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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대구의 싱싱한 이리가 듬뿍 들어간 대구매운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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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읽은 이 문장을 잊지 못한다. 놀랍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입맛이 당기기도 했다. 한국 전통·궁중음식을 수십 년 연구한 김상보(대전보건대 전통조리과) 교수가 쓴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본 제철 수라상’이라는 연재물의 ‘대구’편(중앙SUNDAY 2012년 2월 26일 M28면) 마지막 문장이다. 얼마나 맛있으면 같이 먹던 아내가 죽어도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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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이 먹기에 적당한 대구뽈찜(중). 커다란 생대구 머리 절반과 이리·간이 들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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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구정식에 나온 대구머리맑은탕. 토실토실한 이리와 주먹만한 알이 들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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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머리맑은탕에 들어간 이리와 알이 재료의 신선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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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식당’ 음식을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장만하는 안주인 민숙현씨가 주방에서 대구맑은탕을 끓이고 있다. |
바깥주인 염홍일(69)씨는 함경남도 북청군 속후면 광천리의 큰 지주 집에서 태어났다(속후면은 1952년 신창군, 1974년 신포군에 편입되었다가 시로 승격된 신포에서 1995년 분리된 금호지구). 개마고원을 머리에 이고 있는 북청지역 대부분이 험한 산지이지만 해안 일부에 약간의 평야지대가 있다. 광천리는 마을 북동쪽에서 동해로 흘러 드는 남대천을 끼고 자리잡았다. 마을에서 바다까지 하구 30여 리에 걸쳐 평야지대가 펼쳐진다. 일대에서 손꼽히는 곡창인데다 바다가 가까우니 물산이 풍부했다. 북한 정권이 들어서는 시기에 지주 집안은 무사할 리가 없었다. 1947년생인 그가 두 살 때 집안이 월남했다. 6·25 전쟁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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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구정식의 상차림. 오른쪽 4가지는 기본찬으로 함초배추김치·양파초간장절임·대구아가미깍두기·통멸치젓갈(위부터 시계방향). 왼쪽 5접시에 담긴 6가지는 정식 반찬으로 돼지감자·깻잎·오가피순·홍매실·마늘·양파 장아찌(아래부터 시계방향). 2~3년씩 묵은 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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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에 나오는 연잎밥에는 찹쌀·흑미·차조·메조·찰수수·팥·동부·은행·잣·밤·대추·호두·서리태 13곡과 연잎 가루가 들어갔다. 밥물은 연잎차, 간은 죽염으로 했다. |
함경도 대구이리탕이 그리도 맛있다는데 ‘이리’는 무엇일까. 생선탕에 들어간 내장을 흔히 부르는 이름은 대개 곤이·애이다. 이 단어로 우리말 사전을 찾으면 미로를 헤매게 된다. 애는 창자·쓸개의 옛말이라고 설명한다. 곤이(鯤?)는 ①물고기 배 속의 알 ②물고기의 새끼라고 풀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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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잎으로 싸고 창포 잎 끈으로 묶어 찐 연잎밥. 창포 잎은 방부작용을 한다고 했다. |
그럼 누구나 애라고 부르는, 홍어나 대구·동태탕을 먹을 때 나오는 고소하고 부드러운 묵 같은 덩어리 이름은 무엇일까. 사전을 더 읽으면 실마리가 찾아진다. ‘애: [북한어]명태 따위의 간을 이르는 말.’ 우리말로는 아니지만 북한말로는 ‘애’라는 것이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어문규정의 현실이다.
참식당의 기본 밑반찬들(이 중 4가지가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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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대구아가미깍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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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대구아가미젓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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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묵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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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삼채잎장아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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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파김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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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아주까리(피마자)잎장아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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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멸치젓갈무침 |
정식 반찬으로 나온 3년 묵은 장아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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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돼지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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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깻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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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마늘·양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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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오가피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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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홍매실 |
곤이가 물고기 알이나 새끼라면 생선탕을 먹을 때 섞여 있는 연두부처럼 부드러우면서 꼬불꼬불 엉긴 하얀 덩어리는 무엇일까. 바른 이름은 ‘이리’이다. 물고기 수컷의 배 속에 있는 흰 정액 덩어리이다. 이리·알·내장을 통틀어 말할 때는 ‘고지’라고 한다.
‘참식당’ 음식 중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별미가 가자미식해다. 가자미보다 부재료가 많아 보이는 일반 식해에 비해 참가자미가 듬뿍 들어간 이 집 식해는 가자미를 자르지 않고 머리와 내장만 빼고 통째로 담가 3년을 삭혀 뼈까지 다 씹어진다. 살은 부드럽고 고소한 게 치즈를 먹는 느낌이다. 따신 밥에 들기름 약간 치고 잘 삭은 가자미식해를 얹어 비벼 먹으니 맛이 기가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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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게·마늘·생강을 넣고 통후추·고추씨·고춧가루·찹쌀밥을 함께 갈아 염도 맞춰 3년 삭힌 털게젓은 아주 귀한 음식이다. 맛은 말이 필요 없다. |
▶대구미역국: 산모 보양식이다. 회임 중 생긴 기미가 벗겨진다. 손질한 대구를 푹 끓여 뼈만 발라내고 국물에 미역을 넣고 끓이다가 찹쌀 새알심을 빚어 넣어 익으면 먹는다. 남해 대구는 살이 딱딱하다. 서해 대구는 무르고 살이 풀어진다. 동해 대구는 맛이 달고 살이 차지다. 토막 치면 단면에 무지개 빛이 돌고 인절미처럼 살이 차지다. 동해라도 감포 대구는 맛이 밍밍하다.
