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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21C 대한민국과 단테의 신곡’] 탐욕과 방탕은 세상을 도적질하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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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스’, 귀스타브 도레(1832~1883년), 1861년.

‘플루토스’, 귀스타브 도레(1832~1883년), 1861년.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식탐하는 자들이 끊임없는 눈비로 고생하고 있는 지옥의 제3환을 지나 제4환으로 내려온다.

이곳은 탐욕스럽고 방탕한 자들이 형벌을 받는 장소다. 이곳으로 입장하기 위해서는 ‘플루토스(Plutus)’라는 괴물을 통과해야 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플루토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지하세계의 괴물이 아니다. 부의 신으로, 이아손과 데메테르 여신의 아들이다. 단테는 플루토스를 탐욕스러운 자들을 징벌하는 괴물로 둔갑시켰다. 플루토스는 살아 있는 자로서 이곳으로 들어오려는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에게 고대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섞어 다음과 같이 소리 지른다.

“파페 사탄, 파페 사탄, 알레페(Pape Satan, pape Satan aleppe)! 코민치오 플로토 콘 라 보체 치오키아.” (인페르노 제7곡 1~2행)

이 문장을 번역하면 이렇다.

“파페 사탄, 파페 사탄, 알레페! 플루토스는 귀에 거슬리는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학자들은 이 첫 문장을 해석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첫 단어인 ‘파페(Pape)’는 ‘감탄’을 의미하는 감탄사 ‘파파이(papae)’거나 ‘교황’을 의미하는 ‘파파(papa)’의 축약형이다. ‘사탄(Satan)’은 ‘악마’란 의미다. 문제는 마지막 단어 ‘알레페’다. 알레페는 히브리어 알파벳 첫 글자 ‘알레프(aleph)’의 이탈리아어 음역이다. 신약성서 ‘계시록’에서 신은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로 표현하기 때문에 알레페는 ‘신’을 의미한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럼 첫 문장은 ‘오, 교황-사탄, 하나님 맙소사!’ 정도가 될 것이다.

단테는 플루토스의 입을 통해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고 귀에 거슬리는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언급하면서 지옥의 분위기를 암시한다. 그는 또한 교황을 상상하게 하는 단어인 ‘파페’를 사용해, 이곳 지옥의 죄인들 가운데 교황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넌지시 알린다.

단테는 이곳에서 탐욕과 방탕으로 형벌을 받는 죄인들의 그림자를 만난다. 이 죄인들은 물질적인 재산에 집착한 구두쇠거나 반대로 자신에게 맡겨진 재산을 탕진한 낭비자들이다.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년)가 쓴 시 ‘세상은 우리에게 너무해(The World Is Too Much With Us)’라는 시의 첫 두 행에서 전한 취지와 유사하다.


“The world is too much with us; late and soon, Getting and spending, we lay waste our powers.”

이 문장의 번역은 이렇다.

“세상은 우리에게 너무해. 늦거나 이르다. 우리는 모으고 쓰고 우리의 힘을 낭비한다.”


단테는 제7곡에서 인간이 부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를 다룬다. 돈에 너무 집착하거나 반대로 집착하지 않아 낭비하는 것 또한 죄다. 탐욕이나 낭비 모두 중용이 부족한 상태다.

단테는 중세 그리스도교의 ‘탐욕’이란 죄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탐욕’과 ‘방탕’으로 확장했다. 그는 중용이란 의미의 이탈리아어 ‘미주라(misura)’라는 단어를 이용해 설명한다. 이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철학에서 따왔다. 미주라는 균형이 잡힌 마음의 상태다.

단테는 미주라를 돈에 대한 인간의 태도로 해석했다. 미주라의 반대 개념인 ‘디스미주라(dismisura)’는 인페르노 제16곡과 푸르가토리오(연옥) 제22곡에서도 등장한다. 인페르노 제16곡에서는 당시 피렌체 벼락부자들의 오만과 방탕을, 푸르가토리오 제22곡에서는 탐욕을 부연 설명하는 단어로 디스미주라를 쓴다. 단테는 분명 지옥의 구조를 그리스도교 ‘칠죄종(七罪宗)’에 근거해 만들었던 듯싶다.

