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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반한 한국 (61) 시미즈 히로유키의 홍대 정착기

중앙일보 나원정.신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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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밴드 동네 홍대에 빠졌어요… 아예 카페 열고 눌러앉았죠
홍대 거리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느낌’이 있다. 인디정신이 요동치는 공연장과 개성 뚜렷한 사람들, 거리에서 문득 마주친 벽화에서마저 그 강렬한 느낌이 묻어난다. 일본인인 내가 홍대 거리에 뿌리 내린 이유이기도 하다

홍대 거리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느낌’이 있다. 인디정신이 요동치는 공연장과 개성 뚜렷한 사람들, 거리에서 문득 마주친 벽화에서마저 그 강렬한 느낌이 묻어난다. 일본인인 내가 홍대 거리에 뿌리 내린 이유이기도 하다


홍대 거리의 공기에 반하다

내가 처음 홍대 거리를 밟은 건 2005년 가을이다. 한창 밴드음악에 심취해 있던 때, 마침 새로 사귄 한국인 친구가 나를 서울로 초대했고 한국의 밴드 문화가 궁금했던 나는 제일 먼저 라이브하우스가 밀집한 홍대 거리로 향했다. 1989년과 2000년 서울을 방문한 적은 있지만 홍대는 이때 처음 가봤다.

그날은 ‘사운드데이’였다. 티켓 한 장으로 홍대 일대의 여러 공연장에 입장할 수 있는 날이었다. 사운드데이는 없어진 지 오래다. 하지만 그날 만난 한국 밴드의 열연은 정말 굉장했다. 나는 한껏 유쾌해진 채로 ‘K’라는 바로 향했다. 주인이 일본음악 애호가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K는 구석진 골목에 있었다. 어두운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반가운 사운드가 귓가를 때렸다. 대학 시절 내가 즐겨 듣던 일본 인디음악이었다. 한국에도 나와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 이가 있구나. 마음의 거리감이 슬쩍 줄어들었다.

K에는 일본어를 하는 점원이 많았다. 다들 일본음악뿐 아니라 한국 최신 인디음악에도 해박했다. 나한테도 허물없이 대해줘서 서울 여행 기간 나는 거의 매일 밤 K에 들렀다. 인근 가게 주인이며 인디 뮤지션을 알게 된 곳도 K였다. K에서 사귄 DJ 친구 덕분에 영업이 끝난 클럽에서 밤새 실컷 춤춘 적도 있다. 그렇게 나는 ‘이방인’이라는 꼬리표를 조금씩 지워갔다.

이듬해 여름 나는 한국에서 어학연수를 하기로 결심했다. 이화여대 한국어 강좌를 듣기로 했다. 강의 시기도 얼추 맞고 무엇보다 홍대와 가까웠기 때문이다. 솔직히 여대에서의 캠퍼스 라이프도 궁금했고….

낮에는 착실히 한국어를 공부하고 밤이면 홍대 거리를 쏘다녔다. 이제는 활동을 중단한 ‘피들밤비’나 ‘그림자 궁전’ 같은 밴드를 그때 참 좋아했다. 딱히 ‘한국적인 스타일’을 표방한 것도 아닌데 그들의 음악은 어딘가 한국적인 멋을 풍겼다. 개성 강한 밴드와 라이브하우스를 찾아 나는 마치 하이에나처럼 홍대 거리를 헤맸다. 그러는 사이 친구도 늘었다. 그만큼 더 홍대 거리에 정이 들었다.

1 2년 전 홍대 인근에 문을 연 ‘아메노히커피점’. 아내와 둘이서 꾸려나가고 있다. 2 커피숍에서는 홍대에서 활동하는 인디 뮤지션의 음반도 취급한다.

1 2년 전 홍대 인근에 문을 연 ‘아메노히커피점’. 아내와 둘이서 꾸려나가고 있다. 2 커피숍에서는 홍대에서 활동하는 인디 뮤지션의 음반도 취급한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장소

홍대 거리는 ‘느낌’이 있었다. 돈벌이가 안 돼도 하고 싶은 음악을 고집하고, 작지만 성격이 뚜렷한 가게를 꾸리는 사람이 모여 들었다. 그런 사람은 서로 알아보는 법이어서 새로 사귄 친구가 원래 친한 친구의 친구인 경우가 다반사였다. 짧은 길을 걷는 동안에도 연방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할 일이 잦았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딱 좋은 크기의 동네이기에 느낄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이었다.


최근 들어 홍대 거리는 많이 달라졌다. 땅값이 오르면서 홍대 앞 명물로 불리던 작은 가게는 변두리로 쫓겨났다. 인디음악을 연주하는 공연장도 눈에 띄게 줄었다. 대자본을 앞세운 체인점만 부지기수로 늘고 있다. 안타까운 변화다.

그래도 아직 한국에서 인디 문화의 중심지로 홍대 거리를 대신할 만한 곳은 꼽기 힘들다. 인디밴드를 비롯해 자기만의 흥미로운 작업을 꿋꿋이 꾸려나가는 많은 이가 여전히 홍대 거리에 뿌리를 내리는 까닭이다.

그리고 지난 2010년, 나도 그중 한 명이 됐다. 여러 한국 친구의 도움으로 홍대 인근에 카페를 열게 됐다. 일본풍 커피숍을 목표로 했지만 일본음악만 틀지는 않는다. 자그마한 진열대를 마련해 한국 인디밴드의 음반을 팔기도 하고 라이브 공연도 연다. 이따금 카페에 들른 일본 손님이 한국 뮤지션의 음반을 사가면 내 일마냥 기쁘다.

처음 홍대 거리에 왔을 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방인이었다. 그런데 홍대 거리의 수많은 사람이 나를 그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줬고, 결국 나는 여기에 뿌리를 내렸다. 내 가게도 그들과 새로이 이 거리를 찾을 누군가를 서로 이어줄 수 있는 공간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지금 나의 가장 간절한 소망이다.

정리=나원정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중앙일보·한국방문의해위원회 공동 기획

시미즈 히로유키

1976년 일본 출생. 학창 시절 중국·동남아시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인도·스리랑카·파키스탄·터키 등 세계 각 곳을 누볐다. 대학 졸업 후 출판사에서 잠시 근무했으나 2005년 홍대 거리에 반해 직장을 그만두고 이듬해 7월부터 이화여대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한국 월간지 ‘페이퍼’와 일본의 여러 잡지·여행책자에 한국 관련 글을 썼다. 2010년 11월 홍대 인근에 ‘아메노히커피점’을 열어 아내와 함께 열심히 꾸려가는 중이다. ‘아메노히(雨乃日)’란 ‘비 오는 날’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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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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