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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끝’이 기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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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히끄의 탐라생활기

육지에 다녀온 반려인 반기는 히끄가 있는 곳, 나의 제주




봄과 함께 제비가 찾아왔다. 덕분에 새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뜬다. 아침마다 자연휴양림에 누워있는 착각이 든다. 제비는 담벼락을 총총총 뛰어다니고, 마당 안에 날아와서 신혼집을 어디로 할지 탐색하느라 분주하다. 매년 우리 집 처마 밑에 제비들이 둥지를 짓는데, 올해는 어떤 세입자가 올지 기대된다.

히끄는 입주 준비 중인 제비를 보고 “캭캭캭” 채터링을 했다. 채터링은 고양이가 사냥감을 발견했을 때 내는 본능적인 소리이다. 처음에는 새를 잡고 싶어서 내는 소리인 줄 알았지만, 새가 먼저 우는 소리를 내야 채터링을 하는 걸 보면 새소리를 흉내 내는 듯하다. 새에게 ‘널 사냥하고 싶다’고 선전포고하는 줄 알았는데, 근엄한 얼굴 뒤에 숨겨진 개인기로 성대모사를 하는 거였다.

한적한 시골에서 살다 보면 이렇게 평화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다. 딱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서울로 전시나 공연을 보러 가는데, 자영업자인 나에게 주는 ‘셀프 연차’다. 최근에는 많이 걷고 싶어서 부산과 경주에 다녀왔다. 일부러 개화 시기를 맞춰서 간 게 아닌데, 가는 곳마다 벚꽃이 절정이라서 깜짝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혼자 가는 여행은 오랜만이어서 20대 때 생각도 나고,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았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라서 방황하던 20대 때는 집이 너무 불편했다. 독립하고 싶었지만, 대학교를 막 졸업해서 행동으로 옮길 경제력이 없었다. 사회가 나를 쓸모없는 존재라고 인식하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생각할 일이 아니었는데,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던 그때는 그랬다. 집에 있을 때는 무기력했지만, 낯선 곳에 가면 적응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변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여행 가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일과 집이 생기고 돌아보니 그저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 시절 나에게 여행은 현실도피였는데, 지금은 여행보다 히끄와 함께 보내는 일상이 더 좋아서 여행에 대한 갈증은 없다.

확실히 반려동물을 키우게 되면 긴 여행은 머뭇거려진다. 고양이는 개보다 독립적이지만,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느끼는 건 똑같다. 막상 여행을 떠나면, 히끄가 보고 싶은 마음보다 걱정되는 감정이 더 크다. 그래서 초반에는 홈캠으로 히끄가 잘 있는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분리불안은 반려인과 반려동물 모두 느끼는 감정이다.


일정 마지막 날에는 여행이 끝나는 아쉬움은 잠시고, 히끄를 만나러 가는 날이라서 기쁘다. 매년 찾아오는 제비처럼 여행에 종착지는 언제나 집이다. 여행이 아무리 즐거워도 결국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역시 우리 집이 최고다”라고 말한다. 돌아갈 집과 나를 기다리는 가족이 있는 곳이야말로 여행의 시작이자 끝이다.

이신아 히끄아부지 <히끄네집>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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