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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장 앞에서 알렉상드르 방과 그의 아이들. |
[세계의 와인기행-84] ('상' 편에서 이어짐) 내추럴 와인 장인들을 만나고 다니다 보면 와인을 시음하는 분위기도 일반적인 와이너리와는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된다. 번듯한 테이스팅룸에 착석해서 테이스팅 노트와 펜을 갖추고 마시는 일은 드물다. 양조장 한편에 서서 그날 상황에 따라 몇 가지 와인을 따라 시음하기도 하고, 작은 테라스에 기대 서서 풍경을 바라보며 마시기도 하고, 사무실 한쪽 오크통 테이블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맛보기도 한다.
도멘 알렉상드르 방(Domaine Alexandre Bain)에서는 양조장 마당 풀밭에 둘러앉아서 와인을 맛봤다. 방의 아내인 카오르가 함께했고, 자녀들이 까르르 웃으며 주변에서 뛰어놀았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전해지는 와인의 향이 왠지 더 달콤한 듯했다. 풀과 부싯돌, 꽃과 과일 향의 아로마가 입안을 풍요롭게 채우는 순간, 이제껏 경험해온 루아르(Loire) 푸이 퓌메(Pouilly Fume) 지역 소비뇽 블랑들과는 달라서 놀랐다. 산미가 도드라지지 않고 아로마가 풍성하며 질감 또한 부드럽다. 마치 여러 개의 곡선을 그리며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랄까.
알렉상드르 방은 산미보다는 숙성을 중시해 포도가 무르익기를 기다렸다가 천천히 수확한다. 포도가 충분한 풍미를 지닐 때까지 기다려주면 별도의 배양 효모나 첨가물 없이 좋은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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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멘 알렉상드르 방에서 시음한 와인들 |
"와인을 입에 머금으면 먼저 혀끝에서 산미가 조금씩 반짝이다가 전체적인 질감과 무게가 혀에 전달되죠? 그다음에 신선하면서도 짭조름한 미네랄이 감지되고, 비로소 마지막에 쌉싸름한 맛이 느껴집니다. '산미→질감과 무게→미네랄→쓴맛'의 단계는 본래 혀가 가진 과학이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잘 만든 와인일수록 이 단계를 천천히 골고루 음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량생산되는 와인 중에는 특정한 맛이 강조된 것이 많아서 단숨에 한 가지를 강조하고 곧 사라지는 거라고 그는 말했다. 반면에 포도를 그대로 발효시킨 내추럴 와인은 서서히 다가와 오래 머물며 여러 가지 단계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현대의 여러 가지 기술이 더해진 와인에 길들여져 있는 소비자가 내추럴 와인을 처음 맛보면 약간 밍밍하거나 시금털털하다고 느끼기 쉽다. 자연 발효된 쿰쿰한 향미가 도는데, 그 향토적인 향이 낯설 수도 있다. 그러나 몇 번 마시다 보면 정제되거나 가미되지 않은 살아 있는 맛에 눈뜨게 되고, 서서히 번지는 여러 겹의 미감에 반해 자꾸만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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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딸 루스의 요청에 따라 향을 맡아보게 해주는 알렉상드르 방. |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알렉상드르 방의 막내딸 루스가 아장아장 걸어 들어와 아빠에게 뭔가 속삭였다. 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가 향을 맡아보도록 해준 뒤 웃음 띤 얼굴로 향에 대한 그녀의 감상을 들어주었다.
"사람도 포도도 스스로 원하는 걸 하도록 지켜봐줘야 합니다. 최소한의 위험과 재해로부터 보호하되, 답을 정해놓고 강요하면 안되죠. 포도 재배에 농약이나 비료를 쓰는 것 못지않게 양조 과정에서 여러 첨가물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어떻게 그 와인이 그 지역의 토양과 품종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인공적인 손길을 더하지 않은 와인이야말로 그 토양과 포도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고, 누군가 한 병의 와인을 마시게 되기까지 밭과 양조장에서부터 이 철학이 지켜져야 한다고 그는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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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빈티지의 와인이 숙성되고 있는 오크통을 열고 있는 알렉상드르 방 |
"수천 ㎞ 떨어진 곳에서 제가 만든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이 이 토양과 포도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농법을 연구하는 건 물론이고 와인을 양조하는 모든 단계에서 늘 생각하죠. 여기서 농사를 짓는 순간부터 먼 어딘가의 식탁에 와인이 닿기까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방법을 쓸 수 있을까 하고 말이에요." ('하' 편으로 이어짐)
[추천 와인]
도멘 알렉상드르 방 엘당주
Domaine Alexandre Bain L d'Ange
풍부한 향 덕분에 와인을 잘 모르는 이들도 쉽게 끌리게 되는 와인이다. 맛을 보면 기존의 소비뇽 블랑 와인과는 확연히 다른 복합미로 즐겁고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다. '엘당주'는 '천사'라는 뜻이며, 동시에 알파벳 'L'이 막내딸 이름 '루스(Luce)'의 약자이기도 하다.
도멘 알렉상드르 방 마드모아젤 엠
Domaine Alexandre Bain Mademoiselle M
작은 석화를 비롯한 해양 화석을 함유한 쥐라기 석회질 토양에서 키운 소비뇽 블랑 포도로 만든다. 단단한 구조감, 풍부한 플레이버, 섬세하고 길게 지속되는 미네랄을 만끽할 수 있다. 와인 이름의 '엠(M)'은 첫째딸 이름 마들렌(Madeleine)의 약자다.
도멘 알렉상드르 방 피에르 프레시외즈
Domaine Alexandre Bain pierre precieuse
다른 지역 소비뇽 블랑과는 확연히 다르며, 푸이 퓌메의 다른 소비뇽 블랑들과도 다른 인상을 준다. 와인의 이름은 둘째아들 '피에르(pierre)'의 이름에서 따왔다.
※ 추천 와인에 관한 문의는 공식 수입업체 다경와인(Dagyeong wine)으로 하면 되며, 구입은 판교 와인 숍 비노스앤(vinosn)에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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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영 여행작가]
※잡지사 기자로 일할 때 여행, 음식, 와인을 담당했던 것을 계기로 여행작가가 됐다. 가까운 미식 여행지 후쿠오카를 다룬 '리얼 후쿠오카'를 썼으며, 유럽 맛의 도시 바르셀로나 여행서 출간을 준비 중이다. KFM 라디오 '반승원의 매일 그대와' 여행 코너에서 매주 세계 도시를 소개하고 있고, 그 밖에 여행 강의나 토크콘서트도 한다. 매경 프리미엄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연재와 기고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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