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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윤 |
숨진 이씨의 휴대전화 메모장에서는 ‘내가 당한 일을 인터넷에 띄워 알려 달라’는 글이 발견됐다. 온라인은 들끓었다. 누리꾼들은 즉각 안씨의 개인 홈페이지를 찾아내 그의 사진을 공개했다. 목숨까지 던진 여학생의 절규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안씨의 어머니와 아내, 자식의 사진도 순식간에 포털사이트를 장식했다. 포털에서는 안씨의 개인 홈페이지 접속을 차단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지금도 블로그 등에서는 안씨 가족의 사진을 쉽게 볼 수 있다. 안씨가 죗값을 치르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누리꾼들로부터 천형과 같은 ‘사이버 응징’을 당한 가족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사이버 공간에 ‘시민 보복’의 과욕이 넘친다. 마치 미국의 범죄영화 주인공인 ‘더티 해리’가 온라인에 부활한 것 같다. 해리 캘러한(클린트 이스트우드 분) 형사는 죄를 짓고 요리조리 피해가는 악당을 그냥 두지 않는다. 법에 따른 처벌은 안중에도 없다. 그는 학생들이 탄 스쿨버스를 납치한 범인을 쫓아가 매그넘44 권총을 겨누고 이렇게 말한다. “이건 지상 최강의 권총이야. 네 놈 머리통 따윈 깨끗이 날려버릴 수 있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처단이다. 그 총구에서 불을 뿜자 관객들은 통쾌해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이건 왜곡된 정의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사이버 스페이스에는 이런 뒤틀린 응징의 욕구가 넘친다. 각종 범죄 때마다 횡행하는 ‘신상 털기’가 자칭 ‘정의의 사도’들에 의해 자행된다. 이런 짓은 또 다른 인권 유린의 출발점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산부인과 우유주사(프로포폴) 사망 사건의 피해자 이름과 사진이 공개돼 가족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냈다.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 때는 무관한 학생이 피의자로 오인돼 실명과 개인 홈페이지 주소가 온라인에 퍼졌다. 잘못된 정보를 올린 누리꾼 7명은 명예훼손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다.
온라인은 늘 시끌벅적하다. 다양한 의견이 넘친다. 여기에서도 절제의 미덕은 지켜져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인터넷 실명제 위헌 판결로 악성 글을 막을 제동장치도 없어졌다. 남은 건 누리꾼들의 자정 노력밖에는 없다. 이런 기대는 점점 엷어지고 있다. 더티 해리는 악당을 처단한 뒤 경찰 배지를 호수에 던진다. 그의 얼굴에는 더러워서 경찰 못하겠다는 냉소가 넘쳐났다. 이런 냉소는 더 큰 폭력을 부를 뿐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파렴치범을 처단하겠다고 신상을 터는 건 또 다른 괴물을 키우는 범죄다.
김종윤 기자 yoo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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