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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 프랑크 비극 뒤엔 미국의 반난민 정서도 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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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안네 프랑크 하우스·워싱턴 홀로코스트기념관 보고서

“안네 아버지가 두 차례 미국 망명 시도했으나 실패”

안네 가족 미국 비자 거부는 안 했으나 절차 진행 안돼

2차대전 중 독일 국적자 등 나치 협조자 의심해 거부



<안네의 일기>의 주인공인 유대인 안네 프랑크의 가족이 비극을 맞은 배경에는 미국의 반난민 정서도 작용을 했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나왔다.

네덜란드 ‘안네 프랑크 하우스’와 미국 워싱턴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최근 함께 발간한 보고서에서 안네의 가족이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피신하려다 좌절한 과정을 밝혔다.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는 2차대전 개전 전인 1938년부터 미국 이민을 준비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미국영사관에 이민을 신청했지만 절차는 나아가지 못했고, 신청 서류는 1940년 독일군의 공습으로 영사관이 파괴되는 과정에서 없어졌다. 안네의 아버지는 서류를 다시 준비하려고 동분서주했지만 유대인을 무국적자로 취급하는 상황이라 쉽지 않았다.

1941년 초에는 친분이 있는 미국 사업가 나탄 스트라우스를 통해 미국 입국을 시도했다. 당시 안네의 아버지는 “이주해야만 할 상황으로 몰렸으며, 미국만이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썼다. 하지만 그해 6월 미국과 독일의 관계가 악화돼 서로의 영사관을 폐쇄하면서 미국 망명의 길이 닫혔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나자 안네의 가족은 해외 도피를 포기하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1944년 8월에 나치에 발각되기 전까지 은신했다.

보고서는 일부 주장처럼 미국이 안네 가족의 망명 신청을 명시적으로 거부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이 놓은 장애물도 있었다”며, 결과적으로 이민 절차가 진행되지 않아 이들이 생명을 건질 기회를 날렸다고 판단했다. 당시 미국에는 난민 인정 제도가 따로 없었고, 국가별로 설정한 쿼터로 이민을 받아들였다.

보고서는 안네 가족의 미국 도피가 실패한 데는 이런 관료주의적 장애와 함께 나치 점령 하의 유럽인들을 거부하는 반난민 정서도 있었다고 분석했다. 1938년 미국 여론조사에서는 67%가 독일인, 오스트리아인, 기타 정치적 난민을 받아들이지 말자는 의견을 보였다. 1941년 조사에서는 71%가 나치가 미국 안에 간첩 조직을 갖추고 파괴 공작을 꾸미고 있다고 답했다. 미국은 2차대전 중 배를 타고 도착한 유대인 수천명을 독일의 간첩일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돌려보냈으며, 그 중 상당수가 나치에 희생당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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