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리코르디 아카이브’(Ricordi Archive)는 세계적 음악 출판사 리코르디가 보유한 오페라와 음악 관련 자료·기록물들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지난 겨울 이곳을 탐방한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상명대 초빙교수)가 세 차례에 걸친 칼럼을 통해 이탈리아 오페라가 남긴 위대한 유산의 정수를 소개한다.<편집자주>
오페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리코르디(Ricordi)라는 이름을 들어본 기억이 있을지 모른다. 근대 이탈리아 오페라 역사에 있어 리코르디는 베르디나 푸치니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코르디는 주로 고전 음악과 오페라 악보를 펴내는 출판사의 이름이며 창업자의 성씨이기도 하다.
리코르디 가문은 4대 이상 이탈리아에서 악보 출판업에 종사하며 회사를 오페라에 관한 한 독보적 권위를 가진 글로벌한 출판사로 성장시켰다. 또한 1919년 전문 경영인을 영입할 때까지 100여년 이상 오직 가족 경영만을 해온 특별한 회사로 알려져 있다.
1808년 밀라노에 리코르디 출판사를 설립한 조반니 리코르디(1785~1853)는 본래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오케스트라의 제1바이올린 연주자로서 이탈리아와 독일 근방으로 연주를 다니던 그는 라이프치히에서서 악보 제판 기술을 배워 출판사를 차렸다. 프랑스 혁명 이후 시작된 유럽의 1800년대는 정치뿐 아니라 예술 부문에서도 많은 변화가 이뤄진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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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당시 밀라노 라 스칼라 오페라극장 옆에 있던 리코르디 출판사 모습./사진=손수연 오페라 평론가 |
오페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리코르디(Ricordi)라는 이름을 들어본 기억이 있을지 모른다. 근대 이탈리아 오페라 역사에 있어 리코르디는 베르디나 푸치니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코르디는 주로 고전 음악과 오페라 악보를 펴내는 출판사의 이름이며 창업자의 성씨이기도 하다.
리코르디 가문은 4대 이상 이탈리아에서 악보 출판업에 종사하며 회사를 오페라에 관한 한 독보적 권위를 가진 글로벌한 출판사로 성장시켰다. 또한 1919년 전문 경영인을 영입할 때까지 100여년 이상 오직 가족 경영만을 해온 특별한 회사로 알려져 있다.
1808년 밀라노에 리코르디 출판사를 설립한 조반니 리코르디(1785~1853)는 본래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오케스트라의 제1바이올린 연주자로서 이탈리아와 독일 근방으로 연주를 다니던 그는 라이프치히에서서 악보 제판 기술을 배워 출판사를 차렸다. 프랑스 혁명 이후 시작된 유럽의 1800년대는 정치뿐 아니라 예술 부문에서도 많은 변화가 이뤄진 시기였다.
그중에서도 음악 분야에서는 악보 제판 기술의 발달이 혁신적인 사건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신동으로 활약하다 요절한 모차르트와 대기만성형 작곡가 베토벤은 이 변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작곡가들이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나이 차이가 16살에 불과하지만 활동시기가 상당히 달랐다.
모차르트 시대에는 미처 발달하지 못했던 악보 출판업이 베토벤 시대에는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오늘날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남겨진 악보의 보존과 정리에 있어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찍이 활동하며 베토벤보다 엄청난 수의 작품을 남긴 모차르트의 악보를 찾는 일이 훨씬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모차르트가 새로운 악보 제판 기술의 발명 이전에 활동한 작곡가이기 때문이다. 1796년 독일인 제너펠더가 석판인쇄술을 발명한 이래, 이 기술은 미술 뿐 아니라 출판업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제는 귀한 악보들의 대량 공급이 가능해지면서 음악관련 산업도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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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리코르디 출판사 사진 원본(20세기 초반)./제공=리코르디 아카이브 |
조반니 리코르디는 이런 변화에 주목한 연주자였다. 시간의 예술인 음악을 기록으로 남겨 언제든 같은 형태로 재현이 가능하게 만든 악보 제판 기술은 훗날 녹음기를 통한 음악 재생 기술의 발명만큼이나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는 유명 음악가가 작곡한 악보의 효용과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을 정식으로 출판하기 위해 출판사를 설립한 것이다.
‘카사 리코르디’(Casa Ricordi, ‘Casa’는 이탈리아어로 ‘집’이라는 뜻으로 이 출판사를 통칭한다)는 음악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특히 오페라에 집중했다. 1825년 이탈리아 오페라의 중심이었던 밀라노 라 스칼라 오페라극장의 아카이브를 인수한 리코르디는 라 스칼라 오페라극장의 모든 악보를 출판했다. 이후 리코르디는 당시 오페라계를 주름잡던 벨칸토 오페라 작곡가 로시니와 도니제티, 벨리니 등의 악보를 출판하는 등 이탈리아 오페라 악보 출판에 있어 선도적 위치를 점하며 성장해 나갔다.
