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법칙-144] ◆시뮬레이션: 적정 디테일은 어디일까?
현실에 존재하는 세계는 두터운 물리 법칙에 의해 돌아간다. 아직까지,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그 모든 구성의 원리를 다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꽤나 놀라운 진보를 이룩한 면도 없지 않다.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자전하는 것이었다는, 사과가 그저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중력에 의해 당겨진다는 것이었다는 걸 알지 못한 과거라 해도 지구는 여전히 돌았고 사과는 여전히 땅에 떨어지긴 했었다.
세계가 돌아가는 원리에 대한 또 다른 방향의 탐구는 상상을 통한 세계의 재구성을 향한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현실에 작동하는 원리와 규칙을 토대로 사람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곤 했다. 상상이 가정하는 범주는 시대에 따라, 경우에 따라 달랐다. 지금 현재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역사 속의 이야기를 가공하고 변형하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아예 현실의 지구와 다른 세계를 상상해 내기도 했다. 양자역학 단위의 세계 구성을 모른다 해도 그 돌아가는 표면의 양식을 두고 우리는 많은 상상의 산물들을 만들어내고 이를 또한 즐기곤 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세계는 두터운 물리 법칙에 의해 돌아간다. 아직까지,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그 모든 구성의 원리를 다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꽤나 놀라운 진보를 이룩한 면도 없지 않다.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자전하는 것이었다는, 사과가 그저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중력에 의해 당겨진다는 것이었다는 걸 알지 못한 과거라 해도 지구는 여전히 돌았고 사과는 여전히 땅에 떨어지긴 했었다.
세계가 돌아가는 원리에 대한 또 다른 방향의 탐구는 상상을 통한 세계의 재구성을 향한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현실에 작동하는 원리와 규칙을 토대로 사람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곤 했다. 상상이 가정하는 범주는 시대에 따라, 경우에 따라 달랐다. 지금 현재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역사 속의 이야기를 가공하고 변형하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아예 현실의 지구와 다른 세계를 상상해 내기도 했다. 양자역학 단위의 세계 구성을 모른다 해도 그 돌아가는 표면의 양식을 두고 우리는 많은 상상의 산물들을 만들어내고 이를 또한 즐기곤 한다.
시뮬레이션 게임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 내고 이를 작동시킴으로써 만들어내는 즐거움에는 "그렇다면 어디까지를 시뮬레이션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뒤따른다. 아예 존재하는 세계를 고스란히 옮겨놓을 수는 없으니, 어디까지를 구현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는 일정 부분 기술의 현실적인 고민과도 겹치는데, 이를테면 '심시티' 시리즈가 겪었던 문제가 그러하다. '심시티 4'까지의 시리즈에서 제작사는 교통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는 데 각 지역의 건물 밀도와 인구를 가지고 임의의 계산을 통해 해당 도로의 교통량을 그려냈다. 2013년의 5편에서 이 시도는 이른바 '보텀업' 방식으로 변화하는데, 실제 도시처럼 지어진 각 건물에 거주하는 '심'들의 도로 이용을 그대로 게임 속에 구현한다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했다. 모든 도로가 일정 수준 이상의 도시에서 마비되었고, 쓰레기차와 소방차, 화물차 등이 모두 멈추며 도시 시뮬레이션은 거기서 끝나고 말았다.
기술적인 부분을 떠나서도 여전히 시뮬레이션의 심급에 관한 고민들은 존재한다. 과도한 디테일은 경우에 따라 플레이어에게 즐거움보다는 귀찮음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의 서두처럼 전쟁 한 번에 들어가는 인력과 물자의 양이 상상을 초월하는데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이를 일일이 다 생산하고 수송해서 장비시킨다면 게임이 아니라 '노가다'가 되고 만다. 그렇다고 요즘 유행하는 자동전투처럼 플레이어의 개입을 한없이 뒤로 뺀다면 또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된다. 게다가 이 심급의 차이는 개별 플레이어마다 호오가 다르다는 문제도 있다. 누군가는 디테일을 일일이 만질 수 있기를 원하고, 누군가는 큰 맥락만을 컨트롤하기를 원한다. 사실상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시뮬레이션의 심급일 것이다.
◆심리 시뮬레이션이라고 부를 만한 게임 '림월드'
서바이벌 시뮬레이션 게임 '림월드'는 SF적 배경 안에서 벌어지는 생존을 탑뷰 시점에서 다룬다. 인적 드물고 시설 황량한 변두리 외계 행성 어딘가에 불시착한 주인공 일행은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고 외부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해 나가면서 궁극적으로는 다시 우주선을 만들어 변경지대를 탈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채도 낮은 그래픽으로 단출하게 그려진 게임의 배경은 자칫 허술해 보이는 착시를 낳지만, '림월드'의 구성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행성에 묻혀 있는 암석과 금속들, 나무와 희귀재료들이 각각의 역할을 담당하고, 음식 같은 유기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손쉽게 부패한다. 생존을 위해 만들어야 할 식량과 주거, 의복 같은 물품들은 마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보존과 수량의 한계가 끊임없는 활동을 강요한다.
