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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생의 왜곡된 성관념, 조금만 알려줘도 확 바뀌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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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남페미’로 화제 최승범 강릉 명륜고 교사
남학생들에게 페미니즘을 가르치는 강릉 명륜고 국어교사 최승범씨가 2014년 가을 무렵 세종시 인근의 논을 배경으로 두 팔을 벌린 채 웃고 있다.  최승범씨 제공

남학생들에게 페미니즘을 가르치는 강릉 명륜고 국어교사 최승범씨가 2014년 가을 무렵 세종시 인근의 논을 배경으로 두 팔을 벌린 채 웃고 있다. 최승범씨 제공


최승범씨(33)는 남학생만 다니는 강릉 명륜고등학교 국어 교사다. 그가 담임을 맡은 학급에는 페미니즘 도서가 30여권 비치돼 있다. 최근 가장 인기가 많은 책은 섹스칼럼니스트 은하선씨의 <이기적 섹스>다.

최씨는 10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책을 읽은 한 학생이 감상문에서 ‘그동안 이성친구와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안줏거리처럼 남들에게 얘기했던 것을 반성한다’는 취지의 글을 썼다”며 “남학생들이 이제 여성을 육체로만 보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최씨는 지난달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성으로서 우리 사회의 성차별 문제를 깨닫게 된 과정을 진솔하게 담은 ‘나는 어쩌다 남페미(남성 페미니스트)가 되었나’라는 글을 올려 2000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는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큰 화제가 됐다.

그는 학교에서 페미니즘을 주제로 학생들과 함께한 활동도 종종 페이스북에 올려 주목을 받고 있다.

최씨는 수업에서 성평등·성차별 이슈를 종종 다룬다. 지난해는 저출산 사회를 주제로 연구수업을 했다. 학생들에게 ‘왜 남성 직장인들은 육아휴직을 못 쓸까’를 주제로 인터뷰를 해보라는 과제를 내줬다. 올해는 성평등 관점에서 본 <사씨남정기>를 주제로 공개수업을 했다. 처음에는 성차별이 존재하는지에 의문을 제기하던 학생들도 통계와 수치를 확인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고 했다.

그도 한때는 경쟁적 남성문화에 젖은 남학생이었다.


최씨는 “남학생 또래들 사이에는 ‘더 거칠고 상스럽게 말할수록 강하고 멋진 아이’라는 분위기가 퍼져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학생들은 잘못된 점을 조금만 알려주면 크게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아이들이 괜찮은 어른으로, 괜찮은 남성으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최씨가 2010년 교사가 된 이래 학생들에게 페미니즘을 얘기해온 이유다.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2013년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가 한강에 투신해 사망했을 때는 페이스북에 관련 글을 올렸다가 성 대표를 추종하던 남학생들과 언쟁이 붙었다. 학생들과 멀어졌고 그해 교원평가에서 최씨는 학생들로부터 ‘여자 편을 든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때의 충격으로 페미니즘 관련 발언을 자제하던 그가 다시 목소리를 내겠다고 결심한 것은 지난해 5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다.

그는 “사건 자체보다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지 말라’며 여성을 공격하는 일부 남성의 반응이 더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중학교 시절 그는 틱장애(자신도 모르게 신체 일부분을 빠르게 반복적으로 움직이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는 증상)를 겪었다. 심한 따돌림도 당했다. 그는 “그때 경험 덕분에 소수자의 입장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여성 차별을 상대적으로 민감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도 어쩌면 그 덕”이라고 했다. 늘 위축돼 있던 그를 보듬고 치료를 도와준 은사는 인생의 길잡이가 됐다. “그분 덕분에 제 삶이 바뀌었어요. ‘나도 나 같은 아이 하나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선생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학생들과 페미니즘에 대해 대화할 생각이다. “‘김치녀’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남자아이들에게 그 말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데에는 남자 선생님의 말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어요.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성 페미니스트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확신하게 됐습니다.”

<최미랑·심윤지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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