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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전학자의 브랜드 인문학] (28) 보이지 않지만 ‘또 하나의 세계’…새로운 플랫폼에 눈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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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브랜드는 플랫폼이다. 플랫폼은 목적지와 여행객을 접속시키는 통로. 새로운 접속을 위해서는 또 다른 플랫폼이 필요하다. 아마존은 기존의 상거래를 벗어나 문자의 디지털화, 클라우드웹 서비스, 공중 배송 서비스를 위한 새로운 플랫폼을 제시한다.

■ 접속, 소유의 새로운 개념

‘접속’이 대세가 되었다. 제러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에 따르면 접속은 소유의 새로운 개념. 수익은 접속으로부터 생긴다. 요즘 이 말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예가 ‘검색엔진’이다. 검색엔진의 핵심이 바로 접속. 검색엔진은 정보를 얻고자 하는 특정 웹페이지로 접속시킬 뿐 그 웹페이지의 저작권을 소유하지는 않았다. 더 많은 정보는 더 많은 검색을 유발하고, 더 많은 검색은 더 많은 광고를 노출시켜 수익을 창출한다. 사랑도 일종의 접속이라 상상해 보자.

“사랑이란 돌에 새긴 최초의 문자보다 사뭇 지우기 쉬운 문자 메시지 우리가 문자로 사랑을 하기엔 너무나 가벼워 0과 1로 전부 표현하기 네가 그리워 가만, 화성인의 수신기에 접속을 시도하려는 수백만 헤르츠 전파가 우주의 극점에 닿지 못하고 블랙홀에서 길을 잃는다”(윤석정, ‘문자 메시지에 대하여’, <오페라 미용실>에서)

0과 1의 이진수로 표현되는 디지털 문자는 전파를 타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접속된다. 화자에게 고대인들의 사랑은 돌에 새겨졌기에 묵직했을 것이지만 0과 1의 조합에 불과한 현대인들의 디지털 사랑은 “사뭇 지우기 쉬운 문자 메시지”에 불과하다. 그대를 향한 나의 사랑은 “문자로 사랑을 하기엔 너무나 가볍”다. 아무리 문자를 주고받아도 “0과 1로 전부 표현하기”에는 “네가 그리워”서 이진수 외에 또 다른 언어로 접속하려 든다. 그 언어는 ‘화성인의 수신기’에나 잡힐 수 있는 화성어였지만 그 접속은 “우주의 극점”인 내 사랑 그대에게 “닿지 못하고 블랙홀에서 길을 잃는다”. 접속의 도구가 가벼운 만큼 실패한 접속은 수많은 디지털 신호가 되어 우주상에 떠돌고 있다.

1995년 7월 아내와 단 한 명의 엔지니어와 함께 온라인서점 아마존을 시작한 제프 베조스는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라는 모토 아래 컴퓨터, 장난감, 가구, 의류 등 소비재와 관련된 거의 모든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베조스는 단지 제품을 파는 것에 역점을 둔 게 아니라 수많은 ‘접속을 시도하려는 전파’가 되었다.

■ 플랫폼은 아케이드, 경계공간, 탈주선이 된다

타 지역에 갈 일이 생기면 광명역을 찾는다. 그 역에서 부산 가는 사람도 있고 광주 가는 사람도 볼 수 있다. 같은 광명역이라도 이들은 동일한 곳에서 승차하지 않는다. ‘4’라고 쓰인 곳은 호남선, ‘2’라고 붙여진 곳은 경부선. 이곳을 플랫폼이라 한다. 역이 모든 기차 여행자들의 집결지라면, 플랫폼은 목적지와 여행객을 접속시키는 통로다. 그때그때의 목적지와 여행객을 연결하는 통로가 이제는 모든 디지털 유목민과 서로의 필요를 접속하는 통로가 되었다.


인기 많던 그 많은 기업은 어디 갔나? 시장의 규칙이 바뀌고 있다. 최근 급부상하는 기업들은 플랫폼, 그러니까 접속의 통로를 만든다. 온라인을 플랫폼의 문제로 이해한다는 것은 접속의 장, 소통하고 공유하는 마당으로 본다는 것. 그 마당은 발터 베냐민 식으로 본다면 ‘아케이드’가 되고, 조르조 아감벤의 ‘경계공간’ 내지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탈주선(linge de fuite)’이 된다.

특히 <천 개의 고원>의 저자 들뢰즈와 가타리는 탈주선을 묘사하는 열두 번째 고원에서 유목민의 주인공으로 칭기즈 칸을 등장시킨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그가 죽은 1227년이 제목으로 잡혔다. 탈주선은 닫힌 경계선이 아닌 열린 공간을 만들며 끊임없이 접속하고 있다. 유목민에게는 ‘성을 쌓는 자 망하고, 길을 뚫는 자 흥한다’는 모토만 있을 뿐. 그들은 길을 만들고 플랫폼에 기대서서 물건을 이동시키며 수수료를 얻었던 것이다.

