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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 4억년 숨 쉬는 영월 탐방…동강에서 서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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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굴교.© News1

고씨굴교.© News1


(영월=뉴스1) 박하림 기자 = 물 한 병과 떡 한 덩이를 갖고 국립춘천박물관이 마련한 ‘영월행(行)’ 아침버스에 몸을 싣는다.

비몽사몽 잠에 취해 반 쯤 눈을 떴을 때 창문 밖은 동강이 흐르고 있고 800여m 떨어진 곳에 동강을 가로질러 ‘고씨동굴’로 잇는 다리인 ‘고씨굴교’가 보인다.

‘고씨동굴’. 420여년전 임진왜란 당시 고종원 장군의 일가가 피난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해설사는 고씨굴에 있는 종유석, 석순, 석주, 박쥐 등 대해 설명을 하는데 어찌나 쩌렁쩌렁하게 설명하던지 동굴 안에서 자던 박쥐가 깰까봐 염려된다. 다음부터 마이크와 스피커는 필요 없을 것 같다.

아이들의 동공은 이미 똘망똘망 커졌다. 해설사의 약발이 어느 정도 먹혔으니 이제 안전모를 쓰고 들어갈 차례다.

셀 수 없이 많은 종유석 고드름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종유석이 보고 싶은 석순은 천장을 향해 울룩불룩 솟아 있다. 이 둘이 동병상련한 석주들도 간혹 보인다.


고씨동굴.© News1 박하림 기자

고씨동굴.© News1 박하림 기자


고씨동굴 .© News1 박하림 기자

고씨동굴 .© News1 박하림 기자


고씨동굴.© News1 박하림 기자

고씨동굴.© News1 박하림 기자


‘머리조심’

용식공(동굴 천장에 나있는 큰 구멍) 근처서부터는 머리를 조심해야 한다. 고개를, 아니 허리를 숙여야 한다. 때론 무릎까지 접어야 한다.

4억년 전부터 살아온 이곳의 터줏대감인 석회바위들에게 예의를 갖춰야 한다. 안 그러면 뿔난 바위 영감들이 이곳의 찾은 이들의 머리를 연신 쥐어박고 옆구리를 찌른다.


180cm(또는 그 이상의) 장정들은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이곳에선 '교만한' 자들이다.

높이 1m도 안 되는 통로가 이어진 ‘용식공’ 근처에서부터 세 발짝 걸을 때마다 연신 머리 위에서 들리는 ‘퍽퍽’ 소리에 절로 겸손함을 배우게 된다. 뭐가 그리 교만했는지... 520m 거리를 다니며 약 40번의 겸손을 배운 것 같다.

고씨동굴 박쥐.© News1 박하림 기자

고씨동굴 박쥐.© News1 박하림 기자


코스가 거의 끝날 지점에서 낮은 천장에 매달려 자고 있는 박쥐 한 마리를 발견했다. 고난의 행군에 대한 보상이다.


이곳에서 항상 박쥐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을 수차례 방문한 사람들 중 박쥐를 보지 못한 이들도 수두룩하다.

그렇게 자고 있는 박쥐와 일방적인 인사를 마친 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빛이 보인다. 입구가 보인다.

천장이 꽤 높은 입구 부근에서도 굽었던 허리와 목은 잘 안 펴진다. 고씨 장군에게서 혹독하게 배운 예절이 효과가 오래가는 것 같다.

마주치는 몇몇 나이든 장정들은 안전모를 쓰지 않고 입구 안으로 당당히 들어선다.

잠시 후 이들도 용식공에서 겸손을 배우며 인생의 초심을 되찾게 될 것이다.

동굴 밖으로 나와 고씨굴교 아래 에메랄드를 머금은 동강을 보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난 오막살이 로망에 빠져든다.

그러나 ‘이동하셔야 합니다’는 말에 마음만 동강 옆에 놓고 ‘묵산미술관’으로 향하는 버스에 다시 몸을 싣는다.

목산미술관으로 향하는 다리.© News1 박하림 기자

목산미술관으로 향하는 다리.© News1 박하림 기자


목산미술관.© News1 박하림 기자

목산미술관.© News1 박하림 기자


묵산미술관에는 한국화, 현대미술품, 고미술화 등 여러 작품들이 있지만 그중 묵산 임상빈 화가(묵산미술관 관장)가 그린 ‘설경’이 눈에 띈다.

고미술 전시관으로 자리를 옮긴 묵산 선생은 아이들 앞에서 중국, 조선, 일본 세 나라의 고서화의 차이점을 친절히 설명한다.

