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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격 교체를 발표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해병 대장 시절 모습. 2010년 3월 열린 해병 사병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미 본토 최대규모의 해병 기지인 캘리포니아 캠프 펜들턴에 도착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결국 ‘마지막 해병’도 떠난다. 이번에도 전달도구는 트위터였다. 트럼프는 20일(현지시간)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내년 2월 펜타곤을 떠난다”고 발표했다. 매티스는 즉각 이를 시인하고 퇴임사를 발표했다. 직접적인 발단은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 결정이었다. 조짐이 좋지 않다. 국내 정치적으로 여러가지 수사에 직면한 가운데 지지율이 내려앉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외정책에서 파괴적 자충수를 두고 있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던지는 의미 역시 적지 않다.
시리아의 이슬람국가(ISIS)를 격퇴하기 위해 74개국의 연합을 구성한 것은 미국이었다. 트럼프의 한마디로 미국이 달랑 떠나버리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동맹국들은 물론 쿠르드도 고립무원이 된다. 매티스는 시리아 전면철군에 거세게 저항했다. 트럼프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1만4천명의 미군 중에서도 수천명을 철수시킬 것으로 전해졌다. 이쯤 되면 ‘소신의 매티스’가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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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7일 백악관 일일 브리핑 자리에 참석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포퓰리스트는 칭찬을 먹고 산다. 공화당 연방 상·하의원들이 여전히 트럼프를 옹위하고 있지만, 궁지에 몰렸을 때 그가 가장 위험인물이 될 수있음을 입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자기 만의 박스에 갇힌 포퓰리스트는 소신과 반대에 부딪혔을 때 머리 속을 맴도는 가장 과격한 생각을 실천에 옮긴다. 트럼프는 이날 멕시코와의 장벽건설 예산이 빠졌다는 이유로 연방정부 셧다운(일시 업무정지)를 피하기 위해 상원이 처리한 긴급 지출법안의 서명을 거부했다.
국내 정책 보다 대외 정책에서 더욱 극단으로 치닫는다. 전략적 구도는커녕 변덕과 감정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동맹의 등에 칼을 꽂은 시리아 철군이 그 본보기다.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엉뚱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걱정할 것 없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적절한 제지를 할 매티스와 같은 행정부 내 필터가 있다는 믿음도 ‘묻지마 낙관’의 근거였으리라. 하지만 매티스의 전격 사임으로 트럼프 행정부에선 보스의 생각을 걸러낼 필터 기능에 치명적인 장애가 발생하게 됐다.
트럼프가 군사력의 행사를 통해 스스로 총사령관임을 입증할 가능성(줄리안 제이저 프린스턴대 교수)까지 제기된다. 바로 지난해 북한이 수소폭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핵무력 완성을 선포하자, 대북 공격을 심각하게 고려했던 트럼프 행정부다. 그나마 매티스가 성급한 결정을 막았을 것이다. 밥 우드워드의 근작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에 따르면 매티스를 비롯한 군 수뇌부는 지난 1월19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회의 석상에서 생뚱맞게 무역적자타령을 하면서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자, “미군을 한국에 주둔시키는 게 비용을 절감하는 최선책”이라며 막았던 주역도 매티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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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 10월23일 백악관 캐비넷룸에서 열린 군 사령관들의 브리핑을 받는 도중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말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매티스는 사임 서한에서 “다른 누군가가 트럼프의 비전을 완수하는 데 더 적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미국과 세계에 내놓은 경고는 두가지다. 우선 “미국의 힘은 미국의 고유하고 포괄적인 동맹과 파트너십 시스템의 힘과 뗄레야 뗄 수없는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동맹이 없이 미국은 다른 나라들은 물론 미국을 보호할 수없다고 경고했다. 매티스는 중국과 러시아를 지목하면서 “자신들의 전략적 이익과 미국의 전략적 이익 간에 갈수록 긴장이 높아지는 나라들에 접근하는 데 있어 대통령은 단호하면서도 분명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매티스는 트럼프를 콕 찍어 충언을 내놓지는 않았다. 트럼프가 바뀌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게다. 또 트럼프를 정상적인 대통령으로 돌려놓는 것이 헛수고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일게다.
사퇴서는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수신인으로 돼 있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지난 2년 동안 트럼프가 일으킨 온갖 평지풍파 속에서도 침묵을 지켜온 공화당과 보수적인 외교안보정책 입안자들 앞으로 보낸 메시지이다.
침묵을 지켜왔지만 미국 대외정책의 역사와 복잡성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상대로 대통령이 자신들과 같은 페이지에 있지 않음을 상기시킨 것이다. 동시에 미국이 대통령으로부터 목전의 진짜 위기를 마주하고 있으며, 미국의 평화를 성공적으로 지켜온 핵심 원칙들이 위기에 처했음을 말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트럼프야 매티스의 사직서를 휴지통에 던져버리고 고분고분한 후임자를 임명할 것이 분명하다. 향후 관건은 공화당과 공화당원들이 매티스의 메시지에 과연 귀를 기울일 것인가 이다. 아니면 앞으로도 계속 눈과 귀를 막고 ‘묻지마 희망’을 유지할 것이냐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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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7일 중국을 방문한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베이징에서 열린 환영행사 도중 중국 인민해방군의 사열을 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매티스와 함께 역시 해병대 대장 출신인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도 이달 말 백악관을 떠난다. 미 해병 1사단에서 대령 계급으로 사단장 매티스를 보좌했던 조지프 던포드 합참의장도 떠난다. 트럼프는 켈리 실장의 해임과 던포드 장군의 후임(마크 밀리 현 육군참모총장) 지명을 지난 12월8일 하루에 발표했다. 던포드는 2015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임명했지만, 매티스와 켈리는 트럼프가 직접 모셔온 사람들이다. 이로써 트럼프 행정부를 그나마 지탱해온 ‘해병 3인방’의 방어막은 사라진다. 미국은 물론 세계가 더 불가측해졌다.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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