지금은 플랫폼의 시대. 오늘날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온라인, 그러니까 스마트폰, 컴퓨터, 태블릿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다.


■ 아마존 웹 서비스, 수천 개의 인터넷 기업을 탄생시키다

접속의 통로이자 공간인 플랫폼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더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던 제프 베조스는 온라인서점의 주인치고는 기상천외한 사업을 추진했다. 그는 새로운 플랫폼이 웹이라는 신념을 가졌고, 플랫폼을 제공하고 원하는 모든 자들이 접속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실이 아마존 웹 서비스(Amazon Web Services·AWS). 저장 공간, 색인 작업, 매매 공간 구축과 같은 기본 플랫폼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AWS는 수도, 전기, 가스처럼 웹 서비스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이 사업은 클라우드라는 온라인 저장의 신개념을 소개했고, 이것은 신규 판매 업체들에 창업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도전할 수 있는 자극제가 되었다.

저렴하면서 접속이 용이한 아마존 웹 서비스는 수천 개의 인터넷 신규 기업들을 탄생시켰다. 또한 금융, 정유, 천연가스, 건강, 과학 같은 분야에 온라인 저장 공간을 활용케 하였다. 현재 핀터레스트와 인스타그램 같은 신규 업체뿐만 아니라 넷플릭스, 심지어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중앙정보국(CIA) 같은 미국 정부 기관들도 아마존의 웹 서비스에서 플랫폼을 빌려 운영되고 있다.


■ 원클릭, 접속의 핵심은 용이성

<천 개의 고원>에서 들뢰즈와 가타리는 리좀(Rhyzome)이라는 땅속 줄기식물을 근거로 접속의 개념을 설명한다. 접속하는 것들은 이질적인 것들, 팔다리가 따로 노는 다양체들인데, 이들의 특징은 절단당해도 끝내 줄기식물이 된다는 것.

“리좀은 어느 한 지점에서 끊어지거나 산산이 부서지더라도 예전의 선들 중의 하나나 또는 새로운 선들 위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천 개의 고원>에서)

우리는 개미 떼가 만든 선을 절단할 수 없다. 그 선 중간이 끊어지더라도 다시 이어지거나 다른 방향으로 선들이 만들어진다. 이 개미 떼를 리좀의 줄기라 친다면 줄기는 절단되더라도 다시 줄기를 형성한다. 접속이란 네트워크에서 끊어져 소외되더라도 거기서 또 다른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리좀이다.

우리는 온라인 주문을 할 때 한 단계만 실수해도 처음부터 주문을 다시 진행하곤 한다. 주문하려는 품목이 많을수록 구매 과정이 점점 더 복잡해지다 보니 주문 사이트에 접속하는 일도 영 짜증이 난다.

온전한 플랫폼이 갖춰졌다면 이런 일은 없다. 접속이 용이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용자는 각자 자신의 취향에 따라 제품, 정보, 음향, 영상을 쉽게 만들고, 소비하며, 공유하길 원한다. 좀 더 간편하고 쉽게, 자신의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접속하기를 원한다.

1999년 가을에 아마존은 ‘원클릭’이라는 이름을 상표 등록했다. 이것은 사용자의 신용카드 정보와 주로 쓰는 배송지 주소를 미리 불러와, 고객이 물건을 주문할 때 단추 하나만 누르는 시스템이었다.

■ 문자의 디지털화

제프 베조스는 온라인서점을 열면서 접속을 쉽게 하려는 또 하나의 계획을 세운다. 이른바 ‘알렉산드리아 프로젝트’다. 이것은 도서목록만이 아니라 책의 콘텐츠까지 제공하겠다는 야심이었는데, ‘문자의 디지털화’를 전제로 한다. 2003년 10월 ‘책 내용 검색’ 서비스가 시작됐다.

아마존이 문자의 디지털화에 박차를 가하게 된 시점은 2004년 애플이 ‘음악의 디지털화’를 주도하면서부터다. 그해 아마존 연매출의 74%는 종이책, CD나 DVD로 된 음악과 영화였다. 음악의 디지털화가 급물살을 타게 되면 아마존의 매출에 타격이 있는 것은 빤한 일. 베조스는 애플이 디지털 음악 사업을 선도한 것처럼 아마존도 도서의 디지털화를 선도해야 한다는 결심을 다졌다. 출판사들은 처음에 온라인상의 저작권 침해가 급증할 것을 걱정했지만 자신들의 도서가 온라인에서 검색되면 판매량이 늘어난다는 점에 관심을 보였다. 드디어 출판사들이 아마존의 전자책 사업에 적극 협조하게 된 것이다.