특히나 조선후기 단원 김홍도의 작품은 고미술 화가들의 ‘메카’였던 중국이 김홍도에게 ‘화신(畵神)’이라 칭할 정도로 대단했다고 한다.

조선 22대 임금인 정조가 화성으로 행차한 장면을 그린 수원행행도 화성능행도병 8개 작품이 대표적이다.

고서화에 대해 설명하는 묵산 임상빈 화가의 모습.© News1 박하림 기자

고서화에 대해 설명하는 묵산 임상빈 화가의 모습.© News1 박하림 기자


그 이유는 무엇일까.

김홍도는 ‘마음의 눈’으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당시 드론 같은 장비도 없었다.

화성능행도병 8개 그림들을 보면 마치 공중에서 나는 새가 내려다 본 눈으로 그린 듯하다.

뿐만 아니라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도 뺄 수 없다. 금강산 1만2000봉을 가로 약 94cm, 세로 약 130cm에 담았는데, 사실 그려진 봉우리는 1만2000개가 아니다.

겸재는 거짓으로 그림을 그렸던 것일까. 아니다 겸재도 ‘마음의 눈’으로 금강산을 보았던 것이다.

중국의 내놓으라 한 거장들은 미간 좌우에 둔 한 쌍의 눈 밖에 가지지 못했으니, 눈 한 쌍이 더 달린 김홍도와 겸재의 그림을 보고서는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한반도 지형.© News1 박하림 기자

한반도 지형.© News1 박하림 기자


조상들의 ‘마음의 눈’을 가슴 한편 고이 간직한 채, 마지막 코스인 ‘한반도 지형’으로 발걸음을 튼다.

‘한반도 지형’은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한 풍경으로 서강변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위쪽에서부터 주천강이 흐르는 모습은 북녘 땅의 ‘두만강’과 ‘압록강’이 흐르는 듯 하고, 오른쪽에서부터 굽이굽이 흐르는 평창강을 보면 동해를 지나 남해, 서해로 흐르는 풍경이 꼭 한반도와 닮았다. 오른쪽으로 우뚝 솟은 절벽지역은 ‘백두대간’을 연상케 한다.

주천강과 평창강이 만나는 지점이 ‘서강’의 시작이다.

노을 진 한반도 지형의 강줄기는 평양의 ‘대동강’ 부근서부터 금빛으로 물 들어 유유히 서쪽으로 흘러간다.

눈 발자국이 남아있는 ‘서·남해’ 강줄기는 사람들에게 들킬까 얼음 밑에 숨어 고요히 흐르고 있다.

얼음 밑에 숨은 진짜 이유는 그 아래 약 7만 마리의 송사리 떼가 있기 때문이다.

고기가 너무 많아 육지까지 튀어오를 때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습지보호구역이라 고기는 잡지 못한다.

아쉽다. 송사리로 요리한 ‘도리뱅뱅’이 이곳의 별미 중 별미라고 하던데...

절벽아래 깊은 물에는 꽤 큰 고기들이 살고 있다. 월척을 잡으러 온 수달도 이곳에 살고 있다. 평창강 오른 쪽을 보면 인근 뗏목체험장에 수달 똥들이 그렇게 많다고 한다.

뗏목체험을 하면 수달들을 볼 수 있을까.

뗏목을 타려면 삿대가 꼭 필요하다. 강물을 젓는 삿대는 이곳 산지의 주를 이루는 소나무로 만드는데 삿대를 강물에 내리치면 다시 튀어오를 정도로 이곳 소나무의 탄력은 남다르기도 하다.

특히나 이곳 소나무는 붉은 벽돌로 집을 쌓은 듯 껍질이 두껍고 뻘겋며 결이 큼직큼직하게 나있다.

붉은 소나무.© News1 박하림 기자

붉은 소나무.© News1 박하림 기자


웅장한 소나무 자태를 감탄하며 하늘을 보니 중천에 떠있던 해가 나뭇가지에 걸려있다.

가지를 휘어 꺼내주려 했지만 걷는 동안 뒤따라오느라 지쳤는지 해는 이제 먼 산 뒤로 자꾸 숨으려고 한다.

노을빛에 물든 갈대까지 미리 손 인사를 흔든다.

인사까지 했으니 어쩌나. 아쉬워도 떠나야지.

이들 눈치에 다음 방문을 기약하고 영월과의 동행은 여기까지 한다.
rim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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