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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기자의 크로스 북리뷰]‘간 적도 없고, 가지도 않을’ 작가가 쓴 지도책…유디트 샬란스키의 ‘머나먼 섬들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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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양 흩어진 외딴 섬 50곳
그곳서 일어난 끔찍한 이야기
연일 지속되는 폭염 때문에 밖으로 나갈 엄두조차 나지 않습니다. 그럴 땐 지도를 보면서 여행을 떠나는 건 어떨까요. 최근 국내에 출간된 <머나먼 섬들의 지도>(눌와)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지도책입니다. 엔솜헤덴, 어센션, 트린다데, 사우스킬링, 나푸카, 타온기, 푸카푸카…. 오대양에 흩어져 있는 외딴섬들의 이름입니다. 생소하기 그지없습니다. 과연 저자는 이곳들을 직접 방문하고 책을 썼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책의 부제가 ‘내가 한번도 가보지 않았고 앞으로도 가지 않을 50개의 섬’인 이유입니다.

1980년 동독에서 태어난 작가이자 북디자이너인 유디트 샬란스키(사진)는 국경을 자유롭게 넘을 수 없는 ‘섬’과 같은 나라에 살면서 지도로 여행하는 법을 익혔다고 합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나는 지도 위를 이리저리 더듬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에로틱한 몸짓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한 적이 있다”고 썼습니다. 이에 대해 가디언은 “지도 애호가들은 그녀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바로 알아챌 것”이라며 “어떤 풍경을 멀리 떨어져서 동경하는 일이 실제로 그곳에 도달했을 때 얻는 만족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라고 평했습니다.

이 책을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 문구는 시각적으로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2009년 ‘가장 아름다운 독일책’에 뽑혔고, 이듬해 세계적인 디자인상인 레드닷디자인어워드를 받았습니다. 책의 오른쪽 페이지에는 청회색 바탕의 바다 위에 흰색, 회색, 오렌지색으로 나타낸 섬의 평면이 그려져 있는데,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미지의 섬들을 직접 손으로 그려낸 저자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디자인 못지않게 책에 실린 글도 주목할 만합니다. 저자는 질병, 강간, 영아 살해, 식인주의, 핵실험, 환경 파괴 등 섬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이야기들을 유려한 산문으로 적어 놓았습니다. 자유기고가 제나 슈누어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여행섹션에 쓴 글에서 “나는 책의 오류들에 눈이 멀었다기보다는, 책이 가진 매력을 과소평가했다”며 “샬란스키가 각 섬의 지도와 함께 들려주는 이야기와 역사에 비로소 주목하면서 내 실수를 깨달았다”고 적었습니다.





현재 베를린에 사는 저자는 소설가로도 활동하는 젊은 출판인입니다. 국내에도 번역된 <기린은 왜 목이 길까?>(갈무리)로 2012년 다시 한번 ‘가장 아름다운 독일책’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2013년 4월 괴테 인스티튜트 홈페이지에 실린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책을 페티시즘의 일종으로 여겨서 유리 뒤에 가두어버리는 것에 전적으로 반대한다. 책은 지저분해질수록, 우리가 우리의 흔적을 남길수록 좋다”고 말했습니다.

지도책(atlas)의 본래 이름은 ‘테아트룸 오르비스 테라룸’으로, ‘세계의 극장’이라는 뜻을 지녔다고 합니다. 동독에서 자라난 저자가 지도와 책으로 세계를 여행하게 된 이야기를 곱씹고 있노라면,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분단된 한반도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약은 때로는 무한한 상상력과 창작의 원천이 되기도 하니까요.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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