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69년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미국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25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2세.
암스트롱 가족은 고인이 지난 8일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소재 병원에서 심장 수술을 받았지만, 수술 합병증으로 숨졌다고 발표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성명을 통해 "닐 암스트롱은 미국 영웅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닐이 처음으로 달 표면에 발을 내디뎠을 때 결코 잊을 수 없는 인류 성취의 순간을 만들었다"고 고인을 기렸다.
암스트롱 가족은 고인이 지난 8일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소재 병원에서 심장 수술을 받았지만, 수술 합병증으로 숨졌다고 발표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성명을 통해 "닐 암스트롱은 미국 영웅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닐이 처음으로 달 표면에 발을 내디뎠을 때 결코 잊을 수 없는 인류 성취의 순간을 만들었다"고 고인을 기렸다.
과묵하고, 차분한 성격의 암스트롱은 1969년 7월20일 우주비행선 아폴로11호의 선장으로 달 표면 '고요의 바다'에 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달 착륙 당시 38세였던 그는 "인간에겐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겐 위대한 도약"이란 명언을 남겼다.
1957년 러시아가 인류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에 성공하자, 1960년대 냉전 시대에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 우주탐사 경쟁이 벌어졌다. 당시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0년대에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고 공약했고, 약속한 기간이 5개월 밖에 남지 않았을 때 암스트롱이 러시아보다 먼저 달 착륙에 성공했다. 당시부터 지난 1972년까지 3년 사이에 달에 착륙한 미국 우주비행사는 12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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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항공우주국(NASA) 우주비행사 시절 닐 암스트롱 [출처: NASA] |
암스트롱은 1930년 8월5일 오하이오주 와파코네타에서 주(州) 회계감사관인 스티븐 암스트롱과 비올라 연주자 출신인 루이스 엔젤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친의 직업 때문에 몇 년마다 오하이오주 곳곳으로 이사를 다녀야 했던 암스트롱은 6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포드사에서 나온 엔진 3개짜리 비행기를 타는 경험을 했다.
그때 강한 인상을 받은 암스트롱은 사상 처음으로 홀로 대서양을 횡단한 미국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를 우상으로 삼고, 15살에 운전면허증보다 비행사 자격증을 먼저 땄다. 퍼듀대학에서 항공공학을 전공하고, 1949년 해군에 입대했다. 3년간 해군 비행사로 한국전을 포함해 78건의 비행 임무를 완수했다.
해군을 제대하고 1956년 학생인 재닛 엘리자베스 셔론과 결혼한 암스트롱은 에드워즈 공군기지 시험비행사로 취직해,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았다. 1955년 미 항공우주국(NASA)의 전신인 미 항공자문위원회(NACA)에 합류해 엔지니어, 시험 비행사, 우주비행사, 행정관 등으로 근무했다. 1958년 미군 우주비행선 프로젝트 'X-20 다이나 소어'에 참여했고, 1962년에서 NASA 우주비행사로 선발됐다. 그 후 7년 뒤에 달을 밟게 됐다.
달 착륙 이후 세계의 조명을 받았지만, 겸손하고 수줍은 성격의 암스트롱은 조용한 삶을 산 것으로 유명하다. NASA 우주비행단에서 나온 후, 우주 프로그램에 연합 행정관으로 일했고 1971년부터 9년간 신시내티대학 항공우주 공학 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다. 1982년부터 11년간 컴퓨팅 테크놀로지스 포 애비에이션 회장을 맡았다.
두 번 결혼한 암스트롱은 유족으로 부인 캐롤 나이트와 아들 에릭, 마크를 두었다. 딸 카렌은 1962는 뇌종양으로 세상을 먼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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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기자 paper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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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항공우주국(NASA) 우주비행사 시절 닐 암스트롱 [출처: NASA]](http://static.news.zum.com/images/11/2012/08/26/2012082610551159778_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