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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연령 53세 무용수들이 펼친 충격의 무대

중앙일보 손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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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국내에 첫선 보인 피나 바우쉬 유작 '스위트 맘보'
한국어로 말 걸고 머리채 잡힌 채 뛰어 다니고
무용수 개개인의 몸짓으로 이뤄진 장르 불명의 공연
피나 바우쉬 탄츠테아터의 '스위트 맘보' 공연 장면. 무용수 줄리 섀나한이 두 남성 무용수에 의해 떠밀려 가고 있다. [사진 우술라 카우프만]

피나 바우쉬 탄츠테아터의 '스위트 맘보' 공연 장면. 무용수 줄리 섀나한이 두 남성 무용수에 의해 떠밀려 가고 있다. [사진 우술라 카우프만]


지난 24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피나 바우쉬(Pina Bauschㆍ1940~2009) 무용단 ‘탄츠테아터 부퍼탈(Tanztheater Wuppertal)’의 ‘스위트 맘보’가 한국 관객에 첫선을 보였다. 27일까지 나흘간 이어지는 공연은 진즉에 매진이 된 터였다. 24일 오후 8시 직전 1000명이 넘는 관객으로 가득한 객석에는 미묘한 긴장감마저 흘렀다.

마침내 조명이 들어왔다. 무대는 휑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무대 뒤편에서 거대한 흰색 천이 벽면을 덮은 채 흩날일 뿐이었다. 무대는 공연 내내 거의 비어 있었다.

흑인 무용수 레지나 애드벤토의 연기 장면. 거대한 흰색 장막 속에서 춤을 춘다. [사진 우종덕]

흑인 무용수 레지나 애드벤토의 연기 장면. 거대한 흰색 장막 속에서 춤을 춘다. [사진 우종덕]


하얀 장막을 헤치고 무용수가 등장했다. 흑인 여성 무용수 레지나 애드벤토(Regina Advento)였다. 롱 원피스 차림의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놀랍게도 한국말이었다.

“나는 레지나 애드벤토이에요. 레지나, 레지나…. 잊지 말아요. 레지나.”

‘스위트 맘보’에는 모두 10명의 무용수가 출연했다. 레지나처럼 롱 원피스 차림의 여성이 주도적으로 움직였고, 검은 정장 차림의 남성은 여성의 동작을 돕거나 막았다. 여성이 7명이었고 남성은 3명이었다.

무용수 10명 중에서 레지나가 가장 무용수처럼 움직였다. 무언가를 표현하려는 동작은 절도가 있었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기억에 남는 건 그녀의 춤이 아니었다. 잊지 말아달라는 그녀의 이름, 레지나였다. 1965년 독일 출생인 그녀는 1993년부터 탄츠테아터 단원으로 활동 중이었다.


레지나가 퇴장하자 무용수가 차례로 등장했다. 무용수마다 표현하려는 메시지가 있는 것 같았지만,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무용수와 무용수의 동작이 연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독립된 이야기가 묶여 하나의 서사를 이루는 옴니버스 구성이 연상됐지만, 무용수의 동작은 파편처럼 흩어졌다.

가장 눈에 띈 건 무용수의 나이였다. 무대에 오른 탄츠테아터 단원은 대부분 나이가 들어 보였다. 역할이 미미했던 여성 무용수 브리나 오마라(Breanna O'mara· 1989년 미국 출생)를 제외한 9명 모두 1970년대 이전 출생이었다. 무용수 10명의 평균 연령은 53세였고, 브리나를 제외한 9명의 평균 연령은 55세였다. 비쩍 마른 여성 무용수들도 있었지만 몸집이 있는 여성 무용수도 있었다. 늙고 뚱뚱한 여성 무용수라. 탄츠테아터는 첫인상부터 편견에서 벗어나 있었다.

62세 무용수 나자렛 파나데로의 연기 장면. 무용수보다는 배우에 가까웠다. [사진 LG아트센터]

62세 무용수 나자렛 파나데로의 연기 장면. 무용수보다는 배우에 가까웠다. [사진 LG아트센터]


나자렛 파나데로(Nazareth Panadero)의 외모가 가장 두드러졌다. 세계적인 무용단의 대표 단원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올해로 예순두 살인 나자렛은 영락없는 중년 여성이었다(1955년 스페인 출생). 다른 무용수보다 키도 작았고 아랫배도 불룩했다. 팔을 들어올리면 팔에서 살이 출렁거렸다. 나자렛은 무용수보다 배우에 가까웠다. 코믹한 분장으로 나타나 코믹한 대사를 했다. 잔뜩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춤을 추기도 했다. 나자렛의 동작에서 애절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아름답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나자렛은 1979년부터 탄츠테아터에서 활동 중이었다.


