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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도 검열되던 시절 충무로에 불시착한 ‘첫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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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⑭개그맨

감독 이명세(1989년)



<개그맨>은 저주받은 걸작이며 한국 영화 최초의 컬트이고, 활기를 잃은 1980년대 말 충무로에 불시착한 유에프오(UFO)다. 감독들의 상상력이 심의와 검열과 도제 시스템에 갇혀 있던 시절, 이명세 감독은 그 누구에게도 영화를 배운 적 없는 사람처럼, 혹은 지독한 나르시시즘에 빠진 영화광처럼 기묘한 데뷔작을 내놓았다. <고래사냥>(1984)부터 <기쁜 우리 젊은 날>(1987)까지 배창호 감독의 조감독이었던 그의 첫 영화는 사수의 휴머니즘과 거리가 멀었다. <개그맨>은 당대 한국 관객들에겐 지나치게 낯선 영화였고, 30년이 지난 지금 봐도 그 생경함은 효력을 지닌다.


배우 지망생인 이발사 문도석(배창호)과 감독이 꿈인 카바레 개그맨 이종세(안성기). 그들은 우연히 만난 오선영(황신혜)과 함께, 역시 우연히 손에 넣은 총 한자루를 가지고 무장 강도 행각을 벌인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이것이 전부다. <개그맨>은 신파 감정을 토대로 한 한국 영화의 구구절절한 이야기 관습 따위엔 관심 없으며, 그렇다고 해서 범죄 영화 장르에 눈을 돌리는 것도 아니다. 대신 <개그맨>을 채우는 건 수많은 영화들에 대한 참조다. 그런 면에서 <개그맨>의 주인공은 개그맨이 아니라 문도석이다.

박노식의 ‘상하이 박’ 대사를 읊어대며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영화를 찍고 있다고 착각하는 문도석. 그는 <개그맨>이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걸 보여준다. 이명세 감독은 한국 영화의 그 어떤 계보도 거부하고, 현실을 토대로 하거나 장르 관습에도 기대지 않고, ‘영화라는 꿈’ 혹은 ‘꿈 같은 영화’를 보여준다. 이런 ‘이명세식 판타지’는 이후 그의 영화를 장악하는 영화적 디엔에이(DNA)가 되며, 그는 한국 영화에서 이야기의 강박에서 벗어난 첫번째 감독이 된다. 이 영화로 ‘배우 데뷔’를 한 배창호 감독의 연기는 압권 중의 압권. 이명세 감독처럼 그 역시 그 어떤 계보에도 속하지 않은 독보적인 연기로 후배의 데뷔작을 장악한다. 그의 캐릭터와 대사 구사력만으로도 이 영화를 꼭 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김형석/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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