단테의 중용은 당시 그리스도교의 칠죄종과는 다르다. 칠죄종은 그것 자체가 죄이자 동시에 인간의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죄들로 다음과 같다. 교만, 시기, 분노, 게으름, 탐욕, 식탐, 음욕이다. 이 순서는 가장 중한 죄에서 시작해 약한 죄로 마친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제2환에서 ‘음욕’을, 제3환에서는 ‘식탐’의 죄를 범한 영혼들을 봤다. 이제는 제4환에서 ‘탐욕’의 죄를 지은 영혼들을 만난다. 단테는 탐욕을 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타락’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중심을 잡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상태의 하나라고 봤다. 탐욕의 반대쪽에 바로 ‘방탕’이 있다. 단테가 탐욕과 방탕의 죄를 지은 영혼을 함께 소개한 이유는 이것이다.

단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 특히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등장하는 ‘덕’의 개념을 통해 죄를 설명한다. 덕이 있는 사람은 사람이나 사물과 관련해 과도하지 않게 중용을 지킨 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3권에서 ‘용기’란 덕을 비겁과 만용의 중간으로 소개한다. 제4권에서는 인간 문명을 지탱하는 수단인 돈에 관한 태도를 설명한다. 그는 돈에 관한 중용을 그리스어로 ‘엘류세오리오테스(eleutheriotes)’ 즉 ‘너그러움’으로 설명한다. 너그러움이 부족한 상태를 ‘인색(aneleutheria)’, 너그러움이 과도한 상태를 ‘방탕 또는 낭비(asotia)’라고 불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돈 또한 다른 유용한 물건처럼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돈에 있어 덕은 최선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돈을 선용하는 것이다. 최적인 사람에게 최적의 돈을 최적의 시간에 주는 것이다. 너그러움은 돈을 잘 버는 방법이 아니다. 너그러운 사람은 돈을 통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혜안을 지닌 자다. 단테는 인색하지도 않고 낭비하지도 않는 너그러운 사람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Mal dare e mal tener lo mondo pulcro ha tolto loro.” (제7곡 58~59행)

즉 “과도하게 돈을 주거나(쓰거나) 과도하게 돈을 쓰지 않거나 하는 일은 아름다운 세상을 도적질하는 것이다.”

단테는 자신이 피렌체에서 봤던 당시 종교 지도자들, 수사, 대주교 그리고 교황의 죄를 탐욕으로 정죄한다. 그들의 모습은 탐욕으로 더럽혀져 얼굴이나 형태가 망가져 알아볼 수 없다. 탐욕의 노예가 된 사람들은 항상 호전적이다. 이익에 눈이 멀어 무의식적으로 항상 싸움을 건다. 단테는 탐욕스러운 사람들의 행동을 ‘마상 창 시합’으로 비유한다. 그들은 인생의 목적은 상실하고 상대방 파괴에만 몰입돼 있다.

단테는 인간에게 주어진 부는 ‘우연’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 ‘포르투나(Fortuna)’를 등장시킨다. 단테에게 포르투나는 ‘행운’의 여신일 뿐 아니라 신의 섭리를 조정하는 존재다. 포르투나는 갑자기 불어난 부가 가져온 사회 불안을 조절하고 제거하는 존재다. 그는 행운의 개념을, 자신이 사랑했던 베아트리체가 죽고 난 뒤 위안을 얻은 책에서 영향을 받아 정립했다. 보이티우스(Boethius)의 ‘철학의 위안’이다.

보이티우스에게 행운이란 자기 마음대로 인간의 운명을 바꾸며 그것을 즐기는 변덕스러운 여신이다. 그는 감옥에서 재산, 명예 그리고 자유를 잃고 사형을 기다리며 한 가지를 깨닫는다. 불행이 궁극적으로 행운보다 더 좋다는 것이다. 인간은 불행을 통해 삶의 핵심, 즉 덧없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단테의 포르투나는 세상의 부를 자기 마음대로 배분한다. 포르투나는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다.

첫 번째는 ‘신속성’이다. “그녀가 유발하는 변화는 쉬는 법이 없습니다. 항상 신속하게 움직입니다. 그 이유로 인간의 상태(운명)도 달라집니다.” (88~90행)

두 번째는 ‘불예측성’이다. “그녀는 자신의 원을 돌린다.” (96행)

인간에게 부는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도구다. 가진 돈이 많든 적든 그것을 자신에게 어울리게 사용하는 ‘너그러움’이라는 중용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행운의 여신은 그 부를 빠르게 그리고 갑자기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것이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87호 (2018.12.12~12.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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