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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코리아,선진국 문턱을 넘어라] (1) 외부의 문지방 ② 특허 뒤에 숨은 패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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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우리와 관계없는 회사까지도 삼성에 대한 견제가 커지고 있다. 못이 튀어 나오면 때리려는 원리다."

지난해 4월 21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으로 첫 출근을 하면서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이 회장은 애플이 삼성전자를 상대로 본격적인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삼성이 글로벌 기업들의 '공격 목표'가 되자 위기를 느끼고 이날부터 서초동으로 정기 출근하기 시작했다.

이 회장의 선견지명은 현실화됐다. 실제로 우리나라 간판스타급 기업들이 최근 몇 년 새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면서 전 세계에서 종횡무진하며 두각을 나타내자 우리 기업들을 견제하려는 글로벌 '터줏대감'들의 공세가 치열해지고 있는 것.

지난달 24일 미국 법원은 삼성과 미국 애플의 스마트폰 특허소송에서 삼성에 패소 판결했다. 이어 1주일 만인 31일에는 코오롱인더스트리가 미국 듀폰에 아라미드섬유 관련 특허 소송에서 패소했다. 연이은 국내 기업의 수난은 끝이 아니다. 포스코는 신일본제철과 전기기술강판 기술침해 관련 1조3000억원 규모의 특허소송을 벌이고 있다. LG전자는 오스람과, SK하이닉스는 램버스와, CJ는 화이자와 힘겨운 특허분쟁을 벌이고 있다.

12일 특허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국제 특허소송 건수는 2004년 37건에서 지난해 159건으로 7년 새 4.3배 이상 증가했다. 최근 7년 새 국내기업이 외국기업을 대상으로 제소한 사례는 165건이다. 반대로 외국기업이 국내기업에 제소한 사례는 726건이다. 우리 기업들이 제소한 것보다 4.4배 더 많다. 외국기업들의 공세가 심하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한 외국기업의 국적은 대부분 선진국이다. 미국 65%, 독일 13%, 대만 9.8%, 일본 7.8%, 스위스 3.9%순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세계적인 경제불황에도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는 한국기업을 질시한 선진국들의 '사다리 걷어차기'가 시작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최근 코오롱인더스트리와 듀폰 간 특허분쟁은 미국 특허 패권주의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아라미드섬유 시장은 현재 미국 듀폰과 일본 데이진이 전 세계 시장의 약 90%를 점유하고 있다. 코오롱은 겨우 10%를 점유하고 있다. 그러나 듀폰은 코오롱에 위기감을 느꼈다. 2009년 코오롱이 30년간 연구해 개발한 슈퍼섬유 '헤라크론'을 시장에 내놓자 듀폰은 코오롱을 상대로 영업비밀 침해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법원도 자국 기업의 위기에 공감했다. 지난달 31일 미국 버지니아 동부법원은 코오롱에 9억1990만달러(약 1조원)의 배상금과 20년 동안의 판매금지 처분을 내렸다. 업계 관계자는 "통상적인 판례로 볼 때 이 같은 조치는 가혹하다"며 "법원과 기업이 함께 만들어낸 자국기업 감싸기의 전형적인 예"라고 밝혔다.

현재 진행 중인 포스코와 신일본제철 간 특허소송도 최근 고부가가치 시장인 전기강판 사업분야 시장을 포스코에 뺏기지 않으려고 무리하게 선제공격을 한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지난해 포스코가 11%의 영업이익률을 낸 데 비해 신일본제철은 같은 기간 1%대 영업이익률을 보였다. 이런 위협감에다 최근 중국의 철강산업 진출로 저수익강종 분야에서 수익창출이 불가능해지자 고수익강종인 전기강판 시장을 특허로 지키려 했다는 분석이다. 현재 신일본제철은 자사가 유리한 판결을 받을 수 있는 미국과 일본 법원에만 특허침해 제소를 했다.

특허를 통한 선진국의 자국기업 감싸안기에 국내업체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미국의 글로벌 기업과 특허소송을 진행 중인 대기업 A사 관계자는 "예전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글로벌 기업들이 최근 우리나라 기업들을 '위협적인 경쟁상대'로 인식하고 있는 분위기"라며 "일부에서는 무리한 견제로 이들이 제기한 특허 또는 영업비밀 침해 혐의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나오는 등 한국기업을 견제하려는 외국기업의 무리한 소송과 악의적 사실 왜곡이 이어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의 국가별 특허소송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최근 1년 반 동안 우리나라는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소송을 많이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의 특허소송 인식과 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지식재산 연구 담당 손수정 박사는 "오랜 특허소송 경험과 노하우를 쌓은 미국, 독일에 비해 뒤늦게 특허 인식 및 인프라를 구축한 우리나라 기업들이 특허공격에 유독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의 약진이 두드러지면서 이를 견제하기 위해 공격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돼 우리도 관련 인력과 인프라 구축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포스코 관계자도 "글로벌 경쟁이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치열해지다 보니 보호무역주의가 힘을 받고 있다. 특허를 통한 경쟁업체 견제 역시 이의 연장선 위에 있는 현상이라고 본다"며 "선진국의 강력한 기술보호주의에 대응하는 정부 차원의 전략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앞으로도 계속될 세계 각국의 특허공세를 넘어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 우리 기업들의 성장전략을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까지 국내기업들이 성장동력으로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전략보다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을 추구했기 때문에 특허소송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고 이 점을 글로벌 기업들이 파고들어 다른 국가에 비해 우리나라가 특허소송에 특히 많이 휘말리고 있다는 것이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이황 교수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갓 진입한 선수와 같다"며 "혁신모델을 개발해 성장하기보다 기존 특허를 부분개량해 출원 수를 늘리고 패스트 팔로어 전략을 바탕으로 양적 성장에 집중해온 탓에 메인 특허를 갖고 있는 선진국의 견제구 대상이 된 것도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러한 특허를 통한 견제현상 또한 선진국으로 넘어가기 위한 통과의례로 봐야 한다는 전망도 제시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와 기업들은 특허소송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당분간 비싼 수업료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그러나 이를 극복하면 우리나라는 창조성 있는 선도기업을 갖춘 선진국 반열에 오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문턱을 넘지 못하면 선진국을 눈앞에 두고 주저앉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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