줄리 섀나한의 연기 장면. 줄리는 '스위트 맘보'에서 가장 많이 등장했다. [사진 올리버 룩]

줄리 섀나한의 연기 장면. 줄리는 '스위트 맘보'에서 가장 많이 등장했다. [사진 올리버 룩]


제일 고생한 무용수는 줄리 섀나한(Julie Shanahan)이었다. 가장 많이 등장했고 가장 많이 춤을 췄고 가장 많이 뛰어다녔다. ‘스위트 맘보’의 주연을 뽑으라면 줄리 섀나한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도 줄리가 연기했다. 무대 오른쪽에서 “줄리!”라고 외치면 무대 오른쪽의 줄리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나 무대 오른쪽에 거의 다다랐을 때 남성 무용수 2명이 줄리를 번쩍 들어 원래 자리로 옮겨 놓았다. 똑같은 동작이 10번 가까이 반복됐고, 1막과 똑같은 장면이 2막에서도 반복됐다. 마지막에 줄리는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쳤다. 무대에 누워 양동이에서 부은 물을 뒤집어쓴 것도 줄리였다. 줄리는 공연 대부분 쫓겨다니거나 끌려다니거나 제지당했다. 1962년 호주에서 태어난 줄리는 19세 나이인 1982년 탄츠테아터에 입단했다.

'스위트 맘보'를 대표하는 장면. 상황은 끔찍한데 막상 펼쳐지는 장면은 우스꽝스러웠다. [사진 우술라 카우프만]

'스위트 맘보'를 대표하는 장면. 상황은 끔찍한데 막상 펼쳐지는 장면은 우스꽝스러웠다. [사진 우술라 카우프만]


‘스위트 맘보’ 포스터에 등장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연기한 주인공은 줄리 앤 스탄작(Julie Anne Stanzak)이었다. 남성 무용수에 의해 머리채와 치맛단을 잡힌 채 무대를 도는 장면에서 헬레나는 한국말로 “뛰어!”를 수없이 외쳤다. 남성 무용수들은 번갈아가며 그녀의 머리채와 치맛단을 잡고 뛰었고, 그녀는 그렇게 억지로 무대를 수십 번 뛰어서 돌았다. 끔찍한 상황이었지만, 장면은 의외로 우스꽝스러웠다. 1959년 미국에서 태어난 그녀는 1986년 탄츠테아터 단원이 됐다고 했다.

40년차 탄츠테아터 단원 헬레나 피콘의 연기 장면. [사진 베티나 스토스]

40년차 탄츠테아터 단원 헬레나 피콘의 연기 장면. [사진 베티나 스토스]


헬레나 피콘(Helena Pikon)은 이번에 내한한 탄츠테아터 단원 중에서 가장 경력이 많은 무용수였다. 1958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헬레나는 1978년 이후 탄츠테아터 단원으로 활동 중이었다. 올해로 40년째 피나 바우쉬의 무용 세계와 함께 살아온 것이었다. 그녀의 동작은 우아했고 때때로 에로틱했다.


충격과 경악의 무대가 끝났다. 관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2시간 남짓 이어진 이들의 동작은 과연 무엇을 뜻했을까. 스위트 맘보? 피날레와 함께 발랄한 맘보 음악이 흘러나오기는 했다. 영국의 ‘가디언’이 ‘천국과도 같은 무대 위에서 무용수들은 여성의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신호를 보냈다’고 해석했다지만, 선뜻 동의하기 힘들었다. 무대에서는 분명 여성이 주로 보였지만 작품에서 주로 보인 주체는 여성보다는 인간이었다.

'스위트 맘보' 공연 장면. 줄리 앤 스탄작이 거대한 흰색 장만 앞에서 연기하고 있다 [사진 LG아트센터]

'스위트 맘보' 공연 장면. 줄리 앤 스탄작이 거대한 흰색 장만 앞에서 연기하고 있다 [사진 LG아트센터]


말하자면 춤이 아니라 극이었다. 아니다.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서사를 읽을 수 없었다. 무용극이라는 구분도 무의미했다. 무용수들의 동작은 이따금 즉흥 연기로 보일 만큼 자유분방했다. 심지어 군무도 대부분 통일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퍼포먼스였을까. 장르 정의가 애매한 무언가를 퍼포먼스라고 부른다면 그나마 적절할 수 있겠다. 그러나 현대 무용의 혁명가 피나 바우쉬의 작품은 장르 구분이 무의미했다. 피나 바우쉬의 작품에 대한 여느 비평의 문구처럼 ‘스위트 맘보’도 그냥 피나 바우쉬의 작품이었다.

장인주 무용평론가에 따르면 피나 바우쉬 작품의 주제는 인간의 삶이고, 소재는 무용수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무용수들의 감정을 하나하나 끄집어내 표현하는 방식으로 피나 바우쉬는 작품의 얼개를 빚었다. 무용수들이 왜 이렇게 나이가 많고 왜 이렇게 경력이 오래됐는지 얼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피나 바우쉬의 작품에서 하나의 줄거리를 엮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일 수 있다. 우리네 삶이 하나의 줄거리로 묶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인 줄 알았는데 레지나의, 나자렛의, 줄리의, 헬레나의 탄츠테아터였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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