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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에 희생되고도 5·18유공자 못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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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선씨 도청앞 발포 때 관통상

의식불명 상태였다 이틀 뒤 사망

직계가족 없어 현 법제상 제외돼



5·18 민주화운동 당시 총을 맞고 사망했더라도 직계 가족이 없을 경우 5·18민주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계 가족이 없는 희생자가 5·18민주유공자로 등록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보훈처 등의 말을 종합하면, 5·18 당시 계엄군에게 총에 맞고 사망한 유영선(당시 27살)씨는 아직까지 5·18민주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1973년 전남대 공대 재료공학과에 입학한 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앞둔 유씨는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목숨을 잃었다. 유씨는 미혼이었고 그의 부모 역시 사망해 유공자 신청을 해줄 가족이 없는 까닭에 유공자가 되지 못한 것이다.

5·18민주유공자는 5·18 관련 사망자나 행방불명자, 부상자, 상이자, 구속자, 구금자, 수형자, 연행 후 훈방자 등이 대상으로 신청은 본인 또는 배우자·부모·조부모 등이 할 수 있다. 5·18민주유공자는 정부로부터의 별도의 지원금은 없지만 본인·배우자·자녀 등이 교육·취업·의료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


5·18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유씨는 정작 5·18 당시엔 보안사의 5·18 왜곡·폄훼 공작 대상이 되기도 했다. 보안대는 유씨가 당시 광주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형 고 유낙진(당시 52살·무기수)씨를 구하기 위해 1980년 5월23일 교도소를 습격하다가 사망했다고 조작했다. 이미 유씨는 5월21일 오후 1시께 옛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때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기독교병원으로 이송된 상태였다. 의식불명 상태였던 유씨는 5월23일 끝내 사망했다. 기독교병원 기록엔 유씨의 입원 및 투약일이 5월21~23일로 돼 있다.

교도소 습격사건 자체도 조작으로 드러났다.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시민들이 5월21일 낮 12시30분부터 5월23일 저녁 7시까지 모두 5~7차례 광주교도소를 습격했다는 보안대의 주장은 5·18을 시민폭동으로 몰기 위한 조작이라는 조사 결과를 낸 바 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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