이후 아마존은 검색 알고리즘을 통해 검색과 색인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도서 검색자들이 저작권을 침해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아마존은 도서의 일부 내용만 제공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 탈주하는 배송 시스템

“우리는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탈주의 선들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 그것은 개인적으로 도피하자는 것이 아니라, 파이프나 종기를 터뜨리듯 무엇인가가 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들을 막고자 하는 사회적 코드 아래서 그것들을 풀어헤침으로써 흐르게 하자는 것입니다.”(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천 개의 고원>에서)

들뢰즈 철학의 핵심인 ‘탈주’는 현실을 외면하는 도피나 도주가 아니라 새로운 것의 생성에 강조점이 있다. 새로운 리좀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닫힌 경계를 벗어나야만 한다.

2013년 12월 아마존은 1초당 300개까지 주문품이 늘어난 데다가 교통체증이 점점 심각해지자 전혀 새로운 도전을 한다. 미국 내에서 가장 신속한 배송 서비스를 위해 드론을 이용한 ‘프라임에어’를 4~5년 이내에 상용화하겠다는 것. 미국 전역의 아흔여섯 개 아마존 물류센터에 주문품이 모이면 그것을 드론이 소비자에게 30분 내로 전달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드론을 이용한 배송은 미국 정부로부터 아직 승인을 얻지 못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베조스는 또 한 번의 탈주를 시도한다. 미국의 영토를 벗어나 영국(시민항공청)에서 아마존의 드론 배송 실험 비행을 승인받은 것. 결국 영국에서 주문을 받은 지 13분 만에 아마존 프라임에어로 배송에 성공했다.

서두에 소개한 시를 아마존과 같은 탈주의 의미로 읽어 보자.

“빛의 속도로 너에게로 달려가는 전파가 지구를 헤맨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너에게로 보낸 문자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속도는 파장이 헤맨 시간과 비례한다 (……) 더러는 해저 심해어의 부레에서 오리무중이 된다 양철 지붕을 탁탁 쳐 대는 빗줄기처럼 한사코 버림받은 나에게로 넘쳐 버린다”(윤석정, ‘문자 메시지에 대하여’, <오페라 미용실>에서)

“너에게로 보낸 문자”는 왜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 것일까? 이진수 문자로 보냈다면 접속될 것이지만 “문자로 사랑을 하기엔 너무나 가벼워”서 디지털 문자를 외면하고 화성인의 문자를 만들었다. 화자는 “화성인의 수신기에 접속을” 시도하지만 실패하자 “블랙홀에서 길을 잃는다”. 그래서 “너에게로 보낸 문자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더러는 깊은 바닷속 물고기의 “부레에서 오리무중이” 되었고, 그대의 수신기에 접속을 실패한 나의 새로운 사랑의 언어는 “양철 지붕을 탁탁 쳐 대는 빗줄기처럼 한사코 버림받은 나에게로 넘쳐 버린다”.

아마존의 신개념 배송 전략은 헛된 시도였을까? 지구어가 아닌 새로운 언어로 시도한 접속은 영영 실패한 것일까? 당신의 사랑은 최고 절정인 “우주의 극점에 닿지 못”하였고 새로운 접속을 시도한 또 다른 진법의 “수백만 헤르츠 전파가” “길을 잃”었을지 몰라도, 그 맥놀이는 “블랙홀에서” “파장”을 일으키고 돌아오기를 반복할 것이다. 또 다른 언어로 ‘차이’ 나는 파장이 당신에게 ‘반복’해서 메아리쳐 온다. 하지만 ‘어라!’ 거기에 파장이 너울대는 공간인 플랫폼이 근사하게 만들어졌다. 아마존이 새로운 웹과 공중 배송 서비스를 시도한 것처럼.

그 옛날 동서양의 길을 뚫었던 유목민들이 “성을 쌓는 자 망하고 길을 뚫는 자 흥한다”고 외친 것처럼 아마존은 당신에게 명한다. ‘이질적인 것들에게 접속하라! 익숙한 곳을 탈주하라! 새로운 접속의 통로인 플랫폼을 만들라!’

탈주하면서 이리저리 떠돌던 당신도 제법 근사한 플랫폼을 하나 만들었다. 거기서 당신과 같은 처지의 나그네들이 행선지를 알게 되었고 그만큼 수월하게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당신의 탈주와 접속은 결코 헛되지 않다. 아마존의 끝없는 시도가 쓸모없지 않듯 말이다.

<김동훈 서양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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