카사 리코르디는 1839년 또 한 번 역사적인 전기를 맞게 되는데, 바로 밀라노에 진출한 신예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와의 계약이었다. 북부 이탈리아의 시골 부세토 출신의 베르디는 이 해에 라 스칼라 오페라극장에서 ‘오베르토, 산 보니파초 백작’(L’Oberto, Conte di San Bonifacio)을 공연하며 밀라노에 데뷔했다. 카사 리코르디는 베르디의 가능성을 재빨리 알아보고 그의 첫 오페라의 악보 출판을 위한 계약을 추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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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가타 빌라 정원에서 휴식 중인 주세페 베르디의 사진 원본(19세기 후반)./제공=리코르디 아카이브 |
첫 계약은 설립자인 조반니 리코르디와 이뤄졌지만 베르디는 주로 1853년에 카사 리코르디를 물려받은 조반니의 아들 티토 리코르디와 함께 일했다. 또한 티토의 아들 줄리오 리코르디와도 일하며, 자신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오페라의 거장 중 하나로, 카사 리코르디는 밀라노에서 더 나아가 세계적인 음악 출판사로 자리매김하는데 동반자가 되었다. 현재 리코르디는 베르디의 전체 28개 오페라 가운데 작곡가가 손으로 직접 쓴 23개의 오페라 악보를 보유하고 있다.
카사 리코르디가 당대 주요한 문화산업이었던 오페라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베르디에서 푸치니로 이어지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적자(嫡子)들과 계약을 맺은 것에 있었다. 카사 리코르디는 이들 작품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확보했으며 작곡가들과 꾸준한 교류를 통해 일반적인 비즈니스 이상의 관계를 형성했다.
카사 리코르디는 1884년, 젊은 푸치니와 그의 첫 오페라 ‘르 빌리’(Le Villi)로 첫 단추를 꿴 이래 1924년 사망할 때까지 기나긴 협력을 이어나갔다. 리코르디는 역시 오페라 ‘라 론디네’( La Rondine)를 제외한 푸치니의 자필 악보 전부를 소유하고 있다. 첫 작품이 초연될 당시 푸치니는 약관의 젊은이였고, 심지어 첫 작품 ‘르 빌리’는 리코르디의 경쟁 출판사인 손초뇨(Sonzogno)출판사의 현상공모에서 떨어진 낙선작이었다. 할아버지 조반니가 베르디를 발굴한 것처럼, 줄리오는 가난한 청년 푸치니의 빛나는 재능을 알아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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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레 델 라고 별장에 있는 작업실의 지아코모 푸치니 사진 원본(1924)./제공=리코르디 아카이브 |
이처럼 카사 리코르디는 이러한 무명의 젊은 작곡가를 발굴하고 후원하는 일을 꾸준히 지속했다. 후원과 더불어 좋은 소재나 공연을 소개하는 등 작곡의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안정된 창작 활동을 하게 했다. 또한 새로운 오페라와 공연의 기획자 겸 주최자였고 작곡가와 지휘자, 대본가, 연주자 등 오페라 관련 모든 종사자들의 중재자 겸 대리인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작업들은 리코르디를 단순한 악보 출판사에 머무르지 않고 이탈리아 문화 산업계에 전방위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독보적 문화 권력이 되도록 만들어 주었다.
베르디에 이어 푸치니가 오페라 작곡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동안, 카사 리코르디도 그 지평을 점점 넓혀갔다. 로마나 나폴리 등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에 진출한 뒤 나아가 런던과 파리, 미국 뉴욕에까지 지점을 내고 영역을 확장했다. 이 무렵 리코르디는 악보 출판 뿐 아니라 오페라와 관련된 잡지까지 창간했다. 그 잡지는 당시 공연되던 오페라와 관련한 자세한 정보, 광고가 함께 실렸는데 상당한 인기를 끌어, 문화산업으로서 오페라의 위상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승승장구하던 카사 리코르디도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많은 난관을 마주한다. 경영상의 어려움은 물론이고, 큰 폭격으로 밀라노의 본사가 파괴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놀라운 것은 카사 리코르디가 백 여 년 간 보유하고 있던 수많은 기록과 악보, 자료들은 대부분 무사히 남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오늘날 그 자료들은 리코르디 아카이브(Ricordi Archive)를 통해 인류의 위대한 유산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 상명대 초빙교수(yonu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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