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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 |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되어 있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완벽하고, 이상적으로 보이는 정책이 엄청난 부작용을 일으키거나 좋지 않은 결과로 끝맺는 경우를 경고한 말이다. 내가 이 말을 떠올린 계기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 이용 장애(gaming disorder)를 공식 질병 코드로 승인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다. 이번 결정은 게임을 과도하게 하여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정신 장애 질병 코드를 새롭게 부여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언뜻 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시야를 넓혀 사회문화적으로 이번 결정 내용을 살펴보면 간단치 않은 문제를 일으키는 방아쇠가 될 가능성이 짙다.
의료화(medicalization)란 개념은 이번 결정이 어떤 치명적 부작용을 만들어 낼지 잘 설명해준다. 의료화란 '일상 문제를 의학적 문제로 바꾸는 과정'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게임 이용 장애는 과도하게 게임을 하는 것이 생활 습관이나 문제가 아니라 질병이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확산시킨다. 그리고 그 결과는 생각지 못한 곳에서 나타나게 된다.
질병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면책 사유가 된다.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가 면제되고, 져야 하는 책임이 경감된다. 당장 게임 이용 장애 보도의 댓글만 살펴보더라도 '게임 장애로 군대 면제가 가능해지는 것인가' '장애인 혜택, 차량 구입/주차 가능해지나' '학교 병결 사유가 되나' 같은 내용이 줄을 잇는다. 또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죄를 줄이기 위해 게임 탓으로 돌리는 것은 특별한 일도 아니다. '격투 게임을 오랫동안 즐기다 보니 나도 모르게 주먹이 나갔다' '자동차 레이싱 게임을 몇 년간 했더니 속도 감각이 무뎌져서 충돌 사고를 냈다'는 소명도 흔해질 것이다. 이제까지 말도 안 되는 것들이 게임 이용 장애의 공식 질병화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고려 사항으로 바뀌는 것이다.
질병은 생존에 매우 치명적인 요소다. 오랜 진화 과정에서 질병은 사람들에게 혐오를 일으켜 본능적으로 피하게 만든다. 이런 맥락에서 게임 이용 장애는 이제까지와 비교도 안 되는 혐오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특히 자녀를 둔 부모에게는 더욱 증폭될 것으로 예상된다. 게임 이용 장애 진단이 나오려면 12개월 이상 과도하게 게임에 몰두할 때라는 조건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상 수준에서 자녀가 한 달 이상 몰두하고 있다면 과연 부모는 아직 열한 달이나 남았으니 안심하고 지켜보게 될까? 절대로 아니다. 사실은 한 달, 열흘이 아니라 하루라도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자녀를 목격한 부모가 안절부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게임이 젊은이들의 주요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임을 고려하면 집에서 청소년들의 스트레스가 더욱 가중되고, 부모 자녀 갈등을 증폭시키는 요소가 된다.
WHO의 게임 이용 장애 공식 질병 코드화가 선의임을 의심치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선의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고려 사항과 협조가 필요하다. 이것은 정신의학계가 전문가의 권위와 고유 영역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게이머와 게임 산업계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반영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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