하지만 '림월드'가 제시하는 생존을 위한 생산과 수집 방식만으로는 이 게임이 복잡하다는 말을 수식하기 어렵다. 어찌 보면 이런 재료들의 문제는 다소 단순해 보이는데, '림월드'가 본격적으로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은 생명체와 그 활동에 관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생존해야만 하는 주인공 격의 캐릭터들을 다룸에 있어 게임이 많은 데이터를 공들이는 것은 개별 캐릭터의 심리 상태다. 사이코패스부터 감수성 충만한 캐릭터까지 각각의 인물들은 기본적인 성격과 조건을 가지고 게임에 들어앉는다. 의식주의 해결 이상으로 게임은 생존하려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가 얼마나 중요한 조건인지를 드러내려 한다. 모여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연인 관계가 발생하면서 두 사람의 협력과 의지가 깊어지기도 하지만, 혹여 그 관계가 삼각관계라면 제3의 인물이 깊은 슬픔에 빠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런저런 심리적 욕구가 불충분해진 상황에서는 사소한 일들도 큰 갈등으로 번져나가고, 아차 하는 순간 칼부림이 일어나거나 방화가 터지는 순간도 쉽게 볼 수 있다. 불시착할 때 입은 상처 때문에 끝없이 통증에 시달리는 캐릭터, 타인의 우울에 쉽게 공감하며 함께 늪에 빠져버리는 캐릭터 등을 관리해 가면서 생존해야 하는 플레이어 입장은 언뜻 보기엔 심리상담사의 역할까지도 맡는 듯한 플레이가 이루어진다. '림월드'가 시뮬레이션하는 캐릭터의 행동과 심리는 이 게임을 시뮬레이션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두텁게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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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월드`는 할 일이 많은 게임이지만,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직접 컨트롤하는 방식은 아니다. |
◆직접 통제가 불가능한 플레이로 만드는 거리감
개별 캐릭터마다 가지고 있는 뚜렷한 성격이 게임 안의 활동에 강하게 반영되는 흐름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은 캐릭터를 조종하는 플레이 방식에 대한 통제다. '림월드'는 특정 자원을 획득하거나 제작하는 등의 과정을 각 캐릭터를 직접 조종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황을 만들어 두면 조건에 가까운 캐릭터가 알아서 움직이는 방식으로 풀어낸다. 이를테면 식재료를 쌓아두고 요리를 해야 한다면, 조리기구와 식재료를 준비해 두면 요리 기술이 가장 높은 캐릭터가 알아서 찾아와 작업을 하는 방식이다. 각각의 조건 우선순위를 일부 통제할 수는 있지만, 전투 상황이 아니라면 아주 직접적인 캐릭터 컨트롤은 불가능하다.
이런 방식 덕분에 '림월드'는 상당히 통제하기 어려운 방대한 데이터를 애초부터 플레이어로부터 일정한 거리감을 둔 대상으로 위치시키며 시뮬레이션에서의 심급 이슈라는 질문에 컨트롤의 거리감이라는 답변을 내놓는다. 생존의 절박함을 플레이어 안쪽에 놓는다기보다는 대상으로서 바깥쪽에 위치시킴으로써 게임은 롤플레잉이나 일반적인 서바이벌과는 다른 의미로서의 '시뮬레이션 서바이벌'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방대한 데이터가 제각각의 조건에 의해 알아서 뛰는 동안 플레이어는 마냥 손놓고 구경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그 당사자로서의 활동을 수행하는 것도 아닌 위치에 놓인다.
'림월드'는 게임 초반 시작점에서 '스토리텔러'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난이도를 설정하는데, 이는 보드게임의 마스터와 같은 개념으로부터 가져온 장면이다. 스토리텔러는 물론 게임의 디자인 안에 들어 있는 규칙 안에서 제한시간, 아이템의 풍부함, 적의 도전 강도 등을 통해 다른 게임에도 존재하지만 굳이 이를 의인화해 '스토리텔러'로 드러내는 것은 플레이어가 게임 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보드게임처럼 게임의 외곽에서 제3자의 전지적 시점으로 바라보는 존재라는 것을 한번 더 언급하는 흐름이다. 마치 알아서 잘 작동하는 태엽 장난감을 보다가도 장난감이 걸어가는 길의 방향 정도를 수정해주면서 즐거울 수 있는 놀이처럼 '림월드'는 플레이어의 위치를 새롭게 잡으면서 콘텐츠와의 거리감이라는 개념을 통해 플레이를 연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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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의 마스터를 연상시키는 `스토리텔러`의 설정을 통해 게임은 이 서바이벌 플레이어에게 타자성을 부여한다. |
'보는 게임'이라는 용어가 비단 e스포츠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디지털게임에도 들어오기 시작하는 시대에 플레이의 개입을 어디까지 둬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꽤나 여러 차원의 의문을 함께 담는 질문이 되었다. 나는 '림월드' 같은 방식이 그중 하나의 대답일 거라고 생각한다. 알아서 움직이는 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 컨트롤의 대상이 있지만 이를 직접 통제하지는 못하는 적당한 거리감이 존재한다. 시뮬레이션의 심급을 물으며 시작한 이야기는 이렇게 플레이의 개입도로 마무리된다. 디지털 세계에서의 플레이에 대한 호오는 여전히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림월드' 또한 어떤 면에서는 그 하드코어한 측면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그 갑갑함 때문에 호오가 명백하게 갈리지만, 나는 애초에 이 게임이 드러낸 시뮬레이션과 개입도의 어우러짐이라는 주제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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