사각형이라 해도 면적은 같을 수 있다. 눈으로, 감각적으로는 모양이 달라도 초감각적으로 보게 되면 같다는 추상 충동이 발달하는 것이 이집트 사람들이 의지이다, 이들은 변화를 싫어한다. 변하는 것 속에서 불변하는 것을 뽑아내는 것이 그들의 의지이다. 또한 다양한 것이 아니라 공통된 것을 뽑아내는 것이 이들의 의지이다. 개별적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 이것이 바로 이들의 예술 의지인 것이다.

이집트는 왕이 다스리는 전제군주제였고 이 군주는 피라미드 건축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영원불변성을 강조하였다. 이 전제적인 군주가 강조하는 영원불변성이라는 종교적 관념이 정치체제를 규정하면서, 영원불변성이 그 당시 사람들의 삶의 원리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형성된 영원불변적인 사람들은 가변적인 것들, 다양한 것들, 우연한 것들을 피할 수밖에 없다. 동작, 자세에 따른 변화는 우연성을 띠고 있다. 이집트인들은 이런 우연성이 아니라 필연적인 자세를 지향한다. 가변적인 현세가 아니라 불변적인 내세를 지향한다. 따라서 이들은 동작이나 자세에 따른 비례의 변화, 관찰자의 시각에 따른 변화 ,완성된 작품을 보는 시점에 따른 변화를 무시한 것이다.

그리스 조각가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남겼다. 하지만 이집트는 이름을 남기지 못한 장인 내지 기술자만 존재하였다. 그 이유 역시 이집트는 전제군주제 사회였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민주주의 사회였기에 조각가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남길 수 있었고 이집트는 개인의 개성이 인정되지 않은 전제군주제 사회였기에 개성을 발휘할 여지가 없었고 이름을 남길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누가 만들어도 같은 작품이 나왔던 것이다.

rea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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