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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남' 백제 무령왕 무덤에서 발견한 한중일 교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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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중심 백제]① 동아시아 문화 허브였던 백제

중국 양나라, 일본 등 국제 문화 교류의 집약체인 무령왕릉



[편집자주]'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이 구절처럼 백제엔 특유의 문화가 존재했다. 특히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선진문물을 개선해 일본 등지로 재전파하는 문화 허브이자 강국이었다. 이런 백제 문화의 특징을 세계유산인 '백제역사유적지구'(공주, 부여, 익산)를 통해 알아본다.

국립공주박물관에 재현된 무령왕릉 내부 모습.© 뉴스1 이기림 기자

국립공주박물관에 재현된 무령왕릉 내부 모습.© 뉴스1 이기림 기자


(공주=뉴스1) 이기림 기자 = "키가 8척이고 눈매가 그림 같이 아름다웠으며, 인자하고 너그러워 민심이 따랐다."(삼국사기 중)

백제 제25대 왕인 무령왕(462~523·과거 무녕왕으로 표기됐음)에 대한 설명이다. 외모 면에서 '훈남'이었던 그는 왕권 안정과 국력 부흥에 전력을 기울이기도 한 모든 면에서 훈훈한 모습을 보이던 왕이었다.

그러나 무령왕은 이런 모습 때문에 유명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세상을 떠나고 1500년가량 지난 뒤 발견된 그의 무덤으로 주목받았다.

무덤의 위치는 충남 공주시 금성동 송산리 고분군으로 이곳은 웅진시대 백제왕실의 능묘군이다.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이뤄진 조사로 6기의 고분이 정비된 상황에서 1971년, 배수시설 공사를 하던 중 우연히 무령왕릉이 발견됐다.

공주시 송산리고분 항공촬영모습.© News1

공주시 송산리고분 항공촬영모습.© News1


학계에 따르면 이 발견은 엄청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우선 무령왕릉은 백제 무덤 중 주인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왕릉이다. 심지어 도굴을 피해 모든 유물이 온전하게 남아있었다. 총 46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된 데다 그 중 12점이 국보로 지정될 만큼 소중한 유적이었다.


또한 무령왕릉의 구조와 유물들에서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한 백제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원래 백제(한성시기) 왕릉은 돌무덤으로 만들어졌다. 돌무지무덤에서 굴식돌방무덤으로 변해가는 상황.

그러나 무령왕릉은 벽돌을 쌓아 만든 벽돌무덤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중국 남조 양나라에서 유행하던 무덤형식이었다. 즉 무령왕릉이 중국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령왕릉 출토유물들.© News1

무령왕릉 출토유물들.© News1


또한 부부합장묘였던 무령왕릉에서 무령왕과 왕비의 시신을 담은 관은 일본산 금송으로 제작돼있었다. 동아시아 3국 모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진묘수, 도자기 등 중국 남조와 교류한 유물들과 동남아시아, 인도 등과도 교류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유물들도 발굴되면서 백제의 뛰어난 국제성도 증명됐다.

결국 무령왕릉의 발견은 백제사에 대한 재평가는 물론이고 새로운 고대사 연구도 가능하게 했다.

현재 무령왕릉은 보존상의 문제로 내부관람이 불가능해 기존 고분과 같은 크기로 만든 모형을 체험할 수 있다.


출토된 유물을 보고 싶다면 인근에 있는 국립공주박물관을 찾고, 무령왕 등 웅진시대 재위한 왕들의 거처였던 공산성도 주변에 있어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공산성 입구 전경.© 뉴스1 이기림 기자

공산성 입구 전경.© 뉴스1 이기림 기자


lg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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