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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끌려갔다 온지 71년이 되고, 신고한지 어언 26년이 넘고,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신고도 안 했제!”(김복동 할머니·92세)
할머니의 떨리는 음성엔 울음이 묻어나고 복받친 설움이 느껴졌다. 벌개진 할머니의 눈을 마주보며 뼈만 남은 손을 잡고 있자니 코가 메워졌다. 다섯 할머니의 취재를 마무리하는 단계라 이제 웬만한 증언엔 울지 않을 자신이 있었건만, 92살 노인의 회한에 가슴이 무너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리멤버 허(Remember Her)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북코리아)의 저자 권주리애(55) 북코리아 대표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마음속 분노가 커진다”며 “거대한 일본이라는 벽 앞에 머리를 찍는 느낌이지만, 이분들의 아픔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여성인권운동가’로서의 삶에 초점
‘리멤버 허’ 시리즈는 김복동·이옥선·이용수·강일출·길원옥 등 피해 할머니 5명의 삶을 기록한 5권의 책이다. 전기작가로 활동하는 권 대표가 할머니들의 인터뷰 내용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자료·증언집 등을 바탕으로 썼다. 위안부 진상규명과 인권운동을 하는 ‘여성인권운동가’로서 할머니들의 모습을 강조했다. 책의 절반가량은 할머니들과 관련된 사진으로 채웠고, 각 책의 제목은 피해자 할머니들이 직접 쓴 손글씨다.
“5명의 할머니는 스스로를 ‘위안부’라 말하지 않고 ‘여성인권운동가’라고 칭한다. 모두 90세 이상의 초고령이셔서 인터뷰를 하는 것이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로 탄압받던 고통스런 시절의 회상을 거부하신 분도 계셨다. 책은 할머니들께 드리는 작은 선물이다.”
다섯 분의 할머니를 취재하고 원고를 쓰는 1년간 권 대표는 밤마다 악몽을 꿨다. 비행기의 폭격을 피해 밀림으로 도망다니거나 찢어진 천막 지붕 틈으로 밤하늘의 별을 헤며 울다가 깨어났다. 어느날 꿈속에선 문틈으로 길게 줄 선 누런 군복을 입은 군인들을 절망의 눈으로 쳐다보며 까무러치기도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나라의 명령에 의해서 끌려갔다. 딸만 넷이 있으니 넷째딸인 할머니가 끌려간거다. 인도네시아와 자바, 말레이시아 등 7개 나라의 일본군 위안소에 끌려다니며 모진 고초를 겪었다. 김 할머니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많이 울었다. 할머니가 세상에 진절머리가 나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 그래도 다시 태어난다면 공부 많이 해서 없는 사람 돕고 싶다는 말에 눈물이 났다.”
△“가슴 아픈 역사 다시는 없어야”
꽃다운 나이에 끌려갔다 온 이용수(90) 할머니의 이야기도 잊지 못한다. 10대 중반에 끌려갔던 할머니는 돌아와서도 20살이 채 되지 않은 꽃다운 나이의 소녀였다. 할머니는 2007년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일본군의 만행에 대해 증언했고, 이 내용은 영화 ‘아이 캔 스피크’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지금도 밤에 혼자 잠을 못 주무신다. 인터뷰 간 날에 할머니가 ‘오늘은 누구랑 자지?’라고 묻길래 내가 같이 잔다고 손을 들었다. 위안부에 끌려갔다온 직후 동네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을 한장 주셨는데 너무 예쁘시더라. 그때 할머니 나이가 18살이었다.”
영화 ‘귀향’의 모티브가 된 강일출(90) 할머니의 일화는 더 가슴이 아프다. 위안소에서도 제일 어린 나이였던 강 할머니는 말라리아 병에 걸려 집단으로 죽임을 당할 위기를 넘겼다. “강 할머니를 끌고가는 군인이 ‘너무 어린것을 데려왔다’며 자기들끼리도 울었다고 하더라. 할머니는 우리가 약소국가이기 때문에 이런일을 당했지만, 이런 가슴 아픈 역사는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달 최덕례 할머니가 97세를 일기로 별세하면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28명으로 줄었다. “우리 모두는 할머니께 빚을 졌다. 이분들을 만나면서 스스로 반성도 많이 했다. 앞으로도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할머니의 이야기를 알리는 책들이 더 많이 나오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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