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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살인 물가' 베네수엘라··· 포퓰리즘이 부른 비극

서울경제 정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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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매장량 1위에도 끼니 부족에 평균 몸무게 11kg 빠져
의약품 못 구해 사망 속출··· 인구 10%는 해외로 대탈출
시장 자율성 무너지자 '서민위한 정책'이 재앙으로 돌변




베네수엘라에서는 매일 같이 물가 상승이 큰 폭으로 있다 보니 화폐의 가치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현금을 가져가면 상인들은 돈을 받지 않고 신용카드로 긁으라고 합니다. 현금 보관 비용이 훨씬 크다는 거죠. 주차비 같은 건 에너지 바나 초콜릿으로 대신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쓸모없는 지폐보다는 요깃거리가 될 만한 게 낫다는 생각이죠. 못 쓰게 된 지폐를 엮어 가방이나 지갑 등을 만드는 상인들의 모습도 진풍경입니다.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장래희망 1위인 건물주도 여기서는 안타까운 처지입니다. 한달만 지나면 물가는 크게 올라있는데 월세는 이를 못 따라가죠. 한 달 전 월세로는 현재 암시장에서는 우유 한 통 사는 것도 어렵다고 합니다.

이 모든 비극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건 베네수엘라의 석유 매장량이 전 세계 1위라는 점 때문입니다. 수출의 96%를 석유가 차지할 정도였죠. 하지만 지금은 넘쳐나는 석유를 갖고도 끼니를 고민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두로 대통령의 실책도 크지만 문제의 원인을 짚어내기 위해서는 전임인 고(故) 우고 차베스 대통령을 따라가야 합니다. 차베스 전 대통령은 1999년 처음 정권을 잡고 2013년 사망하기까지 빈민 정책에 가장 큰 힘을 썼습니다. 빈민층 200만 가구에 무상으로 집을 지어주고 화장지, 밀가루, 식용유 등 필수재의 가격을 통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오일 머니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무리한 빈민정책으로 인해 국영석유기업 PDVSA는 망가져 갔고 매출의 상당 부분이 빈민 정책에 쓰였습니다. PDVSA의 기존 인력은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들이 대신 했죠.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생산 가능한 석유량은 계속 줄어들었습니다. 또 필수재 가격을 통제하다 보니 이윤이 남지 않은 기업은 문을 닫았고 결국 수입에 의존하게 됐습니다.

여기에 외화는 무조건 정부를 통해서 고정비율로 환전하도록 하다보니 실제 환율을 반영하지 못해 달러에 대한 수요는 암시장으로 몰렸습니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떨어지고 자국 화폐만 시장에 넘쳐나 화폐 가치가 급격히 떨어졌죠. 이러한 통제 정책과 극단적인 포퓰리즘이 베네수엘라를 지금의 상황으로 끌고 갔죠.



견디다 못한 마두로 정권은 지난 8월20일 10만 볼리바르를 1볼리바르로 액면절하했습니다. 또 다른 궁여지책으로 지난 2월에는 매장된 원유를 담보로 암호화폐 페트로를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실물을 기반으로 떨어진 화폐 가치를 높이겠다는 거죠. 정부에서는 부동산 거래를 비롯해 세금, 이자 납부까지 페트로를 통해 하도록 강제하며 힘을 실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효과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미국에서는 페트로 거래 금지를 선언했기 때문이죠.


결국 서민을 위한 포퓰리즘 정책이 서민은 물론 나라 전체를 빈곤에 시달리게 하는 결과를 낳았죠. 정부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만 펼 경우 시장의 자율성을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는지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번 경제 원리가 무너지고 나면 회복하기가 정말 힘들다는 사실도 말이죠. 성급한 화폐 개혁보다는 국가 안팎으로 신뢰를 줄 수 있는 정부의 행보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베네수엘라의 물가는 얼마나 올라갔을까요.

/정혜진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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