▶문어팥죽: 여름 보양식이다. 바다 가까운 동네에서 잘살던 집이라 보양은 보신탕·삼계탕보다 주로 생선으로 했다. 문어는 밀가루를 발라 빨판에서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바락바락 주물러 씻는다. 물이 끓을 때 설탕 반 티스푼 넣고 문어를 데쳐 건진다. 설탕을 넣으면 문어 껍질이 벗겨지거나 따로 놀지 않는다. 식초를 넣어도 효과는 같지만 설탕으로 해야 문어의 감칠맛이 더 있다. 문어 데친 물에 팥을 넣고 푹 삶는다. 불린 찹쌀·찰수수쌀을 같은 양 넣고 저어가며 죽을 쑨다. 죽이 다 되면 썰어 둔 삶은 문어를 죽에 섞고 한소끔 더 끓여서 먹는다.
▶민어 전·탕: 포 뜬 민어 살을 찹쌀가루에 굴려 바로 지진다. 계란 풀어 적시는 과정은 없다. 포 뜨고 남은 서덜(생선 살을 발라내고 난 나머지 뼈·대가리·껍질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은 들기름·생강 넣고 볶다가 물 붓고 곰국으로 끓인다. 국물이 뽀얗게 고아지면 거피한 들깨가루 풀고 토란을 넣어 익을 때까지 끓여 민어곰국토란탕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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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이농법으로 지은 친환경 쌀에 발효 다시마를 넣고 연잎 우린 물로 지은 밥. 밥알이 탱글탱글 살아있고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
▶고등어추탕: 큰 솥에 싱싱한 고등어, 갈치 파치(흠이 나서 성하지 않은)와 생강을 넣고 대파는 통째로 넣어 재료가 흐물흐물해지도록 푹 고아서 소쿠리에 부어 거른다. 국물에 들깨즙, 된장, 쌀뜨물, 우거지(무·배추), 데쳐서 무친 파, 고사리를 넣고 끓인다. 추어탕 못지 않게 맛있다.
참식당의 숨은 별미 가자미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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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참식당’의 숨은 별미 가자미식해는 부재료보다 참가자미 중심으로 통째 담가 3년을 삭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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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가자미식해 : 통으로 담가 상에 낼 때 잘라 접시에 담은 가자미식해. 맛이 깊은 ‘밥도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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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따신 쌀밥에 들기름 조금 치고 가자미식해를 얹어 비벼 먹으면 아주 별미다. |
▶무국: 무를 삐져(칼로 물건을 얇고 비스듬하게 잘라 냄) 들기름·새우젓 넣고 볶은 다음 무가 겨우 잠길 정도만 쌀뜨물을 붓고 끓인다. 무가 익으면 쌀뜨물을 넉넉히 붓는다. 별도로 머리를 뗀 콩나물을 데쳐 찬물에 헹궈 둔다. 국이 끓으면 파와 데친 콩나물을 넣고 한소끔 더 끓인다. 술국으로 좋다. 가을 무로 끓이면 고깃국보다 맛나다.
▶새우젓: 싱싱한 젓새우를 사서 소금에 버무려 하룻밤 뒀다가 새우 한 말에 소주 2홉들이 두 병 꼴로 붓고 냉장 보관해 3개월 뒤에 먹으면 단맛이 돌 정도로 맛있게 익는다. 소주가 방부 작용도 하고 새우의 감칠맛을 우려내는 역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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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식당 생대구 전문점’은 마포나루길 음식문화거리 큰길 가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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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냉장고들이 주방을 포위하고 있다. 모두 15대나 된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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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리에서 27년 동안 ‘참식당’을 지키고 있는 민현숙·염홍일 부부. |
“이제 칠순인데 손 놓기 허전해서 두 노인 소일거리로 하는 거다. 그 동안 아껴준 손님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기운 닿을 때까지만 욕심 없이 하자고 부부가 합의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회향(回向; 자기가 닦은 선근 공덕을 다른 중생이나 자기 자신에게 돌림)이다. 최고의 반찬과 음식으로 손님 잘 모시겠다는 마음뿐이다. 그 동안 아껴주신 손님들이 고마우니까 더 잘해드리려고 한다. 10년 동안 음식값 올리지 않았다. 지금 장사해 남는 것 없다. 돈 욕심 생기면 음식 이렇게 못 만든다. 싼 재료 찾아 다니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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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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