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컷 유전자에 따라 색깔 다른 알
푸른색은 높은 둥지서 높은 번식률
나뭇잎 색과 비슷해 큰 새 공격 피해
푸른색은 높은 둥지서 높은 번식률
나뭇잎 색과 비슷해 큰 새 공격 피해
뻐꾸기는 남의 둥지서 알 부화시켜
색 같은 푸른 뱁새 알 물고 자기 알 탁란
뻐꾸기가 먼저 부화, 뱁새 새끼 밀어내
뱁새는 흰색 알로 뻐꾸기 탁란 피해
서로 자기 자손 남기기 위한 알 경쟁
두 새의 멸종 아닌 공존상태 지속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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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에 컬러 링을 부착한 붉은머리오목눈이 어미가 새끼를 키우는 모습. |
같은 새가 두 가지 색의 알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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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둥지에서 붉은머리오목눈이 새끼를 잡아먹는 누룩뱀. |
먼저 조사지역에 있는 어미 새를 새 그물로 포획해 다리에 컬러링(color ring)을 부착해 각기 다른 이름을 붙여주고 다시 풀어줬습니다. 둥지를 떠나기 전의 새끼에게도 컬러링을 부착하여 이름을 붙여줬지요. 조사기간 동안 1,000여 마리의 새에게 이름을 붙여 개체식별을 했고 115개의 둥지(푸른색 77개, 흰색 38개)를 찾았습니다. 이후 그들을 쌍안경으로 추적조사를 하고 둥지 앞에 소형 CCTV 카메라를 설치하여 녹화했습니다.
그 결과 푸른색 알과 흰색 알이 혼합된 둥지는 없었습니다. 즉 한 마리 암컷은 푸른색 또는 흰색 알만 낳았던 거지요. 수컷이 바뀐 둥지에서는 알 색이 바뀌지 않았지만 암컷이 바뀐 둥지에서는 알 색이 바뀐 둥지가 다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철수’와 ‘영희’가 짝을 지었는데 처음에는 푸른색 알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다음 해에 ‘철수’는 ‘영희’가 아닌 ‘순희’하고 짝을 지어 흰색 알을 낳은 것입니다. 알 색이 암컷에 의해 유전된다는 의미지요.
두 가지 알 색에 대한 번식 성공 요인을 좀더 자세히 살펴본 결과 둥지의 높이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지상에서 낮은 곳(30㎝ 이하), 중간 높이(31-89㎝), 높은 곳(90㎝ 이상) 3개의 범주로 구분하여 비교해봤습니다. 낮은 곳에 위치한 둥지에서 푸른색 알과 흰색 알의 번식성공률에는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중간 높이의 둥지는 흰색 알의 둥지가 푸른색 알의 둥지보다 번식성공률이 높았고, 높은 위치의 둥지는 이와 반대의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낮은 곳의 둥지는 주로 뱀에 의해 포식을 당했습니다. 뱀은 알 색을 구별해 이를 잡아먹은 게 아니라 둥지 내의 새를 보고 발견했거나 열을 감지하고 아래쪽에서 알을 찾았기 때문에 푸른색 알의 둥지와 흰색 알의 둥지는 동등하게 포식을 당했습니다.
푸른색 알의 둥지 번식성공률이 높았던 90㎝ 이상의 경우에는 어치 같은 큰 새들이 주로 덤불 위쪽에서 먹이를 찾는 바람에 흰색 알이 포식 당하기 쉬웠습니다. 푸른색 알은 나뭇잎으로 인해 은폐효과가 컸기 때문에 화를 면했던 것이죠.
마지막으로 중간 높이에선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뻐꾸기가 등장하게 됩니다. 뻐꾸기의 ‘탁란’, 즉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습성으로 인해 붉은머리오목눈이의 흰색 알이 더 많이 살아남았다는 뜻입니다. 두 새 사이에는 어떤 사정이 있었던 걸까요?
‘마피아’ 뻐꾸기에게 양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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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에게 탁란된 붉은머리오목눈이의 푸른색 알 둥지. |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뻐꾸기의 알 색은 푸른색입니다. 붉은머리오목눈이의 푸른색 둥지를 탁란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죠. 뻐꾸기 알의 크기는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알보다 4배나 크지만, 탁란 성공률은 알의 크기보다는 알 색이나 알의 수와 더 관련이 있습니다. 뻐꾸기는 알의 크기가 비슷한 둥지보다 알의 색이 비슷한 둥지에 탁란해야 성공할 가능성이 높고, 알의 수를 눈치 채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알 한 개를 입으로 물고 자신의 알을 낳습니다.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알을 낳기 전에 먼저 알을 낳으면 들키기 쉽고 알을 품기 시작한 후에 탁란을 하면 부화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뻐꾸기는 붉은머리오목눈이의 둥지를 찾았을 때 대부분 알의 온도나 알의 수로 산란시기라는 것을 확인한 후에 탁란을 합니다. 참 얄밉고도 이기적인 뻐꾸기의 탁란 전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뻐꾸기 알의 포란기간(알을 품는 기간)은 11~12일로 붉은머리오목눈이의 포란기간(13~14일)보다 2~3일 빠릅니다. 그래서 붉은머리오목눈이와 동일한 산란시기에 탁란을 하면 뻐꾸기 알은 그만큼 빨리 부화합니다. 뻐꾸기 새끼의 등은 평평해서 둥지 내의 알이나 새끼를 업어서 밖으로 쉽게 밀어낼 수 있게 생겼고, 부화 후 1~2일이 되면 등에 닿는 알이나 새끼들을 무조건 밖으로 밀어냅니다. 뻐꾸기 새끼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태어나면서 자신의 생존에 적합한 행동을 스스로 가지게 된 본능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있죠. 다른 새끼들을 미리 제거하여 먹이를 혼자서 독차지하고 성장을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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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머리오목눈이. |
물론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알 크기나 미세한 색의 차이로 뻐꾸기의 탁란을 일찌감치 눈치채고 둥지를 아예 포기하고 둥지를 틀 다른 곳을 찾아 떠나게 되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붉은머리오목눈이 입장에선 손실이겠지만 어차피 자기 알이 부화하면 먼저 태어난 뻐꾸기에게 잡아 먹힐 테니 아예 포기해버리는 겁니다. 뻐꾸기 역시 이럴 경우 탁란할 다른 둥지를 찾아 나서야 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노력과 시간, 그리고 알의 영양분에 대한 손실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붉은머리오목눈이의 흰색 알은 뻐꾸기의 탁란에 저항하는 자신만의 중요한 ‘무기’이자 탁란 ‘방지전략’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붉은머리 VS 뻐꾸기’ 이들은 군비확장 경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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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머리오목눈이에게 재번식을 유도하여 탁란의 기회를 더 얻기 위해 새끼를 둥지 밖으로 제거하는 뻐꾸기. |
비록 뻐꾸기가 붉은머리오목눈이에만 탁란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일 뻐꾸기의 탁란 전략이 완벽하거나 붉은머리오목눈이의 탁란 방지전략이 완벽했다면 현재 두 종은 함께 존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현재에도 두 종은 공존상태를 지속하며 평형을 유지하고 있고, 서로 자기 자손을 남기기 위해 벌이는 진화적 군비확장경쟁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국립생태원 생태조사연구실 김창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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