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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 지정 취소 ‘그 후’가 없다…“일반고 발전 대책 병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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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논쟁·혼란에도 대책 손 놓은 정부
보수정권도 자사고 문제 인식…‘이념 논란’에는 근거 없어
교육계 아수라장 됐는데 ‘평가 공정성’만 말하는 건 무책임
학생·학부모의 교육열을 일반고가 담아낼 방안 마련해야


경향신문

자사고 폐지 반대하는 학부모들 서울 자율형사립고학부모연합회 학부모들이 지난 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자사고 폐지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자사고를 없애면 강남 8학군이 부활하고 서민들은 교육을 위해 수억원의 빚을 내서 강남으로 이사가야 할 것입니다.”

서울시자율형사립고등학교학부모연합회(자학연)가 지난 3일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연 뒤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의 요지다. 한 일반 사립고등학교 교장은 “자사고란 결국 자녀를 좀 더 좋은 대학에 보내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산물”이라고 말했다. 편지에서 이를 확인하기는 어렵지 않다.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자사고를 만드는 일은 ‘너무도’ 쉬웠다. 당시에도 고교서열화, 공교육 붕괴, 고교입시경쟁 등 현재 제기되는 자사고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10년이 흐른 지금 42개 자사고 중 단 한 곳을 없애는 일조차 너무 어렵다. 법에는 엄연히 평가를 통해 지정 취소를 하도록 돼있지만 정부가 자격이 안되는 자사고를 취소한 사례도 없다.

9일 서울특별시교육청의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재지정 평가) 결과가 발표되면 극한의 대립전이 절정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더 큰 문제는 자사고가 존치하는 한 이 같은 논쟁과 혼란이 5년마다 반복된다는 점이다. 내년에도 2015년 평가를 받았던 자사고들이 다시 시험대에 오른다. 전문가들은 “자사고 지정 취소와 함께 정부가 일반고에 대한 발전 방안을 내놓는 것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그다음에 대한 비전을 마련해 놓지 못한 교육부의 무사안일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 자사고는 본래 ‘한시적’ 학교

서울시자율형사립고 교장연합회, 자사고총동문연합회, 자사연 등 자사고 지정 취소에 반대하는 측의 주장을 살펴보면 어김없이 ‘이념’ 문제가 등장한다. 대통령이, 교육감이 이념에 따라 멀쩡한 자사고를 없애려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현행 자사고의 지정 및 운영, 평가 및 재지정 등에 관한 각종 법적 규제는 대부분 문재인 정부 이전에 수립된 것이다. 자사고가 법적 근거를 갖게 된 건 2009년 3월27일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다. 당시 시행령에는 ‘자사고는 5년 이내로 지정·운영하되, 시·도 교육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5년의 범위에서 연장할 수 있다’고 명시됐다. 처음부터 자사고는 지정 기간이 정해진 한시적 학교였다.

김은정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선임연구원은 “현재 제기되는 자사고 취소 문제에서 가장 이해가 안되는 점은 마치 자사고가 ‘영구적인’ 학교인데 없애려는 것처럼 호도되는 부분”이라며 “자사고나 특목고나 모두 한시적 형태의 학교이고, 법으로 정한 기준에 미달한다면 지정을 취소하는 게 원칙”이라고 밝혔다.

■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자사고 문제” 인식

재지정 기준을 ‘운영성과 평가(재지정 평가)’로 분명히 한 것도 이명박 정부다. 2011년 6월7일 개정된 시행령에 ‘해당 학교의 운영성과 등을 평가하여 지정 목적의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는 조항이 추가된다.

이렇게 시행령이 개정된 ‘시점’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2년여 만에 자사고에 대한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다. 2011년 1월 이주호 당시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 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자율형 사립고 운영 내실화를 위한 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며 “향후 자사고 지정은 당초 지정 목표에 연연하지 않고, 운영 내실화에 초점을 두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2012년까지 자사고 100개를 만들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과제 포기 선언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후 추가된 자사고는 포스코가 만든 인천포스코고 등 2개 정도에 그쳤다.

이명박 정부가 자사고 추가 확충을 중단한 이유는 분명했다. 자사고를 설립한 지 2년이 채 안돼 곳곳에서 신입생 정원을 60%도 못 채우는 등 정상 운영이 어려운 학교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학교가 원할 경우 재지정 평가 기간이 아니어도 중도에 일반고 전환이 가능하도록 한 규정도 시행령에 추가됐다. 부실 자사고 문제가 불거진 직후였다.

자사고의 교과편성 자율권을 제한한 것도 박근혜 정부 때 일이었다. 교육부는 2014년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자사고 교육과정은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을 따르기로 한다”고 규정했다.

당시 교육부는 “일반고가 학생선발권·자율성 등에서 자사고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별받음으로써 마치 수준이 낮은 학교처럼 인식되는 문제점이 있다”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자사고 등장 후 일반고가 황폐화됐다는 문제인식은 적어도 보수·진보 간 차이에서 나온 발상은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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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임지지 않고 어정쩡한 교육부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1월 ‘고교체제 개편 3단계 로드맵’을 통해 2020년까지 현 영재고,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특성화고 등으로 서열화된 고교체제를 개편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로드맵에 따르면 올해는 ‘엄정한 평가’를 통해 기준에 미달하는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해다. 재지정 평가 후폭풍으로 교육계가 ‘아수라장’이 됐는데도 교육부가 일관되게 “평가의 공정성을 기하겠다”는 답변만 내놓는 이유다.

그러나 교육현장에선 정부의 ‘책임 방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시·도교육감들은 “정부가 시행령을 고쳐 자사고를 일괄 폐지하거나, 그럴 게 아니면 지정 취소 최종 권한을 교육감에게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일반고 전환을 대통령 공약으로 걸어뒀으면서 유은혜 부총리 말을 들어보면 ‘잘하는 자사고는 그냥 둔다’는 뉘앙스를 준다”며 “이런 상황에서 애매하게 교육청에 책임을 미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정부가 내년 총선을 고려해 안산동산고는 탈락시키고 상산고는 2년 뒤 조건부 재지정하는 방식의 정치적 판단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가 교육 문제라는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계획만 제시했을 뿐 ‘대안’을 내놓지 못한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자사고를 없앤다고 해서 현행 입시 위주의 고교교육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열을 일반고가 담아낼 수 있도록 더욱 발전적인 방안들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은정 연구원은 “자사고가 시행해온 자율적인 교과과정 중에는 일반고에도 적용해 활용할 만한 의미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며 “교육부가 큰 틀에서 일반고 발전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교육당국의 한 관계자는 “일반고 전체가 좋아질 수 있는 프로그램을 내놓고 자사고를 없앤다고 했다면 저항이 덜했을 것”이라며 “정부는 현재 자사고 이후에 대한 고민이 없다. 더 좋은 교육을 하기 위해 마련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진식·반기웅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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