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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울대 뜨거워지는 `안시성` vs 땅을 둘러싼 암투 `명당`

매일경제 김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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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

`안시성`


추석 연휴 기간을 노린 사극 영화 두 편이 19일 맞붙는다. 김광식 감독의 '안시성'과 박희곤 감독의 '명당'이다. 지난주 시사회를 가진 두 영화를 각각 짚어봤다.

◆'안시성', 목울대가 뜨거워지네

'안시성'은 전장의 급박함을 알리는 장중한 백그라운드 음악이 내리깔리며 출발한다. 배경은 허허벌판이고 묵직한 말발굽 소리가 대지를 가로지르고 있다. 당 태종 이세민(박성웅)의 대군에 맞서는 연개소문(유오성)의 최정예 개마무사들. 카메라는 동서남북으로 위치와 방향을 달리하며 전장을 지켜보고 있고, 갈색빛 모래바람이 이들 모두를 지워버릴 듯 휘몰아친다.

그렇게 개마무사들은 방패로 가로 막은 당나라 대군을 있는 그대로 뚫고 들어간다. 소낙비처럼 무수한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쏟아지고, 검과 창들이 맞부딪치며 쇠소리를 일으킨다. 하지만 벌판에서의 전쟁은 고구려군에겐 더없이 불리한 지형. 무사들은 이내 당나라 대군에 도륙되고 만다. 태학도 수장이며 안시성 출신인 사물(남주혁)은 지원 부대를 보내지 않은 안시성 성주 양만춘(조인성)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연개소문(유오성)에게서 하달 받는다.

초대형 스펙터클의 향연이던 오프닝시퀀스와 달리 '안시성'의 초중반부는 전투 신 없이 전개된다. 양만춘을 죽이기 위해 혈혈단신 안시성으로 떠난 사물의 시점이 중심이다. 사물은 한 사람 관찰자로서 산과 들을 지나 말을 타고 안시성에 당도하며, 성주라기엔 이상하리만치 위엄이 느껴지지 않는 젊은 성주 양만춘을 첫 대면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 또한 사물의 시점이 되어 이 베일에 쌓인 남자를 관찰하게 된다.

사물은 목적대로 양만춘을 암살할 것인가. 상황은 정반대로 흐른다. 양만춘이라는 남자를 향해 분노와 적개심을 갖던 사물은 서서히 그 감정을 거둬버린다. 외려 매료된 것이다. 성주로서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지휘고하를 막론하고서 안시성 주민들과 한 몸이 돼있는 이 남자의 인간미에, 자신을 암살하러 왔음을 알고 있음에도, 사물을 곁에 두려하는 이 남자의 담대함에.


시간이 흐를 수록 관객들의 마음 또한 변화하는 사물의 내적 궤적을 점차로 좇아간다. 애초에 양만춘 역에 발탁된 배우 조인성에 대해 미스캐스팅으로 여긴 관객이더라도, 어느 순간 양만춘화된 그에게 동화되고 말 것이다. 조인성은 한 사람 성주 이상의 존재, 그러니까 안시성 그 자체인 양만춘을 제법 훌륭히 소화해낸다.

'안시성'은 양만춘 만큼이나 주·조연들 모두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볼거리로서 스펙터클(전투신에선 영화 '300' '반지의 제왕' 등을, 극 말미 이세민을 겨냥해 대궁 쏘는 신에선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클라이맥스를 연상케 한다)과 짜임새 있는 플롯이 유기적으로 접합돼 있는데, 어느 한 쪽에 치중되지 않고 균형감 있게 서사를 밀어붙인다. 캐릭터들도 소외되는 이들 없이 각자의 개성을 발산해내고 있다.

관찰자로서 사물, 양만춘의 수하 추수지(배성우), 우정 관계를 이루는 풍(박병은)과 활보(오대환), 애달픈 연인 사이인 파소(엄태구)와 백하(설현), 이세민에게 붙들린 무녀 시미(정은채) 등이 그들이다. 그리고 주목할 것은, 이 영화가 양만춘을 신격화·영웅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안시성을 지켜낸 게 양만춘 개인이 아닌 모두의 공이었다는 공동체주의 메시지는 진한 여운과 함께 기어이 목울대를 뜨겁게 만든다.


◆명당, 과정이 결말을 잡아먹네

반면 '명당'은 상대적으로 볼거리로서 스펙터클과 스토리텔링이 유기적으로 스며들지 않는다는 인상이 짙다. 후자의 과잉이 전자를 압도해버리는 형국에 가까운 것이다. 서사의 조각들을 꿰맞추려 골몰하는 동안 시간은 흐르고 또 흘러, 가슴 아닌 머리로 영화를 대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좋은 터가 가문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국운을 좌우한다는 '명당 절대주의' 또한 그리 흥미롭진 않는데, 이는 한재림 감독의 '관상'(2013)에서 '관상'이 그러했던 것을 '명당'으로 치환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조선의 국운이 다한 배경에 흥선(지성)의 과도한 '권력에의 의지'와 이를 위한 '명당에의 욕망'이 있었다는 결말부로 치닫게끔 서사를 진행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다소 산만한 편이어서 몰입감이 얼마간 반감된다. 천재 지관 박재상(조승우)과 흥선(지성) 사이 합도 시너지보단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악의 축인 김좌근(백윤식), 김병기(김성균), 정만인(박충선)과 선의 축이라 할 박재상의 동료 구용식(유재명), 이들 사이에서 죽음에 이르는 초선(문채원) 등도 제 색깔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눈여겨볼 신이 없지는 않다. '명당'에서 가장 강렬하게 다가오는 건 흥선에 의해 활활 불태워지는 가야사의 이미지다. 조선의 명운을 좌우했던 이 제일의 명당이 불타오르는 순간, 광기에 잠식된 흥선은 디오니소스처럼 도취된다. 극중 가장 도덕적인 인물이라 할 천재 지관 박재상은 이 상황에 탄식하며 이내 절규한다. 클로즈업된 두 남자의 상반된 표정, 타오르는 가야산의 활력이 지배하는 이 신이야말로 '명당'의 가장 영화적이며 매혹적인 순간이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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