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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망상? 터키 대통령의 ‘이스탄불 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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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마르마라해 연결…“내년부터 공사해 2023년 완공”
과거 오스만제국 ‘해협 통제권’ 되찾으려는 야심과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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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운하를 건설하겠다. 파나마도 수에즈도 비길 수 없는 엄청난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2011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당시 터키 총리(사진)는 6월 총선을 두 달 앞두고 이스탄불 운하 건설을 약속했다. 건국 100년을 맞는 2023년까지 공사를 끝내겠다면서 “터키는 위대하고 무모하며 장엄한 과업에 뛰어들 자격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진전이 없던 운하 사업이 본궤도에 오른다. 에르도안은 지난달 10일 세르비아 방문 중 “빠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부터 공사를 시작하겠다. 이스탄불 운하는 나의 꿈”이라고 말했다.

이스탄불 운하는 이스탄불 서쪽으로 길이 45~50㎞에 너비 50m 물길을 내 북쪽의 흑해와 남쪽의 마르마라해를 잇는다. 이스탄불을 지나는 기존의 자연 해로인 보스포루스 해협의 물동량이 과포화 상태여서 새 인공수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매년 선박 5만3000척이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하지만 물길의 굴곡과 해류 변화가 심해 항행이 쉽지 않다. 1953년부터 2002년까지 50년 동안 이 지역에서 460건의 선박 사고가 일어났다. 크고 작은 원유 유출 사고도 이어졌다.

에르도안 정부는 운하가 완성되면 안전을 이유로 보스포루스 해협의 항행을 제한하려고 한다. 지난 9월에도 아흐메트 아슬란 해양교통장관이 “생명과 문화 자산을 위협하는 보스포루스 해협 항행은 최소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탄불과 터키에 보스포루스를 돌려주겠다”는 발언에서 보듯, 에르도안의 이스탄불 운하 건설은 보스포루스 해협의 통제권을 완전히 찾겠다는 야심과 연결된다. 해협 통제권은 터키의 역사적 자존심과 직결된다. 오스만제국은 18세기 들어 쇠퇴하면서 보스포루스와 그 남쪽의 다르다넬스 해협 통제권을 상실했다. 1936년 터키가 제안하고 영국·프랑스·소련 등 9개국이 참여한 몽트뢰 조약으로 평화 시 각국 상선의 자유 항행을 보장하는 대신 군함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는 권리를 얻었지만, 이제는 이마저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 에르도안의 생각이다.

에르도안은 이스탄불 운하를 앞세워 민족감정을 자극했고, 선거에서 압승했다. 2011년 당시 프랑스의 국제 온라인 저널 메트로폴리틱은 “운하는 그의 정치 야망을 이루기 위한 도구였다”고 적었다.

그러나 터키가 이스탄불 운하를 앞세워 몽트뢰 조약을 개정해 민간 선박 항행까지 제한할 것을 요구한다고 해서 러시아 등 다른 조약국들이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2011년 에르도안이 운하 공사와 함께 보스포루스 해협의 항행 제한 계획을 알리자 러시아는 “국제법을 존중하라”며 즉각 반발했다. 블라디미르 이바노프스키 당시 이스탄불 주재 러시아 대사는 터키 일간 휴리예트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다른 관련 국가들의 입장은 몽트뢰 조약이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보스포루스 해협으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데 굳이 항행료를 물어가며 이스탄불 운하를 이용할 이유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에르도안이 말하지 않는 이스탄불 운하의 근본적인 한계가 여기에 있다. 기존 국제질서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 이스탄불 운하는 실익 없이 재정적·환경적 재앙만 낳는 짐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운하 공사 비용으로 100억달러를 예상하지만 전문가들은 그 몇 배가 들 거라고 말한다. 민·관 협력사업(PPP)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최소 수익을 보전해야 하는데, 운하 수요가 예상치를 충족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2004년 에르도안 집권 이후 터키 경제는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유지해왔지만 2011년 8.8% 성장 이후 기세가 꺾였다. 지난해에는 연간 5% 경제성장률을 이뤘지만 4분기에는 마이너스 1.8%로 뚝 떨어졌다. 중동 전문매체 알모니터는 “운하가 기대만큼 수익을 거두지 못하면 터키 재정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환경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크다. 전문가들은 흑해와 마르마라해가 인위적으로 연결되면 해류와 수온 변동 등으로 양편의 미묘한 생태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알모니터는 상대적으로 염도가 높은 흑해 바닷물이 마르마라해로 유입되면 이 지역 해양생태계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은 지난 19일 “과학자들은 운하가 완공되면 마르마라해의 황화수소 비율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한다”면서 “이스탄불이 썩은 달걀 냄새로 진동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에르도안 정부는 이스탄불 운하가 새 해양 교통 허브가 될 거라고 자신한다. 개발 붐을 일으켜 경제 성장을 견인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정부는 운하 건설 과정에서 채취한 골재로 마르마라해와 흑해에 인공섬 3개를 조성하고, 운하 주변에 신도시 2곳도 개발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폴리티코 등은 운하가 건설될 것으로 전망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이미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고 전했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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