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흐림 / 4.0 °
아시아경제 언론사 이미지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양보, 12명 중 1명

아시아경제 유병돈
원문보기
댓글 이동 버튼0
임산부 배려석 앞에 배지 달고 서 있었지만
스마트폰 보거나 잠자는 척
불룩한 배와 임산부 배지는 지하철 승객들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가방을 들고 서있는 기자(왼쪽) 바로 앞이 임산부 배려석이고, 그 바닥에 표시도 있다.

불룩한 배와 임산부 배지는 지하철 승객들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가방을 들고 서있는 기자(왼쪽) 바로 앞이 임산부 배려석이고, 그 바닥에 표시도 있다.


[아시아경제 유병돈, 차민영 기자] 임신 8개월, 겉으로 보기에 임산부인게 확연히 드러난다. 무게 6.5kg짜리 동대문구 답십리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빌린 ‘임산부 체험복’을 착용한 채 서울 지하철 2호선에 올랐다. 보건소에 목적을 이야기하고 배지도 받아왔다. ‘임산부 먼저’라고 쓰여있는 동그란 핑크색 배지는 등에 맨 가방 정중앙에서 반짝였다.


오전 7시 출근시간대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은 만원이었다. 이날 목격한 자리의 임자 모두 임산부로는 보이지 않았다. 임산부 배려석은 지하철 한칸(1량)에 두 개 있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는 30대 중반께 여성 앞에 섰다. 여성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품이 넉넉한 셔츠 아래 배가 안 보이는걸까, 옷매무새를 만져봤지만 그는 끝내 임산부 배려석 앞에 선 임산부를 눈치채지 못했다. 배를 만져보기도 하고 힘든 표정을 지어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사람은 다양했다. 어떤 중년 남성 한 명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젊은 남성은 스마트폰만 보고 있었고 또 다른 중년 여성은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감상하고 있었다. 모두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다는 사실을 그리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퇴근시간 무렵인 오후 6시께 2호선 지하철을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용기를 내 말을 걸어봤다. 이어폰을 꽂은 채 스마트폰에 집중하던 20대 젊은 여성은 “죄송하다”며 벌떡 일어나 황급히 자리를 옮겼다. 기자는 겉으로는 여유로운 척했지만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놓고 ‘양보해달라’는 말에 모두가 ‘미안하다’고 답하는 건 아닐테니까. 실제 임산부가 교통약자석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폭행을 당한 사건도 있었다.


임산부 체험을 하면서 폭행을 당하거나 욕설을 듣진 않았다. 그러나 무례한 농담은 악성 댓글처럼 귓가에 잘 꽂혔다. "저거(배지) 있으면 다 앉을 수 있는 거야? 우리도 저거 하나 구해서 달고 다녀볼까." 배지에 뭐라 쓰여 있나 유심히 보던 한 중년 여성이 옆 지인에게 던진 말이다.


이렇게 아침과 저녁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보낸 4시간. 임산부 배려석 앞에 12번을 섰고 1명이 자진해서 자리를 양보했다. 임산부가 지하철 자리를 확보하는 것. 하물며 ‘배려석’을 양보받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이날 유일하게 스스로 자리를 내준 사람은 역삼역 인근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이었다. 그는 “눈을 마주치니 힘들어보였다. 평소에는 이 자리 잘 앉지도 않는데 길이 멀다보니 앉게 됐다”며 미안한 웃음을 보였다.


임산부 배려석은 아니지만 구석에서 불편하게 서 있는 기자에게 일반석 자리를 양보한 사람도 있었다. 구로디지털단지역 인근 회사에서 마케터로 근무한다는 한 20대 여성은 자리에 앉은 기자에게 사탕 하나를 건넸다. 그는 “몸이 힘들어 보이는데 주변 임산부 배려석이 이미 꽉 차 있는 것을 보고 나라도 양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쌉싸래한 맛을 내는 사탕을 입에 넣은 기자에게 말했다.

2일 지하철 2호선 임산부 배려석 앞에서 임산부 배지를 들고 있는 모습. 배지는 인근 보건소나 역에서 산모수첩 등 증빙 서류를 내면 받을 수 있다.

2일 지하철 2호선 임산부 배려석 앞에서 임산부 배지를 들고 있는 모습. 배지는 인근 보건소나 역에서 산모수첩 등 증빙 서류를 내면 받을 수 있다.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쿠팡 특검 수사
    쿠팡 특검 수사
  2. 2SSG 버하겐 영입
    SSG 버하겐 영입
  3. 3트와이스 홍콩 화재 기부
    트와이스 홍콩 화재 기부
  4. 4롯데 신인 선수
    롯데 신인 선수
  5. 5박나래 불법 의료 의혹
    박나래 불법 의료 의혹

아시아경제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