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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저녁 서울 제기동 ‘상생장’ 옥상에서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하는 모습. 늘 지나는 거리의 익숙한 풍경도 옥상에서 바라보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
국어사전에 따르면 캠핑은 '산이나 들 또는 바닷가 따위에서 텐트를 치고 하는 야영(野營)'이다. 그러나 산이나 들 또는 바다는 때로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너무나 멀어서 캠핑은 비상한 결심으로 감행하는 일탈이 되곤 한다. 훌쩍 도시를 떠날 용기나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 캠핑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일 뿐일까.
늘 그랬듯, 우리는 답을 찾아낸다. 사전에서 '따위'라는 한마디로 뭉뚱그려진 여러 장소 중 도시의 캠핑족들이 주목한 곳은 옥상이다. 꿩 대신 닭이 아니다. 옥상은 사실 꽤 근사한 공간이다. 주위에 물이 흐르지 않아도 다른 건물과 분명하게 격리된 옥상은 섬처럼 호젓한 데가 있다. 지면과는 다른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빌딩 숲도 좋은 배경이 돼준다. 특히 어둠이 도시의 민낯을 적당히 가려 주는 밤에는 수십층 전망대에서 굽어보는 야경이 부럽지 않다.
누구나 답답할 때 옥상에 올라본 경험이 한 번쯤 있다. 불빛을 바라보고 바람을 맞으며 안정과 위안을 얻는다. 옥상은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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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로에 모닥불을 피우면 캠핑 분위기가 한껏 살아난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
지난 3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상생장' 옥상에 신용섭(34)씨가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영상콘텐츠 제작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그는 이날 밤샘 작업을 앞두고 이곳에서 '막간을 이용해' 친구들과 캠핑을 즐겼다. 상생장은 청량리 청과물시장의 오래된 창고를 개조해 푸드코트와 전시장 등을 꾸민 문화 공간이다. 작년 10월 문을 열었다. 집집마다 옥상이 하나씩 있는 건 아니기에 캠핑 애호가들에겐 반가운 장소다.
이날 친 2개의 텐트는 '백패킹(backpacking)'용이었다. 백패킹은 자동차로 장비를 나르는 오토캠핑과 달리 최소한의 짐만 배낭에 넣고 다니는 방식이라서 텐트도 1~2인용 소형이다. 일반 텐트에 비해 높이가 낮아 바람에 덜 흔들린다. 펙(peg·말뚝)을 박아 텐트를 바닥에 고정시킬 수 없는 옥상 캠핑에도 요긴하다.
텐트 밖에는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한다. 코펠과 버너, 보온병 같은 도구를 꺼내 늘어놓는다. 불똥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시멘트 블록으로 쌓은 받침 위에 화로대를 올리고 장작불을 피우면 캠핑 느낌이 나기 시작한다. 빌딩으로 둘러싸인 옥상에서 듣는 장작불의 '탁탁' 소리가 새롭다.
옥상 캠핑에서 중요한 건 생존술이 아니라 감성이다. 사소해 보여도 캠핑 분위기를 한껏 올려주는 소품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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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남동 ‘인디에이’ 옥상에는 텐트가 설치돼 있다. 미리 준비된 캠핑 장비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글램핑’ 공간이다. 실내 매장에서는 아기자기한 캠핑용 소품을 구매할 수 있다. / 인디에이 제공 |
예를 들어 에스프레소 커피를 끓이는 ‘모카포트’ 같은 물건들이다. 인스턴트 커피에 물만 타서 마셔도 되고 심지어 이곳에선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다 마시는 것도 가능하지만, 버너에 모카포트를 올리고 커피가 거품을 내며 끓어오를 때까지 기다리며 야외(野外)에 나와 있음을 실감하는 것이다.
분위기를 살리는 데는 조명의 역할도 중요하다. 랜턴을 켜서 텐트 안에 두면 천막이 불빛을 걸러줘 텐트 자체가 은은한 빛을 내는 조명등이 된다. 도시는 주변의 불빛이 많아 랜턴 없이도 앞을 보는 데 문제가 없지만 빼놓을 수 없는 준비물이다.
‘체인볼 조명’이라고 부르는 소품도 있다. LED(발광다이오드) 전구가 들어 있는 작은 공 여러 개를 선으로 연결한 것이다. 텐트 주변에 걸쳐 놓으면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처럼 색다른 분위기가 난다. 배터리를 사용하기 때문에 전기가 없는 야외에서도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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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남동 ‘인디에이’ 옥상에서 바라본 야경. 빛을 머금은 텐트가 은은한 조명처럼 빛난다. 이태원 시가지 너머로 멀리 남산이 보인다. / 인디에이 제공 |
옥상 캠핑의 최대 장점은 멀리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캠핑장 가는 길에서 교통 체증에 갇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된다. 하룻저녁 정도밖엔 여유가 나지 않아 멀리 다녀오기 어려울 때도 대안이 된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교외 캠핑장의 혼잡도 피할 수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을 옥상 캠핑의 매력으로 꼽는 사람도 있다.
이런 장점을 갖춘 옥상은 캠핑을 시작하는 초심자들에게 적합한 곳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멀리 다니기보다는 가까운 곳에서 자주 캠핑을 해보며 요령을 익혀가는 쪽이 좋다는 의미다. 장비 또한 한번에 완벽하게 마련하려 하지 말고 여러 차례 캠핑을 해보며 자신에게 맞는 물건을 늘려나가는 것이 낭비를 줄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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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 설치된 텐트 내부. / 인디에이 제공 |
캠핑 입문자들이 흥미를 잃어가는 과정이 대체로 비슷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우선 캠핑용품 일습(一襲)을 마련한다. 자동차에 장비를 잔뜩 챙겨 교외로 떠난다. 하지만 캠핑장은 멀고, 처음 해본 캠핑은 익숙하지 않다. 이내 지치고 시들해진다. 그때부터 장비는 고스란히 창고 신세가 된다.
모닥불을 가운데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옥상의 밤이 깊어간다. 불길이 잦아들면 내려갈 준비를 할 시간이다. 텐트며 테이블, 의자 같은 장비들을 익숙한 솜씨로 접어 정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20여분. 배낭을 하나씩 짊어지고 계단을 내려와 다시 도시의 리듬에 합류한다. 캠핑을 마친 이들은 저마다 행선지에 따라 지하철역과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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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장 민물장어구이, 치킨, 중국 요리, 수제 맥주 등을 파는 푸드코트가 있다. 푸드코트 5만원 이용권을 구입하면 옥상 캠핑을 할 수 있다.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 1번 출구에서 200m쯤 된다. 서울 동대문구 고산자로 36길 38 2층. (02)960-2209
인디에이 옥상의 텐트에서 바비큐를 즐길 수 있는 캠핑용품점이다. 옥상 글램핑 이용 요금은 월~목요일 12만원(2인 기준), 금~일요일과 공휴일 전날은 23만원(6인 기준)이다. 바비큐 그릴, 숯, 개인용 식기, 양념류 등이 제공된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684-88. (02)790-